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대부분 작가들이 이야기하는 일반적인 참고사항이다
기본적으로
-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해서 써야 한다.
- 시를 소리내어 읽으면서 문맥의 흐름을 다듬는다.
- 우연한 기회에 스치는 영감을 메모해 두었다가 적당한 시어로 옷 입히기를 한다.
- 메모하는 습관.
- 추상과 구상을 적당하게 배분한다.
- 직유보다는 은유에 치중해서 글을 쓴다.
- 일상화된 언어보다는 자기만의 독특한 언어를 만든다.매우 중요, 소위 詩風내지는 작자만이 지닌 특유의 시맛이라한다..
자기만의 언어란 무엇인가,
이는 화자가 詩라는 환경內에서 나타내는
자기만의 운율=율조=시어일 것이다.
이전에도 이야기한 바, 詩語란 詩世界 안에서 주는 이미지라 할 것이다.
글을 수없이 쓰다보면 어느새 나만의 율조와 詩語가 생겨난다.
말없이 찾아 오는 言語다.그렇다고 새로운 단어를 創作한다는 것이 아니다.
존재한 우리 언어를 詩속 의미-전달어로 새롭게 사용함으로써
詩的話者의 노래를 풍요롭게하는 단어다.
우리 말은 세게 어느나라 말보다 다양하고, 많고,
各樣各色 표현해내지 못할 말이 없다.
우수한 뜻과 形을 지닌 글이다.
그런데, 어떻게하면 나만의 詩風 시어를 찾을 것인가, 이도 수없이 쓰다 보면
그 해답이 나온다. 이가 創作性이다.
사물을 보고, 현상을 보고,
觀念의 그늘을 보고,
노래의 이면을 보고,
해서, 着想되어진 言語다.
어느해 前에 누가 [재잘나무]란 시어를 내어 詩를 맛있게 이어
유명해진 詩가 있다. 그런데 이 재잘나무라는 시어를 가지고,
이미지그대로 詩的 화자환경
그대로 이사람 저사람 사용해댄다,
이는 모방이다.
말만해도 아는 어느 詩人이 재잘나무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한 詩를 보고 실망했다.
詩語의 차용은 이미지 환경(詩의 환경)에서의 재再 창작일때 가능하다.
요즈음에, 이성복이가 [입없는 입]하니 [입없는 입],.[말없는 말], [귀없는 귀].등등
시어 차용이 창작성 없이, 그대로 사용한 詩가 왜 그리 많은고, 한심한 것이다.
詩語 수 없이 많다. 이는 전부 사용되어진 이야기다
창작성...시일과 습작기간이 지나면 붙는다.
안심하자.[목마와 숙녀]처럼,백석의 당나귀와 나타샤처럼.
이런 시어(개방언어) 사용도
자기만의 독특한 언어로 다가와서 붙는다.
그것은 시인의 個性,
사람의 詩的 年輪,
시인의 詩의 格,
그 사람의 理知에 따라
다르게 형성된다.그래서 많이 習作해야한다.
- 독자의 몫을 배려한다.
- 이미지 중복을 피한다.
- 즉흥적으로 시 쓰기 연습.
詩 창작엔 어떤 원칙이 없다.
시는 詩답게 쓰면 된다.
詩답게라.
詩답게가 무엇인가 文學作品답게이다.
문학작품 답게가 무엇인가
크게 기본은 맞춤법의 준수,
시라는 운율성,간명한 문장이고,
그 다음이 독자의 공감성이라고 들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작자와 독자의 交感 즉 讀者의 공감성이다.
독자가 읽어 주지 못하면 [나만의 詩]라 할 수 있을것이다.
문학은 영화 음악 미술처럼 결국 간접 체험=읽기를 통한 독자를 爲한 것이다.
독자가 많이 읽어주고 사랑해주면 좋은 詩다.
이것이 결론이다.어느 분이 映像詩를 보고 엊그제 이것도 詩냐고 답을 달고 갔다.
映像화 된 詩는 영상문학의 일 분야로서
그림과 글과 음악과 시각과 청각이 주는 감성작용을 독자와 교감을 나누면서
독자의 안녕과 사랑, 감정적 교감과 對話를 추구하는,
독자를 위한 문학장르로 一部에선 이미 사업화하고 있고 수출까지한다.
학위과정의 학도들도 영상시 연구를 위해 各 학교마다 수두룩하다.
(인터넷강국=온라인 문학의 정착으로 이 분야의 정착은 필수)
그런데 이런 映像詩를 보고 詩의 본래 모습이 아니라고 혹평한다.
물론 그렇다.그러나 이제 세상이 달라졌고,
문학 환경, 문학취미의 문화가 달라졌다,
책 위의 활자로만 인쇄된 책 속의 詩가 아니라
음악과 영상 그림이 어울려진 좀 더 푸욱, 좀 더 자극적인,
좀 더 가까이 다가서는 詩/문학이기를 독자가 원한다.
인터넷 온라인 분야는 한국이 세계 제일이다.미국이 아니다.
그러니 온라인에서의 세계문학을 우린 선도해야한다.
난 스스로 온라인 문학에서 영상 시문학이론과 실험적 토대,
친환경적인 주제적 분석등
이 분야의 최고라고 스스로 자임한다
충분한 상업적 가치가 있어서 난 知人들에게 많이도 역설했다.
제가 일찌기 영상 문학 온라인(사이버)에서 시문학의 대중성을 위해
지난 3 년간 노력한 것도 이것이다...
재 작년 아주대 *** 박사와 함께 [한국사이버 시문학인협회]를
조직한 것도 다 이 이유이다.****회장을 초빙 불광동에서 정식 발족했지만
재정 여건이 여의치 못해 지금은 장기 휴업중,
반드시 이 분야를 발전을 위해 그 밑거름이 되고자한다.
온라인에서의 詩文學의 대중성 을
...
결국 글은 독자와의 공감성이다.전 그렇게 생각한다.
수많은 선배 문학인의 글들을 생각해보라,
과거 100년 동안의 그분들, 한국 문학의 생명성과 공감성을,
(생명성과 공감성의 확대를 위한 것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 문제는 여러 시인님들이 이야기를 많이하고 있으니,
작자가 노력해야할 詩眼일 것이다.시의 제재가 되는 사물과 현상에 접근하는 진실성,
시대성...等等)
모두 독자의 사랑(냉철한)속에서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詩人이라고 자처한 사람이 한 10만명이다.
각종 책에 기고. 백일장 당선. 동인지를 통한 詩人. 언론사. 방송사.
전국의 초.중.고. 대학의 교사. 교수. 강사...
수수없이 많다.취미 詩人까지 合하면 아마 100만명은 넘는다고 한다.
100만명
매우 좋은 현상이고,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다.
취미 시인들이 많을수록 그 나라 문학은 발전하고
나라의 영속성, 나라의 성장성,나라의 재정과 산업은 도미노현상처럼
전진적으로, 긍정적으로 파급되고, 발전한다. 이는 문화와 경제성장과의 상관을
노래한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그렇다면 詩人은 누구일까,
이에 對하여 모든 시인들이 한결같이 이야기한 이야기가
詩人은 職業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詩를 쓰면 그 순간 詩人이다.
라는 것이다.
고려말 방원의 何如가에 對하여 포은은 단심가로 答했다
충무공 이순신은 한산섬 달 밝은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詩를 읖조렸었고,
을지문덕은 살수대첩에서 패전하는 수장에게
여수문與隋將于仲文의 詩를 남겼다.
모두 장군이면서 그 순간 詩人인 것이다.
황진이는 技人이면서 詩人인 것이고,
즉 詩를 쓰면 詩人인 것이다.詩人이 되는 것이
무슨 벼슬하는 것이 아니요, 등단(?)하는 것이 나중에 돈이 뚝뚝 떨어지고
삶의 방편이 되는 등관登官도 아니다.
(*등단..이 용어자체가 부적절한 용어임.어느 원로시인도, 시인들도,
소위 등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아니한다.일부 문학사가 사용하는 용어임)
그래서 詩를 쓴다는 것은 자아自我라는 문제와 내 詩를 읽어주는 교감의 대상인
독자라는 소위[對像의 문제]가 떠오른다.
시인 중에는 전업시인님이 있어서 詩강의/시집으로 사는 분들이 있지만,
이 모두 나를 위한 자아 성찰, 내 안녕의 문제와
독자를 위한 행복성의 지향이라는 독자와의 공감성이다.
내 자신의 心像에 대한 수양을 제외하고
바라는 문제는 얼마나 많은 독자가 내 글을 읽어 주느냐가
좋은 詩와 詩人으로서의 성공 여부일 것이다.
그래서 모두 습작하고, 연구하고, 이미 많이 쓴 분들을 따르고,
이미 간 스승을 따르고,
모시고 한다,
독자가 많은 詩人에게는, 마찬가지 글을 따르는 (독자=)제자가 많을 것이고,
그런 詩가 좋은 詩 일것이다.
물론 文團에 무슨 감투 쓴 詩人,잘 나가는 문학사 社主로 영향력 있는
詩人, 따르는 제자가 많을 것이다.줄줄이 늘어 선다.
詩라고 별로 훌륭하지 않지만
뒤에는 아장거리는 습작도가 많을 것이다, 그런 현상,
그 분의 詩를 보고간 것인가,
아니다(論 전부는 아니지만)
분의 위세에 혹여 내 詩를 끼게 해볼까 하려는
습작도의 냉철한 이기주의(..순수하고 정성스러운 소망) 때문에 간 것이다.
이는 일시적이지 생명성이 없는 것이다.
말 없는 이름없는 좋은 詩는 시일이 지나면 언제인가 읽혀진다.
묻혀진 백석의 詩는 해방 30년이 지난 요즈음 국민이 열광할 정도로 읽혀지고 있다.
알자.
왜
독자는 언제나 냉정하고,
자기만의 행복을 위한 평범한 이기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독자와 독자의 성향은 시대를 두고 두고 살아있을 것이다.
앞으로 100 년,앞으로 천 년
詩人이 친척, 교수,박사,아니면 문단의 원로라고 읽어 줄 것인가,
아니다,
여러분!
여름 더운날 찬물을 속 시원히 들이키시면서
이 엄연한 사실을 저도 여러분도 냉철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아래 기술된 것은 正道가 아니고 原則도 아니다.
詩는 詩답게 다가서면 그만이다.
시적인 산문의 형태든, 시조율의 형태든, 주지든, 난해든, 유행가 가사이든,
고유 전래의 서정시 형태이든,
여러분 마다, 여러분 각자의 특유의 기교를 배우고,
이 기교(시풍)는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습작은 대개 3년 동안 1년에 300편 씩 1,000편을 쓰고 나면
이 길을 알게 된다.
이때가 되면 내 언어의 한계.수사의 빈곤감을 자인하고,
느끼고 .
멋진 사랑詩,감정詩의 유혹에서
스스로 벗어 난다.
즉 詩를 알게 되는 시기이다.
그리고 나서 다시 3년간에 1,000 편 씩,
9 년간,3,000 편을 습작하고 나면
이제 조병화님이나 서정주님이나 이형기님이나 김춘수님이나 김수영님이나,
그 분들의 詩의 경지를 알게 되고,
때론 넘기도 하고
내詩의 시풍이 그분들 수준으로 어느새 개발되고 정착 된다.
이제 스스로 詩人이라고 해도 된다
이 단계를 우린 지키자.
이동활의 음악정원의,모든 카페의, 나도, 분들도, 모두,
이 단계의, 사람들이고, 사람들의, 온통, 습작자이자 습작방이다.
무조건 쓰자
무조건 스자,
그래서 詩 習作 1,000편 정도 쓰고 나서 詩가 어떤것인가
도대체 어떻게하면 잘 써질것인가를
생각 해보자.
저도 습작도다.시의 경지를 아직 모르니 습작도이다.
詩를 쓴다고 하나마나한 이야기
그러나 저러나한 이야기를 詩전문지에 기고할것인가.
보아도 보아도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
이 야기가 그 야기인 글을 내놓을 것인가,드러내기 부족해서
습작한다. 3000편정도를 넘어서 스스로 詩의 經을 알 때까지,
문단의 원로 大詩人들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절대 對外에 제詩를 드러내지 않을것이다
남이 내詩를 귀하게 여길때 까지,
우린 모두 같은 동기=습작도다
*습작 기간에 주의 사항으로 좀더 참고한다면 다음과 같다
다음은 주의사항으로 일종의
글쓰기 버릇 기르기이지
아래 내용이 준수해야 할 원칙이 아니다, 너무 목적지향인,
을 를 사용이라던가
한정시키고 답답한 ㅂ.ㅍ의 어미 사용 이라든가..
모두 시적환경에 따라 쓸 수 있는 조사이다..내나라 내한글로,
글을 짓는데 무슨 원칙이 있으며,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기본인 고교 수준의
맞춤법 준수이고, 그 다음, 詩답게 쓰면 된다.
詩는 人의 格에 對한 학문이다.
설사, 국민학생이 쓴 글이라도 쉬이 비평하지 못하는 것은
그 글이 국민학생만큼 그나이에서,
그가 아는 범위內에서,그가 수식할 수 있는 詩語 범위內에서,
정성스러운, 그의 사고=철학적인 산물= 고귀함의 人格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상 습작도님에게 철학冊을 봐라,
佛/聖/儒經典을 이세상에서 全 인류가 가장 많이 읽는 시집-제 1위로 분류하고
읽어 보아라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수식어를 비유법으로 정리함이 필요하다.
(언어 사용이 달관하지 못한 초심자 시절의 주의사항이다)
-감춤과 드러냄이 절묘하게 짜여져야 글이 산다.
예..사랑이라면 사랑의 내용은 드러내지만 "사랑"이란 말은
감추어야 한다.
-글의 말미는 명사형이나 종결의미로 끝내라.
단정적, 확정적으로 끝내지 말라. 차라리 의문으로 끝내는 것이
더 효과를 가져온다 (초심자 시절에 주의사항)
-호흡을 너무 길게 잡지 않도록 소리내어 읽어보고,
단락이 너무 길어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를 때에는
2-3행 어딘가서 끊어 줘야한다. 가능하면 3행 정도에서
단락을 짓는 것이 호흡에 적당하다.(초심자 시절에 주의사항)
-좋은 시행은 적시 적소에 종결의미와 명사형으로 막아줘야 한다.
종결어미가 다음과 같으면...그래서 소리내서 읽어 보라는 이야기임
ㅂ ---답답
ㄴ ---차단하는 의미가 온다
ㄹ ---벗어나는 이미지.
ㅍ ---답답함.
※ 참고로 이름은 차단없이 터져 나가도록
-하늘 안의 붉은 얼굴 : 안의 ㄴ과 붉은의 ㄹㄱ에는
받침이 들어가 있어 읽기도 힘들고 리듬도 깨어진다.(초심자 시절에 주의사항)
-글을 적을 때 비유를 앞세우지 말라. 글에서는
1차적 의미가 더 중요하다.
1차적으로 현실을 묘사하고 2차적으로 비유법을
사용해 부연해야한다.
비유법이 첫머리에 나오면 재미가 없다.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초심자 시절에 주의사항)
-주격
...은 : 따로따로 느낌
...이 : 곁에서 함께 하는, 연관성 있는 표현
!?,. : 표현에 해당
※ 말은 아끼되 조사 사용은 정확하게 사용해야 한다.
-시작, 전환, 상승, 결구로 시를 전개해 나간다 (초심자 시절에 주의사항)
스스로 시의 진행과 연결을 자유자재로 한다면 이 또한 별 문제 없음
-단락의 종결의미를 모두 명사형으로 나열하면 변화의 맛이 없다.
-글을 적을 때 사실묘사에 너무 의존할 경우 혼자만의
감동, 작가만이 감동하는 글이 되므로 다른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는다.
즉 시적화자의 메시지가 없다. 그러므로 작품성과 수사를 고려하자
한 단락 내에서 나열로 적어 나갈 때는 두 행이 이질적인
이미지를 주도록 적어나가야 이미지가 산다.
........................................
글 이민영2005.07.10
대부분 작가들이 이야기하는 일반적인 참고사항이다
기본적으로
-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해서 써야 한다.
- 시를 소리내어 읽으면서 문맥의 흐름을 다듬는다.
- 우연한 기회에 스치는 영감을 메모해 두었다가 적당한 시어로 옷 입히기를 한다.
- 메모하는 습관.
- 추상과 구상을 적당하게 배분한다.
- 직유보다는 은유에 치중해서 글을 쓴다.
- 일상화된 언어보다는 자기만의 독특한 언어를 만든다.매우 중요, 소위 詩風내지는 작자만이 지닌 특유의 시맛이라한다..
자기만의 언어란 무엇인가,
이는 화자가 詩라는 환경內에서 나타내는
자기만의 운율=율조=시어일 것이다.
이전에도 이야기한 바, 詩語란 詩世界 안에서 주는 이미지라 할 것이다.
글을 수없이 쓰다보면 어느새 나만의 율조와 詩語가 생겨난다.
말없이 찾아 오는 言語다.그렇다고 새로운 단어를 創作한다는 것이 아니다.
존재한 우리 언어를 詩속 의미-전달어로 새롭게 사용함으로써
詩的話者의 노래를 풍요롭게하는 단어다.
우리 말은 세게 어느나라 말보다 다양하고, 많고,
各樣各色 표현해내지 못할 말이 없다.
우수한 뜻과 形을 지닌 글이다.
그런데, 어떻게하면 나만의 詩風 시어를 찾을 것인가, 이도 수없이 쓰다 보면
그 해답이 나온다. 이가 創作性이다.
사물을 보고, 현상을 보고,
觀念의 그늘을 보고,
노래의 이면을 보고,
해서, 着想되어진 言語다.
어느해 前에 누가 [재잘나무]란 시어를 내어 詩를 맛있게 이어
유명해진 詩가 있다. 그런데 이 재잘나무라는 시어를 가지고,
이미지그대로 詩的 화자환경
그대로 이사람 저사람 사용해댄다,
이는 모방이다.
말만해도 아는 어느 詩人이 재잘나무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한 詩를 보고 실망했다.
詩語의 차용은 이미지 환경(詩의 환경)에서의 재再 창작일때 가능하다.
요즈음에, 이성복이가 [입없는 입]하니 [입없는 입],.[말없는 말], [귀없는 귀].등등
시어 차용이 창작성 없이, 그대로 사용한 詩가 왜 그리 많은고, 한심한 것이다.
詩語 수 없이 많다. 이는 전부 사용되어진 이야기다
창작성...시일과 습작기간이 지나면 붙는다.
안심하자.[목마와 숙녀]처럼,백석의 당나귀와 나타샤처럼.
이런 시어(개방언어) 사용도
자기만의 독특한 언어로 다가와서 붙는다.
그것은 시인의 個性,
사람의 詩的 年輪,
시인의 詩의 格,
그 사람의 理知에 따라
다르게 형성된다.그래서 많이 習作해야한다.
- 독자의 몫을 배려한다.
- 이미지 중복을 피한다.
- 즉흥적으로 시 쓰기 연습.
詩 창작엔 어떤 원칙이 없다.
시는 詩답게 쓰면 된다.
詩답게라.
詩답게가 무엇인가 文學作品답게이다.
문학작품 답게가 무엇인가
크게 기본은 맞춤법의 준수,
시라는 운율성,간명한 문장이고,
그 다음이 독자의 공감성이라고 들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작자와 독자의 交感 즉 讀者의 공감성이다.
독자가 읽어 주지 못하면 [나만의 詩]라 할 수 있을것이다.
문학은 영화 음악 미술처럼 결국 간접 체험=읽기를 통한 독자를 爲한 것이다.
독자가 많이 읽어주고 사랑해주면 좋은 詩다.
이것이 결론이다.어느 분이 映像詩를 보고 엊그제 이것도 詩냐고 답을 달고 갔다.
映像화 된 詩는 영상문학의 일 분야로서
그림과 글과 음악과 시각과 청각이 주는 감성작용을 독자와 교감을 나누면서
독자의 안녕과 사랑, 감정적 교감과 對話를 추구하는,
독자를 위한 문학장르로 一部에선 이미 사업화하고 있고 수출까지한다.
학위과정의 학도들도 영상시 연구를 위해 各 학교마다 수두룩하다.
(인터넷강국=온라인 문학의 정착으로 이 분야의 정착은 필수)
그런데 이런 映像詩를 보고 詩의 본래 모습이 아니라고 혹평한다.
물론 그렇다.그러나 이제 세상이 달라졌고,
문학 환경, 문학취미의 문화가 달라졌다,
책 위의 활자로만 인쇄된 책 속의 詩가 아니라
음악과 영상 그림이 어울려진 좀 더 푸욱, 좀 더 자극적인,
좀 더 가까이 다가서는 詩/문학이기를 독자가 원한다.
인터넷 온라인 분야는 한국이 세계 제일이다.미국이 아니다.
그러니 온라인에서의 세계문학을 우린 선도해야한다.
난 스스로 온라인 문학에서 영상 시문학이론과 실험적 토대,
친환경적인 주제적 분석등
이 분야의 최고라고 스스로 자임한다
충분한 상업적 가치가 있어서 난 知人들에게 많이도 역설했다.
제가 일찌기 영상 문학 온라인(사이버)에서 시문학의 대중성을 위해
지난 3 년간 노력한 것도 이것이다...
재 작년 아주대 *** 박사와 함께 [한국사이버 시문학인협회]를
조직한 것도 다 이 이유이다.****회장을 초빙 불광동에서 정식 발족했지만
재정 여건이 여의치 못해 지금은 장기 휴업중,
반드시 이 분야를 발전을 위해 그 밑거름이 되고자한다.
온라인에서의 詩文學의 대중성 을
...
결국 글은 독자와의 공감성이다.전 그렇게 생각한다.
수많은 선배 문학인의 글들을 생각해보라,
과거 100년 동안의 그분들, 한국 문학의 생명성과 공감성을,
(생명성과 공감성의 확대를 위한 것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 문제는 여러 시인님들이 이야기를 많이하고 있으니,
작자가 노력해야할 詩眼일 것이다.시의 제재가 되는 사물과 현상에 접근하는 진실성,
시대성...等等)
모두 독자의 사랑(냉철한)속에서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詩人이라고 자처한 사람이 한 10만명이다.
각종 책에 기고. 백일장 당선. 동인지를 통한 詩人. 언론사. 방송사.
전국의 초.중.고. 대학의 교사. 교수. 강사...
수수없이 많다.취미 詩人까지 合하면 아마 100만명은 넘는다고 한다.
100만명
매우 좋은 현상이고,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다.
취미 시인들이 많을수록 그 나라 문학은 발전하고
나라의 영속성, 나라의 성장성,나라의 재정과 산업은 도미노현상처럼
전진적으로, 긍정적으로 파급되고, 발전한다. 이는 문화와 경제성장과의 상관을
노래한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그렇다면 詩人은 누구일까,
이에 對하여 모든 시인들이 한결같이 이야기한 이야기가
詩人은 職業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詩를 쓰면 그 순간 詩人이다.
라는 것이다.
고려말 방원의 何如가에 對하여 포은은 단심가로 答했다
충무공 이순신은 한산섬 달 밝은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詩를 읖조렸었고,
을지문덕은 살수대첩에서 패전하는 수장에게
여수문與隋將于仲文의 詩를 남겼다.
모두 장군이면서 그 순간 詩人인 것이다.
황진이는 技人이면서 詩人인 것이고,
즉 詩를 쓰면 詩人인 것이다.詩人이 되는 것이
무슨 벼슬하는 것이 아니요, 등단(?)하는 것이 나중에 돈이 뚝뚝 떨어지고
삶의 방편이 되는 등관登官도 아니다.
(*등단..이 용어자체가 부적절한 용어임.어느 원로시인도, 시인들도,
소위 등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아니한다.일부 문학사가 사용하는 용어임)
그래서 詩를 쓴다는 것은 자아自我라는 문제와 내 詩를 읽어주는 교감의 대상인
독자라는 소위[對像의 문제]가 떠오른다.
시인 중에는 전업시인님이 있어서 詩강의/시집으로 사는 분들이 있지만,
이 모두 나를 위한 자아 성찰, 내 안녕의 문제와
독자를 위한 행복성의 지향이라는 독자와의 공감성이다.
내 자신의 心像에 대한 수양을 제외하고
바라는 문제는 얼마나 많은 독자가 내 글을 읽어 주느냐가
좋은 詩와 詩人으로서의 성공 여부일 것이다.
그래서 모두 습작하고, 연구하고, 이미 많이 쓴 분들을 따르고,
이미 간 스승을 따르고,
모시고 한다,
독자가 많은 詩人에게는, 마찬가지 글을 따르는 (독자=)제자가 많을 것이고,
그런 詩가 좋은 詩 일것이다.
물론 文團에 무슨 감투 쓴 詩人,잘 나가는 문학사 社主로 영향력 있는
詩人, 따르는 제자가 많을 것이다.줄줄이 늘어 선다.
詩라고 별로 훌륭하지 않지만
뒤에는 아장거리는 습작도가 많을 것이다, 그런 현상,
그 분의 詩를 보고간 것인가,
아니다(論 전부는 아니지만)
분의 위세에 혹여 내 詩를 끼게 해볼까 하려는
습작도의 냉철한 이기주의(..순수하고 정성스러운 소망) 때문에 간 것이다.
이는 일시적이지 생명성이 없는 것이다.
말 없는 이름없는 좋은 詩는 시일이 지나면 언제인가 읽혀진다.
묻혀진 백석의 詩는 해방 30년이 지난 요즈음 국민이 열광할 정도로 읽혀지고 있다.
알자.
왜
독자는 언제나 냉정하고,
자기만의 행복을 위한 평범한 이기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독자와 독자의 성향은 시대를 두고 두고 살아있을 것이다.
앞으로 100 년,앞으로 천 년
詩人이 친척, 교수,박사,아니면 문단의 원로라고 읽어 줄 것인가,
아니다,
여러분!
여름 더운날 찬물을 속 시원히 들이키시면서
이 엄연한 사실을 저도 여러분도 냉철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아래 기술된 것은 正道가 아니고 原則도 아니다.
詩는 詩답게 다가서면 그만이다.
시적인 산문의 형태든, 시조율의 형태든, 주지든, 난해든, 유행가 가사이든,
고유 전래의 서정시 형태이든,
여러분 마다, 여러분 각자의 특유의 기교를 배우고,
이 기교(시풍)는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습작은 대개 3년 동안 1년에 300편 씩 1,000편을 쓰고 나면
이 길을 알게 된다.
이때가 되면 내 언어의 한계.수사의 빈곤감을 자인하고,
느끼고 .
멋진 사랑詩,감정詩의 유혹에서
스스로 벗어 난다.
즉 詩를 알게 되는 시기이다.
그리고 나서 다시 3년간에 1,000 편 씩,
9 년간,3,000 편을 습작하고 나면
이제 조병화님이나 서정주님이나 이형기님이나 김춘수님이나 김수영님이나,
그 분들의 詩의 경지를 알게 되고,
때론 넘기도 하고
내詩의 시풍이 그분들 수준으로 어느새 개발되고 정착 된다.
이제 스스로 詩人이라고 해도 된다
이 단계를 우린 지키자.
이동활의 음악정원의,모든 카페의, 나도, 분들도, 모두,
이 단계의, 사람들이고, 사람들의, 온통, 습작자이자 습작방이다.
무조건 쓰자
무조건 스자,
그래서 詩 習作 1,000편 정도 쓰고 나서 詩가 어떤것인가
도대체 어떻게하면 잘 써질것인가를
생각 해보자.
저도 습작도다.시의 경지를 아직 모르니 습작도이다.
詩를 쓴다고 하나마나한 이야기
그러나 저러나한 이야기를 詩전문지에 기고할것인가.
보아도 보아도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
이 야기가 그 야기인 글을 내놓을 것인가,드러내기 부족해서
습작한다. 3000편정도를 넘어서 스스로 詩의 經을 알 때까지,
문단의 원로 大詩人들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절대 對外에 제詩를 드러내지 않을것이다
남이 내詩를 귀하게 여길때 까지,
우린 모두 같은 동기=습작도다
*습작 기간에 주의 사항으로 좀더 참고한다면 다음과 같다
다음은 주의사항으로 일종의
글쓰기 버릇 기르기이지
아래 내용이 준수해야 할 원칙이 아니다, 너무 목적지향인,
을 를 사용이라던가
한정시키고 답답한 ㅂ.ㅍ의 어미 사용 이라든가..
모두 시적환경에 따라 쓸 수 있는 조사이다..내나라 내한글로,
글을 짓는데 무슨 원칙이 있으며,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기본인 고교 수준의
맞춤법 준수이고, 그 다음, 詩답게 쓰면 된다.
詩는 人의 格에 對한 학문이다.
설사, 국민학생이 쓴 글이라도 쉬이 비평하지 못하는 것은
그 글이 국민학생만큼 그나이에서,
그가 아는 범위內에서,그가 수식할 수 있는 詩語 범위內에서,
정성스러운, 그의 사고=철학적인 산물= 고귀함의 人格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상 습작도님에게 철학冊을 봐라,
佛/聖/儒經典을 이세상에서 全 인류가 가장 많이 읽는 시집-제 1위로 분류하고
읽어 보아라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수식어를 비유법으로 정리함이 필요하다.
(언어 사용이 달관하지 못한 초심자 시절의 주의사항이다)
-감춤과 드러냄이 절묘하게 짜여져야 글이 산다.
예..사랑이라면 사랑의 내용은 드러내지만 "사랑"이란 말은
감추어야 한다.
-글의 말미는 명사형이나 종결의미로 끝내라.
단정적, 확정적으로 끝내지 말라. 차라리 의문으로 끝내는 것이
더 효과를 가져온다 (초심자 시절에 주의사항)
-호흡을 너무 길게 잡지 않도록 소리내어 읽어보고,
단락이 너무 길어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를 때에는
2-3행 어딘가서 끊어 줘야한다. 가능하면 3행 정도에서
단락을 짓는 것이 호흡에 적당하다.(초심자 시절에 주의사항)
-좋은 시행은 적시 적소에 종결의미와 명사형으로 막아줘야 한다.
종결어미가 다음과 같으면...그래서 소리내서 읽어 보라는 이야기임
ㅂ ---답답
ㄴ ---차단하는 의미가 온다
ㄹ ---벗어나는 이미지.
ㅍ ---답답함.
※ 참고로 이름은 차단없이 터져 나가도록
-하늘 안의 붉은 얼굴 : 안의 ㄴ과 붉은의 ㄹㄱ에는
받침이 들어가 있어 읽기도 힘들고 리듬도 깨어진다.(초심자 시절에 주의사항)
-글을 적을 때 비유를 앞세우지 말라. 글에서는
1차적 의미가 더 중요하다.
1차적으로 현실을 묘사하고 2차적으로 비유법을
사용해 부연해야한다.
비유법이 첫머리에 나오면 재미가 없다.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초심자 시절에 주의사항)
-주격
...은 : 따로따로 느낌
...이 : 곁에서 함께 하는, 연관성 있는 표현
!?,. : 표현에 해당
※ 말은 아끼되 조사 사용은 정확하게 사용해야 한다.
-시작, 전환, 상승, 결구로 시를 전개해 나간다 (초심자 시절에 주의사항)
스스로 시의 진행과 연결을 자유자재로 한다면 이 또한 별 문제 없음
-단락의 종결의미를 모두 명사형으로 나열하면 변화의 맛이 없다.
-글을 적을 때 사실묘사에 너무 의존할 경우 혼자만의
감동, 작가만이 감동하는 글이 되므로 다른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는다.
즉 시적화자의 메시지가 없다. 그러므로 작품성과 수사를 고려하자
한 단락 내에서 나열로 적어 나갈 때는 두 행이 이질적인
이미지를 주도록 적어나가야 이미지가 산다.
........................................
글 이민영2005.07.10
출처 : 시사랑 사람들
글쓴이 : 행복한사랑 원글보기
메모 :
'시사랑사람들문학 카페 행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문태준等 미당 시문학상 후보의 대표작을 통한 시인들의 시향보기 (0) | 2005.10.02 |
---|---|
[스크랩] 처음으로 시를 쓰고자하는 분을 위하여/이민영 (0) | 2005.08.04 |
[스크랩] 詩心에 對하여/李敏影 (0) | 2005.08.04 |
[스크랩] 창작에 대한 의견/이민영 (0) | 2005.08.04 |
[스크랩] 습작에 대한 습작도 입장에서 제 생각/이민영 (0) | 2005.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