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MIN YOUNG,추천시와 추천 문학

[스크랩] [시사랑사람들시편지]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백석과 예세닌의 낙엽 흩뿌린 단풍나무 КЛЕН ТЫ МОЙ ОПАВШИЙ

LEE MIN YOUNG 2013. 3. 3. 19:04
[시사랑사람들시편지]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예세닌의 詩 낙엽 흩뿌린 단풍나무 КЛЕН ТЫ МОЙ ОПАВШИЙ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백석

함흥여고 영어교사 시절의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출처 1948. 학풍>

1948년 남한에서 마지막으로 백석의 시가 발표됐다.

위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다. 본명은 기행(夔行).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신. ‘白石(백석)’과 ‘白奭(백석)’이라는

아호(雅號)가 있었으나, 작품에서는 거의 ‘白石’을 쓰고 있다. 1929년 정주에 있는 오산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34년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전문부 영어사범과를 졸업하였다.

그 뒤 조선일보사·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함흥 소재)·여성사·왕문사(旺文社, 일본 동경) 등에 근무하면서

시작 활동을 하였다. 한때 만주에 있기도하였다.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이를 계기로 〈마을의 유화(遺話)〉·〈닭을 채인 이야기〉 등

몇 편의 산문과 번역소설 및 논문을 남기고 있으나, 그는 실지로 시작 활동에 주력하였다.

1936년 1월 33편의 시작품을 4부로 나누어 편성한 시집 ≪사슴≫을 간행함으로써

그의 문단 활동이 본격화되었다.

백석의 1930-40년은 백석에게는 사랑과 낭만의 시절이었다 첫선과 정처의 아내,통영의 란,

자야여사등 많는 여인들도 이때에 만났다. 백석의 첫시집 사슴이 발표될 무렵,

초판 500부는 발간되자마자 팔려나갔고

당시 문단의 김기림은 우리 시단에 "포탄을 던져 일거에 광풍을 일으큰 경이"라고 했고

신석정은 시집 <사슴>을 받고 스스로 감동해서 헌시 <수선화>를 썼다. 윤동주는

시집에 밑줄을 그어가며 배우며 경탄 했고

당대 시인들이 이구 동성으로 찬탄했다. 해방후 우연찮게 사슴을 구한 신경림,김춘수..등

현대의 시인들은 백석의 시에 매료되어 백석의 화두로 1970-90년을 보냈다.

1930-40년대 백석의 문학은 가장 주옥같은 경이 그 자체이었다 해방후,

북에 남은 백석의 문학과 1995년 타계하기 이전까지의 궤적은 백석 연구의 권위자인

<송준 작가의 백석 평전등 몇몇의 저서>에 잘 나와 있다.

 

흰당나귀 제공/ 북한 인민증에 붙어 있는 백석의 증명사진(왼쪽). 1980년대 중반에 촬영한  가족사진   

(오른쪽). 백석 옆에 있는 이가 부인 이윤희씨이고 뒤는 둘째 아들과 막내 딸이다. 이는 송준 작가 구해서 발표했다.


 

РЕЛИКТ - КЛЕН ТЫ МОЙ ОПАВШИЙ 렐릭트 트리오 (러시아 로망스) 낙엽을 흩뿌린 단풍나무 / 세르게이 예세닌 낙엽을 흩뿌린 단풍나무여, 얼어붙은 단풍나무여 어째서 하얀 눈보라 속에 몸을 굽히고 서 있나요 아니면 무엇을 보았나요 아니면 무슨 소리를 들었나요 시골저편으로 산보라도 나가는 것 같아요 마치 술에 취한 문지기처럼 길가에 서서 눈 더미에 빠져 다리가 얼어붙은 거 같아요 아, 요즘 웬일인지 나약해진 나는 술잔치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고 갯버들을 만나고 소나무를 바라보고 눈보라 속에서 그들에게 여름 노래를 불러주었어요 나는 마치 한 그루의 단풍나무 같아요 낙엽을 흩뿌린 단풍잎이 아니라 있는 힘을 다해 초록빛으로 남으려는 겸손을 잃어버리고 완전히 바보가 되어 마치 타인의 아내인 듯 자작나무를 껴안고 있어요 러시아의 천재적 농민시인 세르게이 예세닌(Сергей Есенин)은 1895년 8월 3일에 출생하여 30세의 나이인 1925년 12월 28일 레닌그라드에서 자살하였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예세닌은 1916년부터 러시아 농촌의 자연과 민중, 역사에 바탕한 섬세한 서정시와 서사시를 발표하여 러시아혁명기를 대표했던 시인이었다.

그의 아내가 18년 년상의 발레리나 이사도라 던컨이다. Isadora Duncan & Сергей Есенин 이사도라 던컨 & 세르게이 예세닌 현대무용의 개척자 맨발의 발레리나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이 1922년에 러시아를 방문하였을 때, 17세나 연상인 그녀와 만나게 되어 전격적으로 결혼하였으나 이사도라의 어머니같은 헌신적 사랑에도 불구하고 신경쇠약, 알콜 중독, 간질로 인하여 행복은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1925년에 시(잘 있거라 벗이여)를 남기고 레닌그라드의 호텔에서 자살함으로써, 천재적 발레리나와 천재적 시인의 결혼생활도 함께 마감하였다. 예세닌이 죽은 지 2년만에 던컨은 파리에서 스포츠카를 시승하다 사고로 사망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詩가 예세닌의 詩인 줄 예전에 몰랐습니다. 한동안 이 曲을 '백석시인의 남신의주 유동박시봉방"의 배경 음악으로 감상을 했었습니다.. "정한 갈매나무"의 기풍을 읽어내는 <백석의 높고 외롭고 쓸쓸한 시가>를 읽다보면 위 레릭의 노래나 예세닌의 시 내용과 곡의 이미지가 <박시봉방의 '이미지'>와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제목을 [낙엽 흩뿌린 단풍나무]라고 하는데 어느 러시아 문학 전공자는 [너는 나의 떨어진 단풍]으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썸머님이 음악정원 사이트에 여자 분의 청아한 목소리로 올려 주셨는데, 마침 '렐릭의 목소리'를 찾아 하나 더하여.. 이 노래를 올리고 님에게 전 합니다.. 李旻影

출처 : 시사랑 사람들
글쓴이 : 논시밭에 망옷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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