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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창작에 대한 의견/이민영

LEE MIN YOUNG 2005. 8. 4. 23:47
1.어느 사이트의 어느 분의 詩作 조언 글을 추천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님의 작품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감상하고 되새겨 봅니다.
읽는데 있어 매끄럽고 점성이 안정된 시적 형태를 갖추고 있어 읽는 정신이 즐거웠습니다.
익히 선배 시인들이 한번 씩은 훑고 지나간 재료이지만 대할 때 마다 진지해 지는 마음은
아마도 삶과 직결된 그늘이 있어선가 봅니다.
무난한 가운데 남는 아쉬움은~좀더 시적 '구태'를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빚어졌더라면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예전 시인들이 죽음을-육적인 슬픔,이별,아픔,으로 노래 했다면
***지금 현대시는 죽음을-...심는다'고 하는 사유의 경지에 까지 와 있지요.

같은 시적 소재라도 작가들은 수없이 남다른 깊이로 파고들어
낯설은 의식의 에너지를 끌어와 치열하게 펼쳐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쓰는 이야기든 그저 반복적 답습의 노래가 되고
제목만 보아도 바쁜 세상에 더는 읽어 볼 필요가 없는 너무도 빤한 시'들로
흐르기 쉽습니다.
새들이 날아가는 모습'을 시인이 노래 할때도 여러 시선의 종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리움'으로 가볍게 건저내는 시인들도 있지만 그것은 너무도 이제는
흔하디 흔한 사유입니다, 단물 빠진 껌입니다
연애 할 만한 기초적 나이만 들면, 새들이 '노래'를 한다거나
그리움(님)을 찾아 날아간다 는
표현을 쉽게 하고도 남습니다

지금은
**새들이 날아가는 것은,풀씨들의 이동로다"
**한 밤중에 나뭇 잎을 만지면 뿌리가 잡힌다" 등등의
누구나 생활에서 경험하고 익숙하게 보아온 환경에서
시인들은 밤을 새우고 시간을 퍼 올리며
아무나 볼 수 없는 틈을 비집고, 시각적 틀을 찢고, 들추고,
사유를 케내는 광부의 삶들을 일구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평면 거울에 길들여 지지 말고 입체적 거울을 들여다 보고 그 안에 빠져들고
또다시 휘젓고 나올 수있어야 시인으로써 사명을 그나마 감당하며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

2.이 글은 어느 사이트의 어느 분의 조언글이다

초심자에게 혼동이 올까 몇 가지만 덧붙인다.
시문학은 개인의 문학이고 문학성은 문장론적인 수사가 따르고
수사의 방법에 여러기지 비유법을 사용한다.
요즈음 각 인터넷 사이트나,강좌에서 사용되는 이론이고 못박히도록 듣는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글의 흐름 과정에 있는것이 아닌
시가 지닌 문학성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시에 있어서
연이나 행간에서 단락이 사유의 경지에 이르도록 탁월한 비유를 했다 하더라도
시 전체가 주는 시적 이미지가 문학적이지 못하다면
여느 글과 마찬가지 일 것이다.결국 하나의 사설이나 감상문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시가 되기 위해서는
시인의 가슴- 산고를 겪는 듯한 아픈 마음으로 이어져 가야한다.
즉 人은 詩를 연출하는 연출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詩心이라는 경지와 시력을 얻게 된다.
아무리 비유와 비유를 더해서-사유.이미지에 이미지를 더해서 난해의 바다로
詩의 귀와 연을 끌고 간다 하더라도
읽는 이 독자에게 가슴에 미치지 못한 하나의 연구문이나 설명문이 된다면,
이는 시가 아니라는 것이다.그래서 시인이라는 것은 직업이 아니라고 한 말이 여기에 있다.
신경림 시인이 한 이야기다 "제자 한 놈이 신춘에 당선되고 시가 매우 좋아서 몇 번 칭찬을 아끼지 아니했더니
고 놈이 그 좋은 직장을 때려 치우고 양다리 걸치고 본격적으로 詩作을 하겠다고
인사하러 왔다나.."세상에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태어난 난 시가 무슨 시가 되겠는가..
그래서 다시는 상종하지 말라고 호통쳐서 보냈단다.맞는 이야기다.
사물을 그리든, 자연의 정경을 그리든, 세상을 그리든, 사람을 그리든,
아니면 봄같은 봄을그리던, 가슴과 가슴으로 숨 쉬지 아니하면 그것은 시가 아니다.
정경의, 봄의, 사람의, 세월의, 설명문일 뿐이다.
或者는
물론 문장론적으로 훌륭하다고, 문학적으로 쉬이 찾을 수 없는 수사라고,
극구 칭찬하려는지 모른다.
그러나 시가 아니다.

다음은 예를 들어서 이야기한다
예를들면 현하의 시인님들의 詩를 평가한다는 것은 제 자신 자격이 없음으로
정식 평론도 아니므로 생략함


결론은 다음같은 시적인 혼이 들어 있는 것 이여야하지 않겠는가..
염소를 의인화 해서 우리들에게 많은 시적 이미지를 준 시다
할머니와 염소의 대화, 풍경, 정말 아름답다.이처럼 살아 숨 쉰다.
시는 약동이여야 하고 교훈적이여야 하고,향긋하며 상쾌하여야 한다.

수많은 백석의 시가 현실 간난의 삶을 읖조렸는데도 항상 초월한 향기이다.
삶이 다정하게 다가 온다.느닷없이 나타샤는 흰 당나귀와 눈을 가져다와서
그 아름다운 사랑시 서정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를 가져왔다
이가 시인의 창작성이다.
시인의 몫이다


염소의 저녁
-안도현

할머니가 말뚝에 매어놓은 염소를 모시러 간다
햇빛이 염소 꼬랑지에 매달려
짧아지는 저녁,
제 뿔로 하루종일 들이받아서
하늘이 붉게 멍든 거라고
염소는 앞다리에 한번 더 힘을 준다
그러자 등 굽은 할머니 아랫배 쪽에 어둠의 주름이 깊어진다
할머니가 잡고 있는 따뜻한 줄이 식기 전에
뿔 없는 할머니를 모시고 어서 집으로 가야겠다고
염소는 생각한다
[시집 -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2004년 창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 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3.시어 사전의 활용에 대하여
항용 시어 사전을 두고 시 짓기에 활용한다.
시어 사전은 무엇인가 詩에 사용되는 이미지 語를 집대성한 낱말 사전이란 의미이다.
詩語란 글자 그대로 詩라는 문장속에 사용되는 낱말이다.
낱말이 본래의 의미를 떠나 詩 속에서는
여러가지 이미지를 창출하며 그림을 그리고 나타낸다.
이를 이미지 내지는 시어라고 한다.
시에서 시어는 그때 그때 詩的인 문장의 환경,이미지 환경에 따라 그 意味가 달라진다
그래서 항용 하늘이 푸르다 [푸른] 하늘할 때의 시어 [하늘]의 의미는
희망, 약동, 순결, 지고,그리움이기도 하고,
반대로 암흑, 억겁, 슬픔 .그대,독경,나신.질투등 등 수 없이 많다.
시인이 어떻게 빚어 내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는 천차 만별이다.
그래서 시어는 어느 한 가지로 한정시킬 수 없다.
그런데 서점이나 문학가나 도서관에 가면 [시어연구] 내지는 [詩語사전]이 있는데
독자는 그것을 가지고 짓기를 하려 한다.
잘못된 습성이다 시어 사전이나 시어 연구는 詩人의 詩에서
그 작품內에서의 한정된 의미를 주는 이미지 연구및 보조자료이지, 이것이
국어사전처럼 하늘은 시에서는 [..]이다, 사뇌는[..]이다.
갓개의 슬픔은 [무엇]이다. 라고 정의되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시어사전이란
용어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어느 문학도가, 지금까지 사용된 1900년대 이후 발표된 모든 시를 집대성해서
거기서 사용된 낱말을 ㄱ..ㄴㄷㄹ..따라..풀이해서 책자로 編著를 하였다면
어디까지나 [詩 解釋/감상]을 위한 보조자료이지 詩語라는 낱말사전일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더라도 지금 문단은 우리 말에 대하여
쓸데없는 비약,
순치의 반복,
어순의 변경.
이미지에 이미지를 더한 시어의 상호 충돌 等으로
詩가 난해해지고 어렵다는 評을 듣는데, 이런 시어 사전을 놓고 시 빚기를 한들 무슨
좋은 詩가 나오며,우리 문학의 발전을 위하여 바람직한 학습인지 의심스럽지 아니한가?
문장.
시에서 단어의 이미지는
오랜 세월을 두고 두고,
스스로 자기의 감성 속에서
용해 되고,
인용 되고,
사실의 실사처럼 상상의 유추로 다가 올 때 사용되는 어귀이다.
책을 많이 읽고,
쓰기를 많이 하고,
생을 겪고, 세월을 지고도 보고,
그리고 많이 습작과
진리를 깨달아 가거나면 낱말이 詩와 만나는 그 순간을 저절로 알게 된다.
조병화님이나 미당 서정주님의 詩를 보면 낱말의 연결과 작문이 어색함이 없는 것은 무엇인가,
수없이 많은 세월 동안 읽고,
알고,
겪고, 세월에 의해서
스스로 손에서, 마음에서,시가 빚어 져서 나온 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어 사전을 보고 시를 "짓는다"는 것은 옳지 아니하고
이런 류의 사전을 만들어서 편찬한다는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우리들[국어 낱말의 의미는 국어사전=한글사전]으로 이미 한정이 된 것이며
시에서 사용된 수식의 방편으로
문장의 앞과 뒤, 행과 행,연과 연,그리고 詩의 제재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에 對한 주인공은
오직 詩를 빚어내는 詩人의 몫이다.

4.
백년 뒤에 우리 후배.우리시민,
사람들이 내 詩를 읽고 무엇을 느낄것인가 생각하고 詩를 써라.
지금 우리들이 애송한 詩들은 많이 읽히는 현대詩들은
불과 80年前인 1920년대부터 1980년代에 이른 詩들이다
보통 사람들.문학도.그리고 사람들에게
무슨 詩가 읽혀 지고 애송 되어 가고
이어져 오는지 생각하고 習作을 하라.
문예사조와 詩史가 있겠지만 그때 그때 문단의 수사와 유행이 있겠지만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詩란
동서 고금이든,
수 많은 날의 差異이든,
다 같은 것,
이를 염두에 두고 습작의 방향을 잡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쓸데없는
언어의 장난 질로
세월을 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현대시나 현대문학이나
요즈음 문학지를 보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백 번 수무 번을 읽어야 한다.
그래야 이해가 온다.
우라질,
그래
수무번 백번을 읽어야 感이 오는 詩가 무슨 詩인고...
괜히 종이가 아깝지 아니한가

100년 뒤, 내 글을 읽어 줄 독자를 생각해보자
문학이란
작문이란 독자를 의식해서 글을 써서는 아니 되나
나도 이름을 남기고 싶은 시인이 되어 보겠다면.....,
왜, 백석님의 詩가,
70년이 지난 오늘에도 온 국민이 열광에 가깝게
각광을 받는가?
















출처 : 시사랑 사람들
글쓴이 : 행복한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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