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시밭에 망옷 / 이민영
아버지가 여든이었을때 빚으로 남에게 넘어가고
달랑 초가집 한 채 채마밭 한 두덩이만 있었다, 이놈 잘못때문이다.
겨울, 일구던 그 텃밭에서
띄엄 띄엄 감자모종에 망옷 붓갈이를
그 아버지처럼 쇠스랑질을 하고 있다.
할아버지의, 아버지의,
아이의, 똥도 오줌도
엉켜서 보듬고 잠자는
수렁밭의 억센 진초록, 풀잎의 밤낮을 달굴
하얀 뿌렁구의 숨소리인지
눈발로 달궈진 들녁이기에 사랑을 서럽게했던
사모의 눈물도 햇살로 피어나는 것일까,
채마 잎새 마다 깃들어 있는
엄니와 아부지 이름을 부를때면
한데 시절을 지지며 볶고 있는 풀싹들,
민들레꽃, 개나리, 채송화 씨, 엄니 브롯치, 지까심,
여울패랭이, 합수통, 똥장군, 나이들수록 그리워지는 이들은
바램이든가, 숨숼 수 없도록 그리워지는 새럼빡 울따리에
오늘은 어느 인연이 엄니 속치마를 달구고 있을런지,
할아버지의, 아버지의, 아이의 겨울이
죽어가는 순명의 위엄으로
논시밭을 태우고 있다.
출처 이민영 페이스북 2013.01.27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幸福한 사랑1 원글보기
메모 :
'LEE MIN YOUNG,추천시와 추천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누가 울고 간다 / 이민영 (0) | 2014.08.03 |
---|---|
[스크랩]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나태주 (0) | 2014.04.06 |
[스크랩] 야상곡 / 이민영 (0) | 2014.03.16 |
[스크랩] 4월의 시 / 아름다움이란-이민영 (0) | 2014.03.16 |
[스크랩] 성탄절의 시-사랑이라는 말이 부끄러워지는 겨울에 / 이민영 (0) | 2013.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