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지 않을 땐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었지만 농사 짓는 남편을 잘 보필하며
그녀는 아들 딸들을 올바르고 훤칠하게 키워냈지
동네 어른들마다 그 집 아이들을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어.
얼굴은? 밉상이라고 할 순 없었지만
오랜 세월의 때가 묻은 그녀의 얼굴과 행색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지.
내가 뭐래, 그냥 아줌마라고 했잖아.
그런데 말야, 가끔 아마 한 달에 한 두 번이나 될까,
그녀를 찾아오는 손님이 있었어.
쫄병 기사를 대동하여 찝차를 몰고오는 그 손님은 사십 정도나 될까,
중후하고 점잖게 생긴 장교였지.
그가 가게 앞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 그녀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다 해도
아무도 수상하게 생각할 사람은 없지.
왜냐하면 그녀는 가게 주인이고 길을 지나던 어떤 사람도
그녀의 가게에 들러 시원한 사이다로 목을 축일 수 있는 거니까.
때는 도로 포장이 거의 되어있지 않던 70년대였어.
그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차를 몰고 나타나면
그녀는 그 초라한 행색에 수줍은 낯으로
동네 어린 아이를 하나 물색해서 그의 찝차를 탔지.
그녀의 가게가 있던 시골 마을에서 이십여분 쯤 거리에 작은 읍내가 있었어.
거기로 갔었을까?
그녀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언제나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어.
그러니 오가는 시간 빼면 한 시간 남짓한 틈에 뭘 할 수가 있었겠어.
게다가 동네 아이의 손까지 잡고 따라 나선 길인데.
아이는 아줌마를 따라 불고기나 냉면이나
하여튼 70년대의 음식을 얻어먹고는 손에 바나나를 들고 돌아왔지.
아줌마의 손에도 과일이나 빵이 들려 있었어.
그는 분단장도 채 못한 초라한 차림의 아줌마와 아이를 내려주고는
조용히 시골 마을을 떠나곤 했어.
꽤 오랫동안,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게 마련인 장교 아저씨는
때로는 가까운 곳에서, 때로는 먼 곳에서 그렇게 주로 토요일에 나타났더랬어.
어쩌면 아줌마는 토요일마다 아주 조금, 표나지 않게 화장을 했었을까?
모르겠어. 상관도 없지. 그에게 그녀는 화장을 하든 안하든,
몸빼를 입든 치마를 입든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그러다 그는 외국으로 떠나게 됐어. 한 2년 쯤으로 기약이 되었던 거야.
그런데 그는 기한을 채우지 못하고 중간에 돌아오고 말았어.
스키를 탔던 거지. 그러다 부상을 당했는데 그만 목숨까지 잃게 된 거였지.
아줌마는, 그냥 평범하고 조용하고 얌전하고 초라한 아줌마였어
시골에서 가게를 하는. 그녀는 손잡아 데리고 다니던 아이의 엄마를 만나면
아무개 엄마, 술이나 한 잔 해, 하고는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며 말없이 눈물을 흘렸어.
누군가가 와서, 아줌마 껌 하나 주세요, 하면 껌을 내주고
콜라 두 병 주세요, 하면 콜라를 내주고 잔돈푼을 챙기고
남편과 아이들이 배고프다 하면 밥상 차려 주면서 도시락 싸주면서
가끔 그녀는, 아무개 엄마, 술이나 한 잔 해 했어.
이제 아줌마의 손을 잡고 찝차 타고 맛있는 음식 얻어먹는 것만 신나하며
철모르게 다니던 어린 아이는 커서 시집을 갔지.
아줌마도 갔지. 자다가 연탄 가스를 맡아
한 날 한 시에 세상을 뜬 남편과 함께 갔을까. 그래야 했겠지.
죽을 때 같이 죽는 부부라면 것두 예사 인연은 아닐 텐데
그도 없고 그녀도 없어 물어볼 사람 없으니 나는 맘대로 상상을 해
두 사람의 인연이 어떤 거였나 생각을 해
멋진 총각 장교가 시골 처녀를 만났는데 집안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요즘 같으면 코웃음칠 일이겠지만 그 땐 그런 일도 많았다지
그래 각자 제 짝을 찾아갔는데 남자는 여자를 잊을 수 없었고
아니 여전히 사랑했고 그래서 그녀 불편하지 않게 조심조심 다가가
아, 대체 70년대에 뭘 해줄 수 있었겠어
표나게 옷이나 보석을 사줄 수도 없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 것 밖에는
동네 아이의 손을 쥔 그녀의 손이, 눈이 무슨 말을 하고싶어 하는지 아는데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나눠 먹으라고 과일이나 빵을 들려보내는 것 밖에는
그런 사랑도 있구나, 싶어 가슴이 달아오르다가 식다가 그랬어.
아련하고 애틋하지만 가슴 한 구석 왜 안아팠겠어
잘 지내요? 애들은 잘 커요?
말 속에 섞이는 안타까움이 오죽했겠어
두 사람이 좀 더 오래오래 살아서 다른 사람들보다 명이 길어서
언젠가 서로의 흰머리를 세어주며 등을 긁어주며
며칠만이라도 함께 살 날이 있었기를 하릴없이 바랬어.
하지만 일찍 죽어 헤어졌든, 늙어 함께 살았든
질투나도록 부러운 인연이라는 건 변함이 없지
좋은 인연은 그래, 멀리 있어도 비록 다른 사람과 함께 하고 있어도
언제든 만나면 감사의 다정한 눈길을 보낼 수 있는 것이지.
진실되게, 부끄럽지 않게 서로의 눈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지.
아줌마를 기억하다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문장을 떠올렸어.
'나는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그 문장을 그토록 오랫동안 잊고서 참 잘도 살아왔더군.
아주 소중한 것들을 혹시 그동안 잊지는 않았었는지 살펴봐야겠어.
잠깐, 그러려면 우선 나를 먼저 찾아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