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 2010년 봄호
내 고향은 명왕성
강영은 (시인)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버려졌다
한 생애 내내 내 곁에 있었던 그에게 주어진
134340호, 그게 명왕성의 새이름이란다
그렇게 내 집도 버려져 길바닥에 뭉개졌다
을지로 5가에서 청계천 5가로 이어지는 아스팔트 길,
하늘을 올려보던 창은 이제 그 아래 땅만 보여준다
아직도 발바닥에 묻어나는, 한련화며 채송화며,
거기서 피어나던 꽃들의 향기
한밤중이면 혼자서 깨어나 울던 형광등의 불빛이
방산동 4의 14, 손톱만큼 남은 땅의 지번을 보여준다
명왕성은 망원경 저편에서 어둡기 그지없지만
땅속의 내 집에서는 아직도 휘황찬란하다
누구도 믿지 않겠지만
어둡고 춥고 버려진 것들이 서로 껴안은
내 집에서는 명왕성을 등 대신 켜놓고 산다
마루 벽에 달아놓은 가족사진 액자,
어머니, 아버지, 형님들, 누이들을 환하게 비추어 준다
134340호에 살기 싫은 명왕성은 이제
내 집으로 이사를 왔다
그렇게 나도 내 집을 다시 찾았다
내 가슴 속에 내 집을 다시 지었다.
『미네르바』 2010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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