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시밭에 망옷 / 이민영
아버지가 여든이었을때 가산은 빚으로 남에게 넘어가고
달랑 초가집 한 채 채마밭 한 두덩이만 있었다, 이놈 아들 잘못이다.
겨울, 일구던 그 텃밭에서
띄엄 띄엄 감자모종에 망옷 붓갈이를
그 아버지처럼 아들도 쇠스랑질을 하고 있다.
할아버지의, 아버지의,
아이의, 똥도 오줌도
엉켜서 보듬고 잠자는
수렁밭의 억센 진초록들, 풀잎의 밤낮을 달굴
하얀 뿌렁구들의 숨소리인지 모른다
눈발로 달궈진 들녁이기에 사랑을 서럽게했던 사모곡의 눈물도
햇살로 피어나는 것일까, 채마 잎새 마다 깃들어 있는
엄니와 아부지 이름을 부를때면
쓸쓸한 한데시절을 지지고 볶고있는 풀싹의 무리들,
민들레꽃, 개나리, 채송화 씨, 엄니 브롯치, 지까심,
여울패랭이, 합수통, 똥장군, 나이들수록 그리워지는 이 말들은
바램이었던가, 숨숼 수 없도록 그리워지는 새럼빡 울따리에
오늘은, 어느 인연이 엄니의 속치마를 달구고 있을런지
할아버지의, 아버지의, 아이의 겨울이
죽어가는 순명의 위엄으로
논시밭을 태우고 있다.
출처 이민영 페이스북 2013.01.27
출처 : 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
글쓴이 : 李旻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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