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음 자연으로 나가면 꼭 만나게 되는 풀이
있다.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자라고 있었을 터이지만, 이즈음 꽃이 너무도 풍성하여 자연 눈길을 주게 된다. 금강초롱 같은 그 존재
자체가 귀한 꽃들은 보기 어려움에도 많이 알고 있지만, 언제나 우리 곁에 지천으로 있어서 그리 귀하지 않게 여기는 풀인 까닭에 구태여 이름 한
번 불러주는 것조차 인색했던 풀. 바로 고마리이다.
길을 가다 “이 풀의 이름이 고마리”라고 알려주면, 그제야 “아하!. 그렇구나. 그러고 보기 정말 곱구나”하며 눈길을 주는 이가
대부분이다. 고마리가 피어있는 모습을 보면 정말 곱다. 소금 뿌려놓은 것 같다고 한 메밀꽃이 무리를 지으면 장관을 이루지만, 고마리 무리도 이에
못지 않다.
희거나 분홍색이거나 혹은 더욱 매력적인 것은 흰 꽃잎 끝에 진한 분홍색이 함께 어우러지고, 그 작은 꽃들이 별이 반짝이듯 보여 달린 모습
말이다. 이렇게 가까이 들여다 보아도, 이미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가을 들녘을 배경 삼아 멀리 보아도, 은은하게 퍼지듯 무리지어 있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알고 보면 이리 고운데 왜 고마리를 가까이 하지 않았을까? 산의 초입이나, 마을 옆 작은 개울가에는 물론이고, 우리가 사는 마을 주변에서도
도랑이 흐르면 으레 만나지는 풀이니, 고귀한 느낌이 안 들었을 법하다.
하지만 고마리가 사는 모습은 그 모습보다 더욱 고고한데, 왜냐하면 더러운 물을 깨끗이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오염된 축산폐수를
고마리가 살고 있는 수로를 거치도록 만들었더니 1급수가 되더라는 기록도 있다.
만일 고마리가 그리 깨끗한 곳에 있지 않다고 마음을 주지 않은 이가 있다 치자. 그런데 이 고마리가 없었다면 그 물은 얼마나 더러웠을까?
생각해보자. 더러워진 자연을 깨끗이 해주는 고마리에게 주변을 더럽히며 지구생태계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인간이 어떤 마음으로 봐야 할까를 잠시라도
생각한다면 고마리는 그 모습뿐만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소중스럽다.
고마리는 마디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그래서 줄기를 보면 마디가 만들어져 있다. 여름에 무성한 잎을 만들며 하나, 둘 꽃이 피다가
가을이 되면서 지천에 꽃을 피워 놓는다. 자세히 보면 손가락 길이쯤 되는 잎의 모양도 아주 개성 있다.
고마리라고도 하고, ‘고만’이라고도 하며. 생약명으로는 ‘조선극염료’라고 부른다. 이름의 유래를 두고 어떤이들은 물가에서 나쁜 환경에도
불구하고 무성하게 퍼져 나가니 이제 그만 되었다고 ‘그만이풀’이라고 하던 것이 고마니를 거쳐 고마리로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예전에는 어린 잎과 연한 줄기를 채취하여 나물과 국거리로 이용하였고 약으로도 쓰였는데 주로 지혈제, 요통, 소화불량, 시력회복
등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물가에 심으면 단순한 수질 정화 정도가 아니라 중금속 제거 효과도 있다고 한다. 또 왕성한 생명력으로 오염돼 죽어가는
물에 생명의 산소를 넣어주기도 한다. 다만 너무 왕성하니, 다양한 습지 식물들이 살아야 하는 안정된 습지에서는 다소….
자,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 들녘에서 고마리를 만났다면 큰 소리로 불러주자 ‘고마운 고마리’라고. 그러면 고마리는 세상에서 가장 수줍고 고운
모습을 환하게 반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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