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간의 다림질 / 이민영
1960년에는 초꼬지 불이 방 주인이다 웃목에 할어버지 유훈과 아버지 명심보감과 효학경을 두 손으로 비빈 다음에 갈지자로 꼬아 발뒷굼치로 땡겨 가랭이 사이로 빼 또아리를 뜨고 손바닥으로 문질러 길게 꼬아 아이들에게 항상 만난 이야기의 실타래를 감는다 어매는 축축한 실을 풀 물에 이겨서 두 손사이에 실을 얹고 입에 문 다음에 한 올은 시키듯하고 넙적다리 위에다 삼을 짙물게 손바닥으로 다림질한 다음 고무 엄지로 휑하게 채우면 또 하나의 입술에서는 고운 곡선이 베틀에 올릴 한필 감이 되는 것이니 배람박 마다 귀뚜라미가 차게 울고 시렁마다 찬 가지가 올댄다 살강에는 곧 진김치와 진감자가 가마니 틀 새 놀러 와서는 새끼 사이에 방긋거리며 눈들로 여리게 웃고 차게 논다 난 초고지 심지 가까이 글씨 새겨진 홍시를 터벙에 채이게 하고 눈 알 마다 굵은 딸물을 굴리며 책 갈피를 넘기며 밤을 벗하는데 지나가던 바람이 땀 흘리며 찾아와 이야기하기를 이리 더운 밤 하룻밤만 재워주세요 지나가던 풀잎들이 하는 말 이리 더운디 손 위 물장구 구슬을 하나 주세요 지나가던 별들이 하는 말 이리 더운디 구렁뱅이가 삼역구를 만나서 뎁다 도망간 해당귀신과 아기별이야기 들려주세요 자꾸만 뒤척이다가 먼 발치에서 얼음이 부서지는 소리 먼 발치에서 멍구짖는 소리에 별의 눈도 잠긴다 방구처럼 부서지는 소리다 하얀 웃음소리가 제 발에 제 발인데도 제 자리 찾지 못하고 넘어진다.
<이민영, 시편 2002. 시사랑사람들>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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