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채송화
-이민영-
산골사는 아버지는 오늘같은 풋여름이 들판에 여물고
할아버지 유언으로 달이 지더라도 산골은 지켜야한다는 명에
낭구새 삐쭉 내민 오솔숲에 이르면 잔대들도 숨쉴수 있어
빈발대에 풀초 가득하도록 낫부뚜껑만한
각지낫을 들고 잔등 아래로 달려갑니다
반반한 곳 찾다가 손끝이 머문 곳은
잔등마루 아닌 겨울때물 자욱한 산 밭이고
바위곁엔 옹기종기 두분이 누워 여름 재촉하는데
쉬임없는 낫질에도 골이랑이 아닌 곁이랑이란 것 아는 듯
살 격정이 첫서리로 내린 가을날,
겨울처럼 넓고 단단해지라는 정한 말씀에 몸도 재이고 귀도 재입니다
푸르다가도 샛이슬에 엉켜놓은 노란 들잎
여름이 가니 건너골 산국화(山菊花) 애련같은 겨울이 기다려집니다
내려올 때 시상 지나면 서리맞는다는 시월이
여름에 두고온 한마디도 깨닫지는 못해
아버지 타던 숲에 풀초를 헤쳐두고
할머니때 부터 내리두른 산이야기와 골소리에
닮아온 멧새소리에 잊혀져가고
맴만 돌다 님의 눈송이로 자고가는
속깊고 빼쪽한 여름사이에 늦은 가을처럼 눕습니다.
늙은 잎(枯葉)으로 남아 숨더운 온기로 있기도 하고
이내 태어날 적에는 움틀림없는 바위산 소리 더 가까이
안아 들려줄 수 있다는 소망인데
순명(順命)이 돼버린 벌거벗은 몸(裸身)은 겨울을 준비하면서도
여름날의 풀잎으로 내내 행복해 합니다
식지않는 그대 열정, 한참이나 노랗게 익어갑니다.
<이민영. 시사문학.2003>이민영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시편 1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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