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문정희
학창 시절 공부도 잘하고
특별 활동에도 뛰어나던 그녀
여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도 무난히
합격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가
감자국을 끓이고 있을까
사골을 넣고 세 시간 동안 가스불 앞에서
더운 김을 쏘이며 감자국을 끓여
퇴근한 남편이 그 감자국을 15분 동안 맛있게
먹어치우는 것을 행복하게 바라보고 있을까
설거지를 끝내고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있을까
아니면 아직도 입사 원서를 들고
추운 거리를 헤매고 있을까
당 후보를 뽑는 체육관에서
한복을 입고 리본을 달아주고 있을까
꽃다발 증정을 하고 있을까
다행히 취직해 큰 사무실 한켠에
의자를 두고 친절하게 전화를 받고
가끔 찻잔을 나르겠지
의사 부인 교수 부인 간호원도 됐을 거야
문화 센터에서 노래를 배우고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는 남편이 귀가하기 전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갈지도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저 높은 빌딩의 숲, 국회의원도 장관도 의사도
교수도 사업가도 회사원도 되지 못하고
개밥의 도토리처럼 이리저리 밀쳐져서
아직도 생것으로 굴러다닐까
크고 넓은 세상에 끼지 못하고
부엌과 안방에 갇혀 있을까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날개젖은 나무잎이 비소리에 놀라
훌쩍 건너뛴다
빗소리는 떠나지않고 나무곁에 다가와 뿌리까지 송두리채 안고 있다
호흡이 거칠어질수록 살랑대는 하늘빛
폭풍에 젖은 나무잎들속에서 살랑대는 하늘빛
그렇게 알고 있다 하늘도 비가온날이면 흔들린다는 것을
움직지이않는 큰 소나무가 오두믹집켠을 살아생전 내내 벗으로 있는 길목에서
옛날 작은 소쿠리을 얹고 집세치를 캐러
가던 그길에서 흔들리지 않는 나무를 본다...민
출처.이동활의 음정, 2012.07
'LEE MIN YOUNG,추천시와 추천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2011사랑나눔 송년미술제 출품작(정지용의 향수 全文과 해설) - 혜풍 김광희 (0) | 2012.07.23 |
---|---|
[스크랩] 우산 속으로 비 소리는 내린다 / 함민복 (0) | 2012.07.22 |
[스크랩] [남과 북 드리마와 이산가족찾기생망송 주제가] 누가 이사람을 모르시나요 / 한운사, 이장춘 편저 (0) | 2012.07.14 |
「교무수첩에 쓴 연애편지」 중에서 / 이정록 『시인의 서랍』(한겨레출판) (0) | 2012.07.14 |
비나리 /심수봉 (0) | 2012.0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