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덧상

채송화

LEE MIN YOUNG 2008. 2. 19. 23:51




    채송화

    이민영李旻影

    ...
    노랑 빨강 초록 분홍
    핑크 빛이
    땅에 앉아서
    넘치지도 좁지도
    뽐내지도 흘리지도 아니합니다

    혼자서는
    채송화라 하지않고
    꽃이라 않고
    피지 않고
    어깨동무로
    오시는 길목마다 님이 됩니다.

    [출처 무등일보 2005.07.01]

     





    겨울, 채송화씨

    -김용택-

    아내는 나를 시골 집에다 내려놓고 차를 가지고 돌아갔다.
    갑자기, 가야 할 길과
    걸어야 할 내 두 발이
    흙 위에 가지런히
    남는다.


    어머니 혼자 사시는 우리집 마당에 발길 닿지 않는 땅이
    이렇게 많이 있다니? 가만가만 돌아다니며 마당 가득 발자국을
    꼭꼭 찍어본다. 이 마당에서 벌거벗고 뛰어 놀던
    내 형제들과 이웃 아이들의 벌거벗은 웃음 웃음소리 대신
    어머니는 해마다 발 디딜 곳 없이 마당 가득 화려한
    채송화꽃을 피워놓는다.
    정말 환하다. 달빛은 환해서 세상의 모든 욕망을 죽이고
    나무만을 따로따로 달빛 아래 세운다.
    달빛은 모든 것들을 떼어놓고 너희들의 말이 거짓이었음을
    그렇게 보여준다. 물만 흐를 줄 안다. 발밑에서 참지 못하고
    깔깔대는 까만 채송화씨들이 세상을 걷느라 두꺼워진 내 발바닥
    깊은 속살을 찌른다.
    씨만이 세상의 정곡을 찌른다.


    나는 이 세상 모든 길들을 거둔다.
    세상의 소식이 닿지 않는 이 간단명료한 사랑을 나는 알고 있다.
    거짓 없는 사랑은 현실이다.


    이 세상 모든 살구멍이 열리고 뼈마디가 허물어져내리는 사랑을
    나는 안다.
    시를 써야지. 자고 일어나고 밥 먹고 일하는 사람들이 꽃이 된다.
    고된 노동으로 이룬 따뜻한 어머니의 잠 속으로 들어가 자고 싶다.
    어머니의 깊은 잠만이 나를 깨울 꽃이다.
    수백 수천 대의 자동차 바퀴


    구르는 소리에 깔려 잠을 자던 내가 창호지 문지방에서
    꼬물거리는 겨울 벌레 소리에도


    눈을 뜬다.
    낡은 내 몸
    어디에
    새로
    뚫릴
    귀와


    눈이 있었는가. 나는 깨끗하게 죽을 것이다.
    내 죽었다가,
    수백 번도 더 죽었다가 살아났던
    내 청춘의 오래된 이 방에서
    나는 오랜만에 달빛으로 죽는다.
    저 황량한 거리, 재활용이 불가능한,
    쓰레기 같은 모든 거짓 사랑과 예술 속에서 미련 없이 걸어나와
    누구도 닿지 않는 먼 잠을 자리.
    저 물소리 끝까지 따라가 잠자는 겨울 채송화씨,
    그 끝에서 나는 자고 깨어
    그리운 우리집 마당에 채송화꽃으로 오리.


    오, 죽지 않고 사는 것은 거짓뿐이니. 너를 따라온 모든
    낡은 길들을 거두어라.
    [출처.계간 문학동네-1999년 봄]





    채송화

    조 윤

    불볕이 호도독 호독
    내려쬐는 담머리에
    한올기 菜松花
    발도둠 하고 서서
    드높은 하늘을 우러러
    빨가장히 피었다.

    (66세.장성출생.원로시조시인.다수의 시조문학상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