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제비꽃 --- 이해든
남들은 모두 코로 숨을 쉬는데, 나는 산소 호흡기를 꽂아야 한다. 코도 손도 자유롭지
않다.
갑자기 병원이 소란스러워진다. 새로 들어온 꼬마의 코에 산소호흡기가 걸린다. 가습기가
하얀 김을 뿜어낸다. 커다란 주사기가 꼬마의 팔을 걷으라고 한다.
하얗고 가느다란 꼬마의 팔에는 너무 큰 주사기다. 꼬마의 눈을 바라본다. 동그란 눈에 큰
눈물이 둠벙둠벙 담겨있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더니 큰 눈물이 양 볼을 타고 흐른다. 참 예쁘다. 산소 호흡기를 해도 예쁜 애는 처음 본다.
아빠가 오셨다. 난 아빠가 좋다. 내가 컵라면이 먹고 싶다고 하면 엄마는 끝내 반대하지만
아빠는 사 주신다. 아빠는 웃으며 내 얼굴에 아빠 얼굴을 댄다. 거칠거칠하다. 아빠가 또 면도를 안 했나 보다.
“우리 장군, 일찍 일어나 있었네.”
세상에 나처럼 약한 장군이 어디 있을까? 그래도 꼭 아빠는 나를 장군이라고 한다. 아프기
대장도 장군인가?
또 컵라면을 사달라고 졸라본다. 정말 병원 밥은 맛이 없다. 엄마는 또 반대다. 아빠도
한 번 반대하신다. 아빠가 컵라면 사러 나가신다. 아빠가 컵라면을 사러 나간 사이 아침밥이 왔다. 꼬마도 한 번 먹고는 안 먹겠다고 한다.
컵라면이 도착했다. 끓는 물 때문에 이제 엄마가 분주하다. 아빠가 속삭인다.
‘엄마 너무 힘들게 하지마라. 아빠 부탁이다.’
아빠 부탁은 들어주고 싶다. 아빠도 내 부탁은 다 들어주니까. 그런데 생각만 그렇다.
꼬마는 큰 주사를 맞을 때나 약을 먹을 때나 나를 쳐다본다. 내가 엄지손을 들어 주면
아프면서도 꾹 참는다. 그런데 내가 나가기만 하면 꼬마가 운다. 안 울었으면 좋겠는데 꼭 운다. 나도 나가기 싫지만 하루에 몇 번 씩 검사
때문에 나가야 한다. 어쩌다 꼬마가 잠들 때 나가면 안심이 된다. 그런데 들어와 보면 앉아서 울고 있다. 나를 보면 금방 그치고 배시시 웃는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나는데.’
또 하루가 지났다. 놀이방이 궁금하다. 꼬마를 바라본다. 자고 있다. 모두 잠들었다.
나만 깨어 있다. 가만히 일어난다. 그래도 침대가 삐거덕거린다. 옷을 찾아 입는데, 꼬마가 눈을 뜬다. 눈이 둥그레지더니 일어난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주렁주렁하던 주사기가 없다. 신기하다. 조그만 소리로 묻는다.
“이제 주사 없어?”
꼬마가 고개를 끄덕인다.
“놀이방 갈래?”
꼬마가 또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가 깰까 봐 가만가만 밖으로 나간다. 깜깜한 밤이라
놀이방에는 아무도 없다. 큰 자동차를 탔다. 덜커덩 소리가 너무 크다. 내려서 그네를 탄다. 삐걱삐걱 아픈 소리가 난다. 어른들이 깨면
큰일이다. 꼬마도 걱정되는지 내 손을 잡아끈다. 내가 조그맣게 묻는다.
“어디 가려구?”
“저기”
꼬마가 창 밖을 가리킨다.
“간호원 누나한테 혼나.”
“그래두 나가.”
꼬마가 더 세게 손을 잡아끈다. 간호원 누나가 한 명 있다. 누나는 긴 책상에 앉아서
무엇을 쓰고 있다. 고개를 숙이고 가만가만 빠져 나간다. 성공이다. 이제 엘리베이터만 타면 된다. 꼬마 손을 꼭 잡는다. 꼬마가 웃는다. 그렇게
밝게 웃는 모습은 처음 본다.
밤이지만 달이 참 밝다. 꼬마가 웃어서 그런가보다. 어른들을 피해 꽃이 많이 핀 곳으로
간다. 글씨가 있다.
‘야생화 꽃밭’
야생화가 뭘까? 몰라도 상관없다. 울타리에도 글씨가 써있다.
‘들어가지 마시오’
밤이라서 글씨가 흐려 보인다. 그러니까 들어가도 될 것 같다. 꽃이 참 많다. 꽃마다
조그만 이름이 써 있다.
“오빠, 이 꽃 이름이 뭐야?”
“응? 그거 개구리 발톱이야.”
꽃 앞에 써 있는 글씨를 읽어 준다.
“개고리 발통? 그럼 이건?”
“음, 그건 깽깽이 풀.”
“땡땡이 풀? 그럼 이건?”
꼬마는 자기 마음대로 이름을 부른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그게 더 재밌다.
“그건 각시 붓꽃.”
“각시 불꽃? 그런데 각시가 뭐야?”
갑자기 어려운 질문을 한다. 나도 모르는데. 그래도 모른다고 하기 싫다.
“그런 게 있어. 너두 크면 알어.”
가끔씩 내가 어려운 걸 질문하면 엄마가 대답하는 걸 따라했다.
“음, 오빠는 다 안다. 그치?”
꼬마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하다. 오늘처럼 글씨 읽는 것이 자랑스러운 적이 없다. 꼬마는
꽃밭에 있는 꽃들을 다 알고 싶은가 보다. 자꾸만 물어 본다. 꽃마리, 봄구슬봉이, 노랑제비꽃. 꽃 이름이 신기하다. 꼬마는 내가 꽃 이름을
읽어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인다.
처음 보는 꽃인데도 알고 있었던 것처럼 큰 소리로 읽어 준다. 꼬마는 노랑제비꽃이 제일
예쁘다고 한다. 꽃밭 끝에 있는 나무 이름을 읽어 주자 꼬마가 까르르 웃는다. 나도 웃기다. 나무 이름이 쥐똥나무다. 잎이 작고 다닥다닥 붙어
있다. 하얀 꽃이 피려고 한다. 가만히 꼬마가 내 손을 잡는다. 손이 차갑다. 그러고 보니 좀 춥다.
“춥니?”
꼬마가 고개를 끄덕인다. 내일이면 오월인데도 춥다. 밤이라서 그렇다. 나는 내 옷을 벗어
꼬마에게 준다. 꼬마가 웃는다. 이제는 내가 춥다. 그래도 안 춥다고 생각한다. 쥐똥나무 아래에 앉는다. 꼬마가 오들오들 떤다.
“춥니? 그만 들어갈까?”
“오빠, 나 추운데, 안 들어가자.”
걱정이 된다. 꼬마 얼굴을 자세히 본다. 얼굴이 꽃마리풀꽃처럼 보라색이다. 갑자기 겁이
난다. 오들오들 떠는 꼬마를 데리고 병원 안으로 들어간다. 큰일이다. 꼬마가 뜨겁다. 아까는 차가웠는데, 지금은 뜨겁다. 꼬마가 주저앉는다.
간신히 일으켜 의자에 앉게 한다.
“기다려, 내가 엄마 불러 올게.”
꼬마의 대답도 듣지 않고 엘리베이터로 달린다. 병실에 들어선다. 모두들 깨어 있다.
“은아 어딨니?”
꼬마 이름이 은아였나 보다. 나는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엄마의 얼굴을 보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시 뒤돌아서 뛴다. 엄마 둘이 따라온다.
태어나서 그렇게 세게 맞아본 적이 없다. 우리 엄마가 내 엉덩이를 그렇게 세게 때릴 줄은
몰랐다. 꼬마 엄마가 말리지 않았으면 아마 피가 났을 거다. 눈물이 났다.
그런데 내가 아픈 것 보다 꼬마가 걱정됐다. 아까 잠들었는데 아직도 안 일어난다. 나도
열이 나기 시작한다. 간호원 누나가 주사를 가져왔다. 또 눈물이 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왜 울고 나면 잠이 올까?
잠결에 우는 소리가 들린다. 살며시 눈을 뜬다. 고개를 돌려 꼬마를 본다.
‘앗, 꼬마가 없어졌다.’
꼬마는 중환자실로 갔단다. 안 되는데, 꼬마가 그러면 안 되는데. 참으려 해도 자꾸만
눈물이 나온다. 큰 소리로 엉엉 울어버린다. 누군가 내 등을 쓰다듬는다. 꼬마 엄마다. 이상하게 더 크게 우는 소리가 난다.
“은아는 곧 나을 거야. 울지 마.”
나보고 울지 말라고 하면서 꼬마 엄마는 운다. 엄마도 따라 운다. 이제 꼬마는 하루에 두
번 밖에 못 본단다. 나는 한 번도 못 본다.
이틀이 지났다. 이틀 동안 나도 몸이 더 아팠다. 엄마는 퇴원 날이 미뤄졌다고 속상해
하신다. 꼬마 엄마가 들어온다. 엄마와 무슨 이야기를 한다. 조금 후 엄마가 나에게 말한다.
“너 은아 병실에 가 볼래?”
눈이 번쩍 뜨인다.
“은아가 너만 찾는단다.”
중환자실은 무시무시하다. 이집트 미라같이 붕대로 칭칭 감은사람, 양 손에 주사기를 꽂은
사람. 이렇게 무서운 곳에 꼬마가 있다니. 꼬마가 불쌍하다. 그런데 꼬마는 나를 보자 또 배시시 웃는다. 그동안 걱정이 모두 없어진다. 꼬마가
조그맣게 묻는다.
“오빠, 노랑제비꽃 이쁘지?”
이상하게 다른 꽃 이름은 엉터리로 부르면서 노랑제비꽃은 잘 말한다.
“응, 이뻐.”
“나 그 꽃, 가지면 안 돼?”
“돼.”
“언제 가져?”
“너 여기서 나오면.”
이제 그만 나가란다. 꼬마 눈에 또 눈물이 고인다. 병실로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쓴다.
찔끔찔끔 눈물이 나온다. 꼬마가 불쌍하다. 나 때문에 꼬마가 거기 간 거다. 누가 나를 부른다. 운 것을 들키기 싫은데 또 부른다. 꼬마
엄마다. 이불을 걷는다.
“호준아, 오늘 고맙다. 은아는 내일 모레면 다시 이리로 올 거야.”
갑자기 마음이 즐거워진다.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정말요?”
“그래, 이제 많이 좋아져서 일반 병실로 와도 된 단다.”
나는 대답 대신 활짝 웃었다. 이제는 노랑제비꽃을 가져와야 한다.
‘어떻게 가져오지?’
하루가 지났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이제 내일이면 꼬마가 온다.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했다. 저녁 식사가 온다. 또 맛없는 반찬이다. 밥은 모래 같고 수저는 삽 같다.
‘삽? 그렇지 삽이다. 수저는 삽이다. 이제 그릇만 찾으면 된다. 옳지 컵라면 그릇이 있다. 역시 난 천재다. 히히’
억지로 밥을 떠먹고 수저를 몰래 감춘다. 쓰레기통에서 컵라면 그릇을 꺼내서 깨끗이
닦는다. 컵라면 그릇은 물로 닦고 화장지로 닦아도 불긋불긋하다. 그래도 괜찮다. 흙 색깔이랑 비슷하다. 밤에 나가려면 지금 자둬야 한다. 내가
쿨쿨 자야 엄마도 잔다. 지금부터 자자.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얘가 어디 아픈가, 벌써 자니?”
엄마가 물었지만 난 대답할 수 없다. 속으로 기도 한다.
‘엄마도 빨리 잠자요.’
눈을 떴다. 조용하다. 꼬마가 누웠던 침대에는 꼬마 엄마가 잔다. 엄마는 내 침대 밑에서
잠이 드셨다. 슬며시 일어났다. 수저와 컵라면 그릇을 챙긴? 가만가만 신발을 신고 문 밖으로 나간다. 간호원 누나가 아줌마를 따라가는 사이
엘리베이터 앞으로 달려간다.
꼬마와 함께 나올 때는 둥그런 달이었는데, 오늘은 조금 찌그러졌다. 어두워서 다행이다.
야생화 꽃밭에 들어간다. 준비해온 수저로 컵라면 그릇에 흙을 담는다. 다음에 노랑제비꽃 하나를 수저로 크게 떠낸다. 주위를 둘러본다. 나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헐렁한 병원 옷 속에 감춘다. 이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손에 묻은 흙을 엉덩이에 문질러 닦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간호원누나와 마주친다. 가슴이 콩닥거린다. 누나가 내 볼록한 배를
바라본다.
‘아, 이제는 다 틀렸다.’
사실대로 말할까 말까 생각한다.
“호준이, 너 그게 뭐니?”
하필 여기서 걸릴게 뭐람. 나는 천천히 손을 내린다. 아주 천천히. 그런데 누나가 씩
웃는다.
“너, 배고팠구나. 컵라면이네?”
나는 내리던 손을 딱 멈춘다. 아직 꽃은 옷 속에 숨어 있다.
“잠자기 전에 너무 많이 먹지 마라.”
휴 다행이다. 누나는 옷 아래로 삐죽 나온 컵라면 그릇만 본 것이다. 가만가만 침대로
돌아온다. 아직도 다 자고 있다. 꽃을 숨겨야지.
침대 밑에는 복잡하다. 음료수 박스가 많다.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 간다. 은박지 접시를
아래에 깔고 노랑제비꽃 화분을 그 위에 올린다. 생수를 따라 준다. 죽지 말고 잘 자라라고 조그맣게 명령한다. 말 안 들으면 물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협박도 한다. 그 주위를 박스들로 쌓아서 안 보이게 한다. 히히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천재다.
꼬마는 다시 내 옆자리 침대로 돌아와 치렁치렁 주사기를 매달았다. 그래도 중환자실에서
나온 것은 참 다행이다. 그런데 어젯밤에 몰래 가져온 노랑제비꽃이 시들시들하다. 차마 줄 수가 없다. 시든 꽃을 보면 또 울 것 같아서다. 또
한 가지 기쁘고 슬픈 소식은 내가 내일 아침이면 퇴원한다는 거다. 얼마나 탈출하고 싶던 병원인데, 참 기쁘다. 그런데 또 슬프다. 꼬마가 얼마나
슬퍼할까?
꼬마는 주사를 많이 맞아서 그런지 하루 종일 잠을 잔다. 꼬마 얼굴만 바라본다. 이제는
내가 졸리다.
아침이다. 일찍부터 엄마는 짐정리로 분주하다. 아빠도 오셔서 거든다. 열심히 정리하던
엄마가 깜짝 놀란다.
“어머, 이게 뭐야?”
나는 노랑제비꽃을 잠시 잊고 있었다.
“이거 꽃이네.”
“야, 노랑제비꽃이다.”
꼬마가 소리를 질렀다. 살며시 눈을 뜬다. 참 신기한 일이다. 어제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노랑제비꽃이 꼿꼿하게 살아났다.
“이거 호준이가 가져왔니?”
아빠가 물으신다. 엄마가 나를 바라본다. 병실의 모든 사람이 나를 바라본다. 마침 병실을
들어서던 의사와 간호원 누나도 꽃과 나를 바라본다.
‘아니라고 잡아뗄까?’
‘그래도 거짓말은 나쁜데.’
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가 화가 났다.
“너 밤에 또 나갔었니?”
또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혼나는걸 보고 있던 꼬마가 울음을 터뜨린다.
“내가 갖는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모두 꼬마를 바라본다. 아빠가 빙긋이 웃는다.
“은아에게 선물하려고 가져왔니?”
나는 또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에는 의사 선생님과 간호원 누나가 웃는다. 흘끔 보니 엄마는 아직도 화나 있다.
의사선생님이 부드럽게 말한다.
“자 어서 선물하렴.”
모두 다 쳐다봐서 쑥스럽지만 나는 꽃을 꼬마에게 주었다. 의사선생님이 박수를 치자. 다른
사람들도 박수를 쳐 준다. 엄마 얼굴을 본다. 엄마도 이제는 화난얼굴이 아니다. 꼬마도 화분을 받고는 눈물을 그친다. 내가 씨익 웃어준다.
꼬마가 따라서 배시시 웃는다. 혼나도 좋을 만큼 그 웃음이 좋다.
헤어지는 시간이다. 꼬마는 그 큰 눈에 그렁그렁 눈물을 담았다.
나는 너무 어려서 이런 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그냥 답답하다. 엄마 손에
이끌려 병실 문을 나서자 그렁그렁하던 꼬마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내린다.
낮에 밖으로 나온 것이 얼마만인지. 하늘이 참 파랗다. 아빠가 차를 가지러 간 사이
야생화꽃밭을 바라본다. 노랑제비꽃이 바람에 요렇게 저렇게 흔들린다. 내가 있던 병실을 올려다본다. 병실 창가에 컵라면 화분이 놓여있다. 아무런
흔들림도 없이 노랗게 손을 들어 인사한다.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또르르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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