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각시 오는 저녁 / 백석
당콩밥에 가지 냉국의 저녁을 먹고 나서
바가지꽃 하이얀 지붕에 박각시 주락시 붕붕 날아오면
집은 안팎 문을 횅 하니 열젖기고
인간들은 모두 뒷등성으로 올라 멍석자리를 하고 바람을 쐬이는데
풀밭에는 어느새 하이얀 다림질감들이 한불 널리고
돌우래며 팟중이 산옆이 들썩하니 울어댄다
이리하여 한울에 별이 잔콩 마당 같고
강낭밭에 이슬이 비 오듯 하는 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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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조광사(朝光社)에서 발행한 「조선문학독본(朝鮮文學讀本)」에는 백석의 시가 두 편 실렸다.
<고성가도(固城街道)>와 <박각시 오는 저녁>이었다.
그 중 <박각시 오는 저녁>은 백석의 절편(節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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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콩밥 : 강남콩이 많이 들어간 밥
바기지꽃 : 박꽃
박각시 : 박각시 나방. 박쥐나방. 박쥐나비과에 딸린 나비의 한가지 해질 무렵에 나와서
주로 박꽃 등을 찾아 다니며 긴 주둥아리
호스로 꿀을 빨아 먹으며 공중에 난다. 날면서 먹이를 먹는 까닭에 언제나
소리가 붕붕하게 크게 난다. 몸의 길이 46mm, 벌린 날개의 길이 97mm,
앞날개에는 잿빛의 무뉘가 있고 가운데는 어두운 빛임. 유충은 고구마나 나팔꽃의 잎을 먹음
주락시 : 주락시 나방.
한불 : 상당히 많은 것들이 한 표면을 덮고 있는 상태.
돌우래 : 말똥 벌레나 땅강아지와 비슷하나 크기는 조금 더 크다. 땅을 파고 다니며
'오르오르' 소리를 낸다. 곡식을 못 살 게 굴며 특히 감자밭이나 콩밭에 들어가서 감자줄기를 끊어 놓으며 땅을 판다.
팟중이 : 메뚜기과에 속하는 곤충으로 크기는 3.2cm ~ 4.5cm 정도로 갈색, 콩중이와 비슷한데 조금 작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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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가 지는 여름날 저녁 무렵이면 바가지 꽃이 피어 있는 울타리와 지붕 위에는
박곷이 마치 소복입은 청산처럼 다소곳이 피어 각시 주락시 나방을 기다린다.
유별나게 박꽃을 좋아하는 이 놈들은 주둥아리의 긴 대롱을
박꽃의 꽃속에 깊숙이 꽂아 놓고 꿀을 빨아 먹기 때문에 꽃에 앉지 않고
언제나 공중에서 붕붕 유난히 큰소리를 내면서 난다.
들과 산에는 땅을 파며 다니는 돌우레의 '오글오글'하는 소리와
메뚜기 모양의 갈색곤충인 팟중이가 다리와 날개를 비비대며 시끄럽게 우는
한가한 산골의 풍경을 실감나게 묘사한 작품이다.
박꽃만 들고 있으면 사람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날아와 굴을 빨아먹는
박각시 주락시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잡혀 곤욕을 치르지만 사람들에겐 정겨운 존재이다.
백석이 좋아하는 돌우레는 평안북도 어느 자방 산골에 가면 우물가
돌 밑이나 감자 사이에 살며 오글오글 시끄럽게 소리를 낸다.
풀밭사이에는 어느덧 하이얀 천들이 널려 마르고 있고
다림질을 기다리고 있는 전원의 풍경을 잘 묘사한 훌륭한 작품이다.
출처. 다음카페-시사랑사람들, 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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