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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매력은 진돗개의 창의성과 판단력이다. 셰퍼드 등은 훈련된 대로만 행동하기 때문에 통제하기 편하지만 영민하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진돗개는 지시가 떨어지기 전에 자신이 알아서 처리해 꼭 사람 같은 느낌을 주더라는 것이다. 주인의 명령에만 따르도록 훈련시키는 데는 서양 개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순간적으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은 대단하더라고 했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 2세 브루스 권씨는 새와 닭을 키우는데 “진돗개를 데려온 후로는 새들을 잡아먹던 족제비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했다. 그는 진돗개가 물어죽인 족제비와 뱀을 여러 마리 봤다. 그러면서도 주인이 기르는 새나 닭은 건드리지 않는 진돗개의 영특함에 혀를 내둘렀다는 것이다. 한번은 다른 사람과 다툼이 생겨 몸싸움까지 하게 될 상황에 이르렀는데 진돗개가 상대방에게 으르렁대고 위협하여 싸움을 면할 수 있었단다. 그는 “주인이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대처하는 진돗개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충성스러운 개”라고 서슴없이 이야기한다.
이런 이야기는 사실 한국의 진돗개 동호인에겐 익숙한 얘기지만 외국인에겐 생경하고 충격적이기까지 한 모양이다. 물론 진돗개의 모든 품성이 외국에서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다른 개만 보면 덤벼드는 호전성을 두고 “무모한 개”라고 혹평하는 이도 있고,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성향을 두고 “사회성이 부족해 인기를 얻을 수 없는 개”라고 평하기도 하지만 애견인도 각자의 선호도가 다른 만큼 주인만 따르는 충성스런 개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진돗개의 비(非)유혹성이 큰 장점이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에게 진돗개는 충성심이 강하고 영민하며 귀소 능력, 청결성, 수렵성이 뛰어난 개로 인정받아 왔다. 모든 진돗개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두 가지 분야에 특출한 서구의 견종과 비교해 볼 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모두 뛰어난 진돗개는 훌륭한 개가 틀림이 없다.
대전서 진도까지, 7개월 걸려 주인에게 진돗개에 얽힌 일화는 수없이 많다.
그 중 1993년 대전으로 팔려간 백구가 자신을 키워준 진도의 박복단 할머니를 잊지 못하고 7개월 만에 300㎞가 넘는 거리를 달려와 뼈와 가죽만 남은 모습으로 그리던 주인의 품에 안긴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이 백구는 컴퓨터 광고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그후 주인의 품에서 14살의 나이로 죽은 백구는 지난해 12월 진도군 의신면 돈지리에 주인의 모습과 함께 동상으로 남겨졌다.
2002년 8월엔 진도군 의신면 옥대리에서 혼자 살던 고 박완수씨가 지병인 간경화로 숨지자 평소에 친자식처럼 키웠던 진돗개가 주인 곁을 지키며 시신을 운구하려던 사람들에게 사납게 짖고 달려드는 바람에 운구작업이 3시간이나 지연되었다. 이 개는 주인을 실은 병원차를 4㎞ 가량 뒤쫓다가 지쳐 집으로 돌아온 후 이웃사람이 주는 음식과 물에는 입도 대지 않은 채 1주일 이상 방문 앞을 지켜, 보는 이의 눈시울을 적셨다고 한다.
진도의 한 농가에서 벌어진 또 다른 풍경. 낯선 사람이 방문하자 마당에서 낮잠을 즐기던 황구 한 마리가 슬그머니 앞길을 막는다. 이를 무시하고 들어가려 하면 녀석의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가 주인이 방문을 열어 “들어오시게”라고 한마디 하면 슬그머니 길을 열어준다. 왕래가 잦은 이웃사람은 황구의 불심검문을 면할 수 있지만 손에 있는 물건은 모두 대문 앞에 내려놓고 집에 들어가야 한다. 돌아갈 때 집안에서 물건을 들고 나오면 대문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돗개의 진정한 가치는 자연성에 있다. 그 모습을 살펴보면 어느 한구석 인위적으로 꾸민 곳이 없다. 도베르만 핀셔처럼 귀를 잘라 세우거나 슈나우저처럼 꼬리를 잘라내지도 않았으며 푸들과 같이 미용을 하여 털을 치장하지도 않는다. 사람의 눈길을 잡아 끄는 화려함은 없지만 그렇다고 품격이 떨어지거나 못생기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모습 그대로를 꾸밈없이 보여주는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개가 진돗개다.
서양인들은 여러 가지 견종을 인위적·계획적으로 혼혈시켜서 그들이 원하는 균일한 형태와 성품을 가진 견종을 만들어내는 데 주력해왔다. 그로 인해 인위적 고정에 따른 견종별 특성에 반복적인 훈련이 더해져 군용견, 맹도견, 조렵견 등 각각의 용도에 따라 뛰어난 성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반면 동양에서는 주변에 늘 존재하던 개들이 지역별로 자연스럽게 교배되면서 그 종류가 분화됐다. 동양인은 개의 모양이나 성격을 결정하여 만들기(적극적 선택번식)보다는 단지 그들 중 성능이 좋은 개를 선택하여 사육(소극적 선택번식)했다. 진돗개를 비롯하여 일본의 토종개(기슈견, 가이견, 홋카이도견 등), 중국과 몽골과 사할린에서 발견되는 토종개, 동남아시아 계통의 인도개, 인간에 의해 호주로 건너가 야생으로 돌아간 딩고, 파푸아뉴기니의 싱잉도그, 서아시아의 가나안도그(케넌 도그) 등은 늑대에서 개로 변화되어 사람들이 기른 초기 개의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50㎝를 전후하는 체고(體高·지면에서 어깨까지의 높이)에 늑대와 유사한 얼굴, 자연스러운 골격에 위로 말아 올리거나 뻗는 꼬리 등에서 공통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진돗개를 비롯한 아시아의 토종개들은 인위적 고정화가 적어 견종별로 형태적 균일성과 용도별 활용은 떨어지지만 수렵성, 영민성, 경계성, 청결성의 특징이 본능적으로 유지되어 개체의 특성에 따라 다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인간과 개의 만남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주는 학술적 대상으로도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북방견 핏줄로 민족이동과 함께 유입
진돗개의 기원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다. 송나라 개 표류설, 몽골 군견의 유입설, 고유의 토종개설이다. 진돗개의 기원을 알려면 우리 민족의 이동경로를 알아야 할 것이다. 개는 사람을 따라 이동하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주류는 바이칼호 일대에서 중국대륙을 경유해 유입된 예맥족(북방민족)이라는 설이 현재까지의 정설이다. 이들을 따라 한반도에 유입된 많은 북방견이 주류가 되어 기존에 한반도에 있던 남방견과 혼종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우리나라의 토종개는 외국과의 교역이 활발해진 고려와 조선을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교통이 원활한 지역에서는 다시 유입된 새로운 견종과의 지속적인 혼혈로 형태와 성품이 심하게 변화되었을 것이지만, 섬 또는 고립된 산악지역에서는 순수혈통이 비교적 잘 유지되었다. 진돗개, 풍산개, 제주개와 근래에 멸종된 거제개, 강원도 화전민의 개가 그런 것들이다.
경북대 하지홍 교수팀이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한 바에 의하면 진돗개와 삽살개는 사할린개나 에스키모 도그와 염기서열이 90% 이상 일치하는 반면, 중국 남단의 개와 동남아 개와는 상이한 점이 커서 우리 민족과 함께 북쪽에서 내려왔다는 설을 뒷받침했다. 또 일본의 동물학자 다나베 유이치가 혈액단백질 다형, DNA 다형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진돗개는 몽골개나 사할린개와 90%, 일본 시바견과는 50%, 동남아 개와는 거의 0%에 가까운 혈연관계에 있음이 밝혀졌다.
근자에 들어 일부 애견인 사이에서 “진돗개는 1938년 일본인 모리 다메조 교수에 의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으며, 실질적으로는 귀가 늘어져 있는 등 다른 형태의 진돗개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일본 개와 흡사한 개만을 표준으로 내세워 내선일체의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조작한 것”이란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한국을 비롯한 극동아시아의 토종개들이 진돗개의 형태와 매우 유사한 점에 비추어볼 때, 모리 다메조가 내선일체의 수단으로 일본개와 비슷한 형태의 진돗개와 풍산개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을 가능성은 인정되나 “천연기념물 지정 이전의 진돗개는 본질적으로 달랐다”는 주장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비록 일본인에 의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진돗개지만 우리 민족과 삶을 같이해 온 대표적 토종개인 진돗개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호육성하는 것이, 어두웠던 과거를 청산하는 길이 될 것이다. 또한 삽살개와 나아가 풍산개까지도 세계의 여러 애견단체에 등록시키는 작업을 서둘러야 하겠다.
그 어떤 명견과 비교해도 경쟁력이 충분한 진돗개에게 세계 공인견 등록이라는 발판이 마련된 이상 진돗개의 상품화는 우리 노력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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