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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로 빚어진 사람 / 김선우

LEE MIN YOUNG 2010. 4. 7. 10:30

 

물로 빚어진 사람 / 김선우

 

월경 때가 가까워 오면
내 몸에서 바다 냄새가 나네

깊은 우물 속에서 계수나무가 흘러나오고
사랑을 나눈 달팽이 한 쌍이 흘러나오고
재 될 날개 굽이치며 불새가 흘러나오고
내 속에서 흘러나온 것들의 발등엔
늘 조금씩 바다 비린내가 묻어 있네

무릎베개를 괴어 주면 엄마의 몸냄새가
유독 물큰한 갯내음이던 밤마다
왜 그토록 조갈증을 내며 뒷산 아카시아
희디흰 꽃타래들이 흔들리곤 했는지
푸른 등을 반짝이던 사막의 물고기 때가
폭풍처럼 밤하늘로 헤엄쳐 오곤 했는지

알 것 같네 어머니는 물로 빚어진 사람
가뭄이 심한 해가 오면 흰 무명에 붉은,
월경 자국 선명한 개짐으로 깃발을 만들어
기우제를 올렸다는 옛이야기를 알 것 같네
저의 몸에서 퍼올린 즙으로 비를 만든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들의 이야기

월경 때가 가까워 오면
바다 냄새로 달이 가득해지네

<남진우 님의 해설>
.
"달과 여인과 바다. 이 이미지의 연상망은 원형적인
만큼이나 상투적인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은
이를 기계적이고 작위적으로 연결시켜 놓지 않고
구체적이고 토속적인 상황 설정을 통해 제시함으로
써 설드력을 얻고 있다. 여인의 몸은 바다의 조류가
넘나들고 달이 운행하는 우주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그것은 모든 것이 흘러 나오는 무한한 생산성을 약
속한다. 여인의 몸에서 <퍼올린 즙>이 비가 되어
내린다는 발상 속에는 풍요를 기원하는 대지모신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시인의 시가 지닌 건강성은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에서 보기 힘든 에너지를
과시하고 있다."

시를 참 잘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