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겨울새
(호심 박광자 畵, 농촌의 겨울)
오늘처럼 날이 추우면 생각나는 분이 계십니다,
바람도 지나가다가 살짝 대숲에 숨어 옹알거립니다.
겨울눈이 길을 걷다가 벌거벗은 길을 보고는 자기의 온기를 다 주어버립니다.
그러면 그 겨울눈도 길 위로 누워 같이 얼어줍니다. 그 얼어버린 시골 밭길을
아버지가 큰 발채에 두엄을 지고 갑니다. 겨울이면 어김없이 산 밭의 얼굴을 쓰다듬던
울 아버지의 겨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란 이름자에서는 저는 언제나 초라해지고 작아집니다.
그 옛날은 작고 초라해보이던 아버지의 등이
오늘은 따라 왜 그리 커 보인지 알 수가 없군요,
지금은 먼 고향, 그 고향 동토의 찬 바닥, 산 비탈에 혼자 누워계실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겨울은 언제나
12월이 오면
옵니다.
밭 고랑의 파란 보릿순이 살짝 고개를 내밀다 그만 땅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옆에서 마른 풀잎이 허기진다고 합니다.
거품을 문 누렁소의 입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거리면
아버지는 쇠죽을 쑤어 누렁소 배를 채워줍니다.
어미 닭은 아기 병아리를 몰고 울타리 밑에서 햇살과 숨바꼭질을 합니다.
돼지막에서는 아기 돼지들이 꿀꿀거립니다, 때가 되면 식사 시간을 먼저 알려주는 친구들입니다.
사립문 사이로 마지막 햇살이 안녕이라고 하면
삽살개가 잘 다니던 울타리 길도 동네도
같이 손잡고 같이 어두워집니다.
호롱불이 점점히 별밤을 만듭니다.
불빛마다 가마니 짜는 소리가 밤의 심지를 키우면
그 아버지의 옆에는 그 어머니가 있습니다,
그 어머니는 넙적다리가 빨갛도록
모시를 삼습니다. 침을 묻히고 비비고, 침을 묻히고 비비고, 모시를 삼습니다.
지금 같으면 절망 같을 희망도 희망이던, 그 초라한 희망도, 언제나 즐거운 미소가 되던
아버지의 농촌입니다. 가족들이 함께한다는 것, 모두가 따뜻하자는 것,
먹는 것도 커다란 가치였던 이런 작은 소박함이 곧 희망이었던
아버지시절입니다.
......고된 삶만큼 아버지의 삶은 굵어보입니다.
돌아가신지 어언 20년, 삶이란 무엇인지
그 아버지 나이가 되어 머리 히끗히끗한 내가
그 적의 아버지가 되어 보니 초라해집니다.
작은 바램과 죽어가는 희망에 대해서도 나는 얼마나 만족하였는가하고 생각하면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아버지의 삶처럼 삶의 인생을 기대는 것에 대하여,
아버지의 삶처럼 순수의 밥 한 끼에 대하여,
아버지의 삶처럼 자식을 대하는 것에 대하여,
아버지처럼 숭고하고 거룩해 본 적이 있었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온전한 정신에 의한 온전한 기도를 지금 드릴 자격이 있는가 하고,
부끄럽습니다.
삼베의 헤진 옷에 드러난 당신의 등, 덕지덕지 두꺼워진 손 발,
밭 고랑만큼이나 굵은 고랑이 손금에 차 있고 검게 山만 했을 손이 그립습니다.
어느 희망과 어느 곳의 낙원에서 살려고 못난 자식들을 애지중지 하셨을까요?
종점은 분명히 자식이었을 것입니다, 그 낙원을 보여드리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게, 가르키시려고 고생만 하셨을 까.
제가 미워지는 것입니다. 살아 생전 효도드리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시게 한,
제가 미워지는 것입니다.
아들인가...제가, 진정 아버지의 아들이었던가하고 수없이 지껄여봅니다.
아버지 겨울새
추위가 겨울이 되면
겨울새가 되어 재잘거린다
겨울 새들 속에는 돌아가신 아버지 새들도 있다
웅크린 몸으로 초가지붕처마로 몰려든다
이미 헐려지고 없어진 옛집을 찾는 것이다
남의 논이 되고 신작로 길이 된 논수밭 근처에 앉는다
써래질로 여름을 심던 논배미를 돌다가
하늘로 솟구치더니날개 쭉지를 파르르 떤다
눈물 그렁그렁한 새가 종일
머물고 있다
아버지 새 앞에 부끄럽게
얼굴 드러내지 못한 아들 새가
문틈에서 외친다.
겨울아 춥지 말아다오.
겨울아 춥지 말아다오.
이민영(李旻影詩人)
Giovanni Marradi 연주 My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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