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MIN YOUNG,추천시와 추천 문학

백석-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우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LEE MIN YOUNG 2008. 9. 14. 15:01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우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여우난 곬족에서-- 백석

     

     

     

    북방에서 - 백 석 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 부여(扶餘)를 숙신(肅愼)을 발해(勃海)를 여진(女眞)을 요(遼)를 금(金)을 흥안령(興安嶺)을 음산(陰山)을 아무우르를 숭가리를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 나는 그때 자작나무와 이깔나무의 슬퍼하든 것을 기억한다 갈대와 장풍의 붙드든 말도 잊지 않었다 오로촌이 멧돌을 잡어 나를 잔치해 보내든 것도 쏠론이 십리길을 따러나와 울든 것도 잊지 않었다 나는 그때 아무 이기지 못할 슬픔도 시름도 없이 다만 게을리 먼 앞대로 떠나 나왔다 그리하여 따사한 햇귀에서 하이얀 옷을 입고 매끄러운 밥을 먹고 단샘을 마시고 낮잠을 잤다 밤에는 먼 개소리에 놀라나고 아침에는 지나가는 사람마다에게 절을 하면서도 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다 그 동안 돌비는 깨어지고 많은 은금보화는 땅에 묻히고 가마귀도 긴 족보를 이루었는데 이리하야 또 한 아득한 새 옛날이 비롯하는 때 이제는 참으로 이기지 못할 슬픔과 시름에 쫓겨 나는 나의 옛 한울로 땅으로 ― 나의 태반(胎盤)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해는 늙고 달은 파리하고 바람은 미치고 보래구름만 혼자 넋없이 떠도는데 아, 나의 조상은, 형제는, 일가친척은, 정다운 이웃은, 그리운 것은, 사랑하는 것은, 우러르는 것은, 나의 자랑은, 나의 힘은 없다 바람과 물과 세월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 ............................ 여우난 곬족 --백 석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 있는 큰 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로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 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後妻)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녀(承女), 아들 승(承)동이 육십리(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 옷이 정하든, 말끝에 설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洪)동이, 작은 홍동이. 배나무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 섬에 바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 삼춘 엄매, 사춘 누이, 사춘 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 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뽁운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오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 하고 제비손이구손이 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우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츰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Tamara - Abrazame 

    사진은 1937년 함흥 영생고보 교사 시절의 백석. 백석은 1930년대 문단의 최고 미남중 한 사람으로 꼽혔다. 1912년 평북 정주 출생. 본명은 백기행(白夔行). 같은 정주 출신 시인 김소월과 오산고보 선후배 사이. 1936년 33편의 시가 실린 모더니즘 계열의 서정시집 ‘사슴’을 출간하면서, 문단의 혜성으로 떠오름. 한정판 100부 출간인 탓에 당시 문학 지망생들에게 이 시집을 필사하는 것은 대 유행이었고, 윤동주도 이 필사본시집을 간직 했었다.1934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잡지 ‘녀성’ ‘조광’의 편집을 맡았다. 방랑으로 일관하며 시를 쓰다 일제말 창씨개명 강요와 강제 징용을 피해 만주에 갔다가 해방을 맞았다. 광복과 함께 고향인 정주로 돌아왔으나 김일성 찬양과 체제 선전에 시가 동원되는 것에 반대, 순수서정적인 시를 고집하다 문단에서 소외됐다. 62년 북한 문화계 전반에 내려지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과 연관돼 일체의 창작활동 중단했다. 분단 상황 탓에 이전엔 거의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으나 1988년 월북 문인 해금조치 이후 ‘남신의주 유동 박씨봉방’‘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같은 빼어난 시편들이 이동순 시인(영남대)에 의해서 새롭게 조명되면서 한국 현대 시사(詩史)의 걸작으로 자리잡았고, 그에 관한 학위-연구논문만 100여편 쏟아져나왔다. 문학사상사가 6권까지 발간한 ‘나를 매혹시킨 한편의 시’에서 우리나라 현역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출처--시사랑사람들 문학, 이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