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를 둘러싼 야단법석]
- 문학이란 무엇인가, 비평이란 무엇인가 -
황주간은 난감했다.
방금 통화에서 평론가 최씨가 원로시인 정씨의 시의 대한 평론을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최평론가는
"이건 시가 아닙니다. 나는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라고 하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사실 황주간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자신도 정시인의 시를 열어보는 순간 몹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황주간의 출판사가 발행하는 문학잡지는 그간 <시와 비평의 만남>이라는 기획물을 실어왔는데,
이 기획물은 한 개의 시와 이에 대한 평문을 동시에 발표하는 식이었다. 다음 호에 마지막 횟수가 실릴 예정이었다.
대미를 장식할 시인으로서
정시인을 택할 수 있었던 것은 황주간에게 대단한 횡재였다.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대접받고 있던 정시인은 몇 년 전부터 시골로 내려가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은둔하다시피 살면서 최후의 역작으로 삼을 장시를 집필 중이었다. 그런 그가 황주간의 청탁을 흔쾌히 받아준 것은 잡지에 대단한 무게를
실어주는 일이었다.
그런데 정시인이 보내 준 시는 제목과 내용이 이러하였다.
비
비가 온다.
이것이 전부였다.
최평론가의 화가 난 듯한 음성이 귀에서 떠나지 않아 난감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던 황주간은 어쨌든 오후에 있을 편집회의에서 이 문제를 토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오후에 모인 편집의원들도 난처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정시인에게 시를 고쳐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정시인의 행적에 대한 일화 중에 이런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정시인은 어느 잡지에 기고하는 시에서 여성의 생식기 이름을 쓴 적이 있었는데, 그 잡지 편집인 중의 한 사람이 그를 술자리에서 만나 이 단어를 빼달라고 부탁했다. 조용히 편집인의 말을 듣던 정시인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니가 시를 알아? 내 시는 내 목숨이야!"
라는 고함을 편집인의 놀란 얼굴에 뱉고는 화가 끝까지 난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그 후로
주간이 바뀔 때까지 그 잡지는 정시인의 시를 싣지 못했다.
그러니 평론가를 바꾸는 길밖에 없었는데, 최평론가가 거절한 일을 같은 비중을 지닌 다른 평론가가 맡겠다고 나설 것 같지도 않았다. 이런 저런 의견이 오갔으나 만족스럽지 않던 중에 한 위원이 색다른 제안을 했다. 소장평론가 여러 명에게 적당한 분량의 평문을 쓰게 하여, 노시인에게 공동으로 바치는 방식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황주간은 그게 모양이 괜찮다고 여겨 그렇게 하자고 했고, 다른 편집위원들도 딱히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황주간은 정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편집회의에서 새로운 제안이 들어와 긍정적으로 검토한 후 최평론가의
동의도 얻어냈으니, 이제 정시인의 의사에 따르겠다고 설명했다. 정시인은 그것도 좋겠다며 선선히 승낙해주었다.
여러 소장평론가들에게 부랴부랴
연락이 갔다.
가게에 진열된 물건들처럼 여러 글들이 죽 나열되는 식이어서 기분이 썩 좋을 일은 아니었는데도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도착된 원고들은 오히려 경쟁을 의식한 듯 좁은 지면에 돋보이는 생각들을 구겨넣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이리하여 이들의 평문이 실리게 되었는데, 해석이 각양각색이었다. 그 중 몇 글들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대강 이러했다.
1. 온다는 현재형은 부재의 구별을 전재했다. 비가 오는 것은 또한 가는 것을 예상케 한다. 비는 생명의 근원인데, 생명은 비가 고인 바다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생명은 존재하다가 다시 사라지는 유한성에 묶여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존재의 무상성을 의미한다.
2. 정시인은 비 맞기를 좋아한다고 자주 말한 적이 있는데, '비를 맞으면 촉각이 자극되어 성적 쾌감을 느낀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여기서 성적 욕망의 도래를 말하는 것이다. 성적 욕망은 감각의 극한치를 말하며, 몸의 원리를 대변한다. 따라서 이 시는 개념과 금욕적 도덕이 지배하던 시대가 끝나고 감각과 본능의 천하가 올 것이라는 탁월하고 집약적인 예언이다.
3. 이 시는 물/불, 상승/하강의 대립구조 안에서 물과 하강을 말한다. 이는 곧 여성/남성과 배타/포용의 대립이다. 상승은 발기하는 남성의 성기를 의미라며 하강은 이를 촉촉이 덮어주는 여성의 성기를 의미한다. 즉 이 시는 남성중심주의에 대한 도처한 비판이며 여성의 포용성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인식한 시인의 혜안을 보여주고 있다.
4. 비가 오면 생명이 자라난다. 비는 땅에 스며들고 강을 이루어 뭇 생명의 거름이 된다. 생명은 다시 몸에서 수분을 발산하여 구름을 이루고, 구름은 다시 비가 된다. 따라서 그는 노자의 자연관이나 불교의 윤회관, 나아가 니체의 영구회귀를 연상케 하는 자연의 영원한 질서를 노래하고 있다.
5. 고대 희랍의 철학자 아낙시메네스에 따르면 세계는 땅과 물, 공기와 불의 4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비는 물을 의미한다. 비는 땅과 만나고, 또한 비는 공기를 거쳐서 오지만 오직 불만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시는 불이 꺼진다는 의미인데, 불은 열광과 소멸의 기운이며 따라서 이는 우리 시대가 안정 속의 생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신뢰와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6. 여기서는 비는 그의 다른 글들과 비교해보면 아닐 비자로 보아야 한다. 정시인은 한 에세이에서 우리 시대의 근본적 문제는 존재와 무의 대립이 세상을 지배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존재와 무의 대립 대신 정시인은 是존재와 非존재의 대립을 제안하면서 무는 없다고 선언했다. 따라서 이 비는 동일성에 포괄되지 않는 나머지라는 의미이며, 타자와 차이의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는 탈근대적 지평에서 바라본 근대성에 대한 비판이다.
7. 여기서의 비는 그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빗자루로 보아야한다. 다른 시에서 정시인은 "쓰레기들이여 심판을
아느냐 / 형제도 짐작할 수 없는 / 거대한 비로 쓸려져 갈 / 쓰레기들이여" 라고 일갈한 적이 있다. 이 빗자루로서의 비라는 표현은 그 밖의
시들에서도 여러 번 사용된 적이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최후의 심판을 의미하는 종말론의 시이다.
8. 여기서의 비는 그냥 비이기도 하고, 아닐 비이기도 하고, 빗자루의 비이기도 하다. 이것들간에 어느 것이 맞는지 구별할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다. 이는 시인이 의도한 바인데, 그는 문학언어의 운명적인 중의성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문학의 자기반추의 사례로 보아야 한다.
9. 이 시는 뒤샹의 변기와 같다. 일상언어와 전혀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이 시는 문학, 나아가 예술의 경계를 지시하고 있고, 더 이상 확신할 것이 없는 현대예술의 운명을 말하면서 동시에 예술에 대한 새로운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10. 이 시는 너무나도 명백한 표면의 배후에 의미심장한 역설을 감추고 있으며, 우리 시대 문학의 현주소에 대한 탁월한 진단이며 화두이다. 얼핏 보기에 더 파내려 갈 깊이가 전혀 없는 것 같은 이 시는 우리 문학의 깊이 상실의 극한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며, 따라서 이 시는 우리 문학에 대한 우렁찬 질타이다. 또한 이 시가 시로서 발표된 것은 해석자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말하는데, 깊이 없는 시를 비판하는 대신, 그런 시에 엉뚱한 깊이를 갖다 붙이는 자의적 해석에 대한 매서운 조롱이기도 하다.
11. 이 글은 그 자체로서는 엄격한 해석이 불가능하다. "비가"와 "온다"는 말의 일상언어적 결합성이 너무 커서 이것만으로는 어떤 다른 의미를 구해내기에 너무 빈약하다.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모든 해석은 자의성을 면할 수 없다. 이 문장에서 인식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도착한 해석들을 읽으면서 황주간은 더러 이해되지 않는 구석들도 있었으나 매우 다채롭고
時流와도 잘 합치하는 모양을 갖추었다고 생각하여 내심 흡족해하며 한시름 놓았다.
책이 나오자 황주간은 정시인에게 즉시 책을 보냈다.
그런데 이틀 후, 정시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또 뭣이 잘못됐다는 이야기를 들을 것 같아 전화를 받는 순간 황주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시인은
"그것 참..."
이라고 운을 떼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황주간이
"네, 말씀하십시오. 무슨 말씀이든지 달게 듣겠습니다."
라고 거들어주자 정시인이 겨우 입을 열었다.
"내가 말이야... 실수를 했구만. 황군 자네도
알지 않나. 책이니 종이니 엉망으로 창문가까지 쌓여서 내 방이 낮에도 컴컴하잖아. 그날 급하게 집을 나서면서 그 김에 자네한테 원고를 보낸다는
것이 다른 종이를 넣었단 말이야. 첫 문장만 적고 놔뒀다가 나중에 다른 종이에 다시 시작했는데, 그만 첫 문장만 적은 종이를 보내고 말았네.
그날 워낙 경황이 없어서..."
황주간은 어이가 없고, 그간 마음 고생한 생각이 나서 "정시인님 목숨인 시를 그렇게 다루시다뇨!"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 위 풍자콩트는 ID '포에지' 라는 분이 꽤 오래 전(?!)에
창비 자유게시판에 올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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