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서 30
박재삼
국민학교를 나온 형이
화월(花月)여관 심부름꾼으로 있을 때
그 층층계 밑에
옹송그리고 얼마를 떨고 있으면
손님들이 먹다가 남은 음식을 싸서
나를 향해 남몰래 던져 주었다.
집에 가면 엄마와 아빠
그리고 두 누이동생이
부황에 떠서 그래도 웃으면서
반가이 맞이했다.
나는 맛있는 것을
많이 많이 먹었다며
빤한 거짓말을 꾸미고
문득 뒷간에라도 가는 척
뜰에 나서면
바다 위에는 달이 떳는데
내 눈물과 함께
안개가 어려 있었다.
*<눈물의 시인> <박재삼>은 일본에서 태어나 경상남도 삼천포에서 자랐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돈이 없어서 중학교에 가지 못했다.그래서 삼천포 여자 중학교에서 심부름을 하는 사환을 했는데 당시 이 학교 국어교사인 김상옥 선생님(호 초정)을 만났다. 이때부터 시를 좋아했다, 시인은.. 나중에.. 삼천포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고려대를 나왔다... 1953년에 시조 〈강물에서>를 모윤숙 추천으로 《문예》 11월호에 발표 했고, 1955년《현대문학》에 유치환 추천으로 〈섭리>를, 서정주 추천으로 〈정숙>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1962년에 첫 시집 《춘향이 마음》(신구문화사)을 낸 이래 시선집을 포함하여 열여섯 권의 시집을 세상에 냈다. 소월-서정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고유 서정시를 고집한 시인님은 미당 서정주. 청마 유치환 선생님으로부터 다투어 시문을 추천받는 등 일찌기 인정을 인정받으셨다, 《현대문학》, 《문예춘추》, 《삼성출판사》등에서 일했고, 월간《바둑》의 편집장을 지내기도 했으며, 1974년에 한국시인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선생님은 1997년, 지병으로 고생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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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서31--박재삼
해방된 다음해
노산 언덕에 가서
눈아래 무역회사 자리
홀로 삼천포중학교 입학식을 보았다
기부금 三천원이 없어서
그 학교에 못 간 나는
여기에 쫓겨오듯 와서
빛나는 모표와 모자와 새 교복을
눈물 속에서 보았다
그러나 저 먼 바다
섬가에 부딪히는 물보라를
또는 하늘하늘 뜬 작은 배가
햇빛 속에서 길을 내며 가는 것을
눈여겨 뚫어지게 보았다
학교에 가는 대신
이 눈물 범벅을 씻고
세상을 멋지게 훌륭하게
헤쳐 가리라 다짐했다.
그것이 오늘토록 밀려서
내 주위에 너무 많은 것에 지쳐
이제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그것만 어렴풋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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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서 67 /박재삼
진주장터 생어물전에는
바다밑이 깔리는 해다진 어스름을,
울엄매의 장사끝에 남은 고기 몇마리의
빛 발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만큼 손 안닿는 한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맞댄 골방안 되어
손시리게 떨던가 손시리게 떨던가.
진주남강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 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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