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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 김학규 장군 - 박정희는 내 생명의 은인

LEE MIN YOUNG 2008. 11. 19. 00:50

독립군 김학규 장군 - 박정희는 내 생명의 은인

(독립군 김학규 장군 - 박정희는 내 생명의 은인) 


신경군관학교 2기 출신으로 열하성(熱河省)에 있는 만주군 보병 8단 부관(중위)로 근무하던 박정희는 광복직후 북경으로 가서 광복군 3지대 ‘평진대대’에 합류했다. 그때 제3지대장이 김학규 장군이었고, 박정희는 제2중대장이었다. 

김학규 장군은 열병 등의 신병으로 귀국하지 못하다가, 1948년 4월16일 영국 상선편으로 귀국했다. 김 장군은 곧 대동청년단을 조직하고 한독당(韓獨黨) 조직부장에 취임한다. 1949년 6월26일 현역군인이던 안두희가 김구 선생을 저격하자, 안두희의 한독당 입당을 주선했던 김 장군은 배후조종 혐의로 군사재판에 회부돼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1950년 6월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은 김학규 장군을 서대문 감옥에서 석방했다. 전쟁이 끝난 후 재수감된 김 장군은 4·19 직후 풀려나 1960년 한독당 대표최고위원에 취임한다. 

1961년 5·16 이후 박정희는 옛 상사였던 김학규 장군을 보살폈다. 김 장군을 복권시키고, 1962년 김학규 장군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토록 했다고 한다. 


원로 한국학자인 최서면(崔書勉·78·일본거주)씨는 “김학규 장군이 중풍으로 쓰러져 운신을 못 할 때, 박 대통령이 내게 ‘입원시켜 드리고 돌봐 드리라’고 부탁해 내가 그 분을 등에 없고 가서 국군 병원에 입원시켜 드렸다”면서 “김학규 장군은 병석에서 입버릇처럼 ‘박정희는 내 생명의 은인’이라는 말을 했다”고 했다. 

광복군 3지대 ‘평진 대대’ 대대장이었던 신현준(申鉉俊·88·미국 거주) 전 해병대 사령관은 “내 아래에서 중대장을 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김학규 장군을 볼 기회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 자신의 예전 상관을 깍듯하게 모셨다”면서 “두 사람이 주고받은 정리(情理)를 생각하면, 세상을 ‘친일이다, 아니다’로 재단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알게 된다”고 했다. 

1967년 9월20일 김 장군이 서울 마포구 망원동 자택에서 별세하자, 박정희 정부는 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그를 국립묘지에 안장케 했다................

이 글을 읽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대하여

난 무엇이라고 할까....민족주의자, 사회적평화주의자, 통일론자, ......아닌 가
저서 국가와혁명과 나, 그리고 평소 국가와 민족을 대하는 시선, 품의 등을 볼때 박대통령은 민족주의자요, 야망가이자 사회적평화주의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