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와 꼬꼬생각(ㅋㅋ)

[스크랩] 술래를 기다리는 아이

LEE MIN YOUNG 2005. 6. 11. 13:20
 

200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술래를 기다리는 아이 --- 방미진

 

 


 
 

숨바꼭질이 시작되었어요.

담 모퉁이에 숨은 순용이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꼭 쥐고 숨을 죽였어요.

“거기! 이순용. 찾았다!”

술래인 다람이가 금세 순용이를 찾아냈어요. 또 순용이가 제일 먼저 들키고 말았어요. 다람이는 다른 아이들은 더 찾아보지도 않고 소리쳤어요.“못 찾겠다. 꾀꼬리!”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튀어 나왔어요. 이렇게 되면 들킨 사람은 순용이 혼자니까 순용이가 술래예요. 이런 식으로 순용이는 자주 술래가 돼요. 순용이는 분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지만 꾹 참았어요. 울어 버리면 놀이에도 안 끼워 주고, 울보라고 놀릴 게 뻔하니까요.

“1,2,3……99,100!”

순용이는 단숨에 100까지 세고 아이들을 찾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은 그새 아주 깊숙이 숨었나 봐요. 한참 동안 한 명도 찾지 못했으니 말이에요. 순용이는 더 이상 찾을 곳이 없어 잠시 멍하니 서 있었어요. 꼭 바보가 된 것 같았어요. 아이들이 모두 짜고서 집으로 돌아가 버렸는데 혼자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거든요. 그래서 이제 그만 하고 싶었어요.

“못 찾……어!”

순용이가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치려는 순간, 가게 냉장고 옆에 삐죽 튀어나온 발이 보였어요. 순용이는 냉장고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외쳤어요.

“찾았다!”

잔뜩 웅크린 채 숨어 있던 아이가 고개를 들었어요.

“어? 아니네?”

같이 숨바꼭질하는 애가 아니었어요. 그 애는 골목 맨 끝 집에서 할머니랑 둘이 사는 애였어요.

순용이는 그 애가 싫었어요. 순용이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그 애를 싫어했어요. 왜냐하면 그 애는 좀 이상했거든요. 얼굴은 크기가 다른 두 눈이 밑으로 쭉 찢어져 있어 무서웠고, 학교도 다니지 않는지 집 밖으로 나오는 일도 거의 없었어요. 게다가 그 집 앞에서 놀고 있을 때면 담 너머로 돌멩이를 던지기도 했어요. 그래서 아이들은 그 애를 놀리기는 해도 같이 놀지는 않았어요.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순용이는 괜히 짜증을 내며 말했어요.

“……숨바꼭질.”

‘무슨 숨바꼭질을 혼자서 해? 진짜 이상한 애야.’

순용이는 그 애가 기분 나빴어요. 순용이가 가려고 하자 그 애가 순용이를 불렀어요.

“순용아.”

순용이가 놀라서 돌아봤어요.

‘같이 논 적도 없는데 어떻게 내 이름을 아는 거지?’

순용이는 자기 이름을 안다는 것 때문에 그 애가 더 이상하게 보였어요.

“너 매일 술래 하는 순용이 맞지?”

‘어떻게 내가 항상 술래 하는 것까지 알고 있지? 정말 기분 나쁜 애야.’

순용이는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가려고 했어요.

“저기……우리 집에…….”

그 애가 말했어요.

“너네 집에 뭐?”

“우리 집에……데려다 주지 않을래?”

“뭐?”

“사실은……눈이 안 보여.”

그 애의 말에 순용이는 조금 놀랐어요. 그러고 보니 그 애의 눈동자가 아주 흐렸어요.

‘그래서 집 밖에 잘 안 나왔구나.’

하지만 순용이는 그 애와 같이 있기가 싫었어요. 다른 아이들이 보기라도 하면 놀림거리가 될 게 뻔했으니까요. 순용이가 망설이고 있는데 그 애가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냈어요. 그 사탕은 안에 초콜릿이 들어 있는 거예요. 그리고 순용이가 제일 좋아하는 거고요.

“맛있겠다.”

순용이가 저도 모르게 말했어요. 그 애가 사탕을 내밀었어요. 순용이는 먹고 싶은 걸 꾹 참고 고개를 저었어요.

“내 것도 있어.”

그 애가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더 꺼내면서 말했어요. 순용이는 그 애의 사탕을 받았어요. 그리고 그 애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어요.

순용이가 그 애의 팔을 잡고 끌었어요. 순용이의 걸음이 빨랐는지 그 애가 휘청거렸어요. 순용이는 그 애의 손을 잡았어요. 그리고 좀 더 조심스럽게 걸었어요.

그 애의 집 앞에 다 왔어요. 다행히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어요. 그리고 더 이상 사탕도 남아 있지 않았지요.

순용이가 돌아서는데 대문까지 이어진 계단이 눈에 들어왔어요. 하지만 순용이는 그냥 뒤돌아 걸어갔어요.

‘계단에 걸려 넘어지지는 않겠지?’

순용이는 가다 말고 그 애를 돌아봤어요. 그 애는 순용이를 보며 그대로 서 있었어요.

‘왜 안 들어가고 있는 거야? 에이, 대문까지만 데려다 주자.’

순용이는 그 애를 데리고 계단을 올라갔어요. 그리고 대문 안으로 들어가 마당 쪽으로 난 마루까지 그 애를 데려다 줬어요. 그 애가 마루에 앉았어요. 순용이는 왠지 마음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어요.

“나 갈게.”

“순용아! 순용아!”

마침, 밖에서 순용이를 찾는 소리가 들렸어요.

“어…….”

순용이가 나가려고 하는데, 다람이가 하는 말이 들려왔어요.

“순용이는 어디 간 거야? 순용이 없으면 누가 술래 해?”

그 말에 순용이는 깜짝 놀라 그대로 서 있었어요.

“집에 갔나 봐.”

“술래하기 싫어서 간 거 아냐? 치사하기는.”

순용이의 얼굴이 온통 벌겋게 달아올랐어요. 도저히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 그냥 그 애 옆에 앉았어요. 눈물이 찔끔 나왔어요. 아이들이 다시 숨바꼭질을 시작하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순용이는 그 애 몰래 눈물을 닦았어요. 그 애는 순용이가 우는 줄 알았지만 그냥 모르는 척해 줬어요. 순용이는 왠지 그 애가 자기를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인지 그 애 앞에서 우는 게 창피하지 않았어요. 둘은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었어요.

순용이가 먼저 입을 열었어요.

“너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매일 여기 앉아서……너희들이 노는 소리를 들었어.”

그 애가 얼굴을 붉힌 채 다리를 마구 흔들며 말했어요. 순용이도 그저 다리만 흔들고 있었지요.

“내가 바다 보여 줄까?”

갑자기 그 애가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어요. 순용이는 조금 어리둥절했어요. 여긴 산동네거든요. 그 애가 집 뒤쪽으로 걸어갔어요. 그런데, 눈이 안 보이는 것 같지가 않았어요. 벽을 더듬으며 가긴 했지만 아주 잘 찾아갔거든요. 아까 순용이가 데려다 줄 때와는 다르게 말이에요.

“너, 아까 거짓말했지?”

순용이의 말에 그 애가 그냥 씩 웃었어요. 순용이도 그냥 웃었어요.

“다 거짓말은 아냐. 내 눈은 정말 잘 안 보이거든. 아주 희미하게만 보여. 얼굴도 둥그렇게만 보이는 걸. 하지만 가게는 몇 번 가 봐서 혼자서도 찾아갈 수 있어.”

그 애가 말했어요.

“너 그럼 가게에서 집 찾아올 수 있어? 근데 왜 데려다 달라고 한 거야?”

“사실은 우리 집에서……같이 놀자고 말하려고 했는데, 그게…….”

그 애가 아주 조그맣게 말했어요.

“숨바꼭질하고 있었다는 것도 거짓말이지? 아까 가게에서는 왜 숨어 있었어?”

“숫자 세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까……나도 같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것 같았어.”

순용이는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그 애의 집 뒤쪽에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었어요.

“얘가 바다야.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 파도 소리가 더 크게 들려.”

그 애는 나무를 꽉 끌어안으며 말했어요.

“바보야, 이건 나무야!”

순용이는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말했어요. 그러자 그 애가 순용이를 똑바로 쳐다봤어요. 그 애의 눈 때문에 순용이는 잠시 무서웠어요. 하지만 곧 미안해졌어요. 그 애의 얼굴이 무척 슬퍼 보였거든요.

“바보 아니야! 바다는 얘 이름이란 말이야. 바보야.”

그 애가 마구 웃었어요. 순용이도 멋쩍게 웃었어요.

“근데 왜 바다야?”

“파도가 치니까.”

“뭐?”

“파도소리가 들리잖아.”

순용이는 그 애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너도 나처럼 해 봐.”

그 애는 나무를 끌어안고 가만히 눈을 감았어요. 순용이도 그 애를 따라 눈을 감았어요. 바람이 불자, 나뭇잎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쏴아아, 쏴아아.”

정말 파도 소리 같았어요. 바람이 더 세게 불어오자 그 애가 말한 파도 소리가 점점 더 커졌어요. 당장 파도가 밀려 올 것만 같았어요.

“바다에 와 있는 것 같아.”

순용이는 얼굴에 뭔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 눈을 떴어요. 나뭇잎이 하나, 둘 떨어지고 있었어요.

“바다에서 물고기가 떨어진다.”

그 애가 머리에 붙은 나뭇잎을 떼어 내며 말했어요. 정말 나뭇잎은 물고기와 닮은 모양이었어요.

“잡았다.”

그 애가 떨어지는 나뭇잎을 받으며 말했어요.

“야! 우리 누가 많이 잡나 내기하자. 땅에 떨어지기 전에 잡아야해.”

순용이가 말했어요. 둘은 정신없이 떨어지는 나뭇잎을 잡았어요. 순용이는 진짜 낚시라도 하는 것처럼 신이 났어요. 하지만 바람이 멈추자 더 이상 나뭇잎은 떨어지지 않았어요.

“에이. 재밌었는데. 야! 넌 몇 마리나 잡았어? 난 열두 마리.”

“응. 난 일곱 마리. 가을이 되면 더 많이 잡을 수 있어. 그땐 나뭇잎이 마구 떨어져. 꼭 눈 내리는 것 같아.”

“빨리 가을이 왔으면 좋겠다.”

“응. 하지만 아무리 많이 떨어져도, 혼자하면……재미없어.”

그 애는 그 말을 하고 나서 집 앞쪽으로 빠르게 걸어갔어요. 순용이는 그 애가 넘어질까 봐 얼른 손을 꼭 잡았어요. 그 애의 얼굴이 온통 빨갛게 되었어요.

“빨간 차 뒤에 영민이!”

대문 밖에서 술래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어요. 곧이어 빠르게 뛰어가는 소리도 났어요.

“다른 술래들은 저렇게 잘 찾는데, 나는 항상 왜 그럴까?”

순용이는 잠시 소리 나는 쪽을 쳐다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애가 순용이의 손을 잡아끌었어요.

그 애는 조그만 창문 앞에 가서 섰어요.

“이건 요술거울이야.”

그 애가 창문에 손바닥을 갖다 대면서 말했어요.

“왜?”

“이렇게 들여다보고 있으면, 신기한 게 보인다. 조그만 사람도 보이고 꽃도 보이고, 시커먼 얼굴이 휙 하고 지나갈 때도 있어. 꼭 귀신같아.”

그 애가 웃었어요. 순용이는 창문을 들여다보았어요. 유리에 때가 껴서 얼룩덜룩했어요. 그 얼룩들은 사람 모양 같기도 하고, 꽃 모양 같기도 했어요. 그리고 하늘이 가득 담겨 있었어요. 지나가는 구름도요.

순용이는 그 애가 참 이상한 애라고 생각했어요. 말하는 것도 이상하고 여전히 얼굴도 이상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젠 그 애가 싫지 않았어요.

순용이가 가만히 있자 그 애가 조금 걱정스럽게 물었어요.

“왜? 아무것도 없어? 시시해?”

“아니. 하늘이 잔뜩 있어. 구름도 있어.”

“정말? 또 뭐가 있어?”

그 애의 물음에 순용이는 한참 창문을 들여다보았어요.

“어, 어……너도 있고 나도 있어.”

창문에 담긴 그 애와 순용이의 얼굴이 웃었어요. 그 애의 이상한 눈도 웃고 있었어요.

창문에 비친 그 애의 눈을 보고 있던 순용이는, 웃고 있는 그 눈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신기한 눈 같다고 느꼈어요. 순용이는 고개를 돌려 그 애를 똑바로 쳐다봤어요. 그리고 그 애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어요. 쳐다보는 걸 느꼈는지 그 애가 고개를 숙였어요.

“내 눈……무섭지? 이상하지?”

“아니, 안 무서워.”

그 애가 다시 순용이를 쳐다봤어요. 순용이도 그 애의 눈을 들여다보았어요. 이젠 정말 무섭지 않았어요.

밖에서 술래가 소리쳤어요.

“거기! 건우, 다람이 찾았다!”

문득 순용이는 바다라는 이름의 나무와 요술거울이라는 이름의 작은 창문을 가진 그 애가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물었어요.

“너는 이름이 뭐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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