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백석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운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늬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짖인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작고 들려 오는 탓이다
백석처럼 내가 이렇게 ...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시 공무원시험에 붙어 동사무소라는 직장에 첨 다니던 적이 있었다.
1972년 4월이었다..지금으로 말하면 서강대 뒷동산에 붙어있는
대흥동사무소이었다. 이대 입구로 가는 대흥동 뒷길인데
당시 대흥극장도 있었다,
.....그때 어느날 새벽같이 아버지께서 예고도 없이
불쑥 서울 자취방에 올라오셨는데
"아야 시골의 손바닥만한 밭떼기 집어 취우고
나가 서울역같은 곳에서 지게질하는 것.. 하면 안되것냐..
(지게짐 분들을 보신 모양이다.)
(일래트면 그당시 지게로 짐을 옮겨주고 삯을 받는 분들이 계셨을 때다.)
당채 시골돈이 돈이 안되어어야..." 사실 그랬다.
뭍갈림이란 논이 있었는데 추수해봐야 땅 주인에게
반을 주고나면 비료대 약값 품삯등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다 죽도록 골병만 드는 것이
가난한 농부의 시골생활이었다...아부지 마음대로 결정하세요.."
아버진, 내가 일단 서울에다가 작대기(?)를 꽂아 두었으니
이를 발판으로 전부 정리하고
식구들 모두 서울에서 살아보자는 것이었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나를 잊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나를 닮아 온 시절이든가,
세월을 반갑게 떠나보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수양이든가
떠나가신 세월에게 묻는다.
그 시절, 육십 평생은 왜 그리 일과 먹는 것과 자는 것이..."
오뉴월 봄바람처럼 불면서 달려 드는 거리인데
언덕 너머 님의 정원에서도 비는 내리는 것이냐고....
백석은 이미 그때 길을 이룬 道士던가,
한용운이 바람과 오동잎과 수직의 파문으로 고뇌할 무렵
벌써 그를 달관하여 그의 모습을 함흥에서 읽었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李旻影이민영시인 (시사랑사람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