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님들의 모습

서성란 소설-모두다 사라지지않는 달 /방에 관한 기억 소개

LEE MIN YOUNG 2006. 10. 27. 04:41



1996년 중편 [할머니의 평화]로 제3회 실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뒤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쳐온 서성란의 첫 장편소설 {모두 다 사라지지 않는 달}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자폐아와 그 어머니들의 삶이라는 특이한 소재를 다룬 이 소설은, 시종일관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의 삶에 밀착해 다가서고 있다. 자신의 아이가 '자폐아'라는 알게 된 후의 충격과 고통을 힘겨운 자신과의 싸움을 거쳐 삶 안으로 받아들이고, 결국 세상과 인간에 대한 긍정에 도달하는 과정이 군더더기 없는 진솔한 문체로 펼쳐진다.

모든 것은 천천히 진행되는 조금 다른 세계의 아이들
결혼 뒤에 찾아온 불임의 기간으로 인해 초조하고 안타까운 시간을 견디던 작가에게 한 친구와 그의 아이가 찾아온다. 지나가는 아이나 임신한 여자만 보아도 알 수 없는 질투를 느끼고, 심지어 유산을 해도 좋으니 한 번만이라도 임신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원했던 작가에게 찾아온 친구와 친구의 아이.

그러나 친구의 아이는 작가가 마음놓고 사랑을 주거나 질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흰 피부와 사랑스러운 눈동자를 가졌지만,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 즐거워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난폭해지는 아이. 자폐아.


이웃에 이사 온 친구와 그의 아이가 겪는 변화를 지켜보면서, 작가는 일반인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특별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알게 된다. 처음 아이가 '자폐'라는 진단을 받게 된 뒤, 직업과 취미생활도 접어둔 채 오로지 '자폐아의 엄마'로서만 살아야 했던 친구는 무척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어느새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무엇'이 아닌 자신과 아이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고, 이를 통해 매우 특별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가꿔나간다.

그 과정은 언론이나 영화에서 도식적으로 다뤄지는 흔한'인간 승리'류의 것이 아니며, 단지 일반인들과는 의사 소통과 생의 방법이 다른 사람들의 세상이었다.

그 체험이 정직한 언어로 거두어진 소설 『모두 다 사라지지 않는 달』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세상의 감동과 체험을 선사하는 값진 소설이다.

'자폐아'를 자식으로 둔 어미의 삶을 통해 보이는 모성애의 힘
이 장편소설은 각각의 소단락마다 자폐아를 둔 여러 어머니들이 차례차례 화자로 등장하는데, 작은 이야기 한 편 한 편이 커다란 이야기로 묶이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들의 장애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교사 원희, 원희의 학생 중 하나였던 종호의 학부모이자 낙천적인 성격으로 다른 자폐아 어머니들에게 유쾌한 힘을 주는 순님,

인텔리 여성으로 사회 속에서 자폐아와 그 어머니들이 설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유선, 자폐아 어머니로써 살아온 15년간의 신산스런 세월의 귀중함을 깨닫는 영선 등, 각각의 화자는 처음에는 홀로 자폐라는 장애와 그것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과 싸우다 자폐아 어머니들의 자조 모임인 '작은 씨앗 나눔터'를 만들어 아픔을 함께하고 더불어 살아가며 삶을 배우게 된다.


그들이 아이들의 장애를 껴안고 세상 속에 서는 과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 자신만의 터널 안에 갇혀 있으되 언제까지나 아이인 채로 머물지 않는 아이들의 성장과 그 미래는 그들이 죽을 때까지 떠맡고 갈 수 없는 족쇄이기도 하다.

실제로 대부분의 자폐아 부모들은 자폐라는 병을 앓는다는 것이 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녀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거나 타인에게 숨기고 싶어하는데, 그 원인은 바로 자폐를 비정상으로 여기고 혐오하는 사회 일반의 시선에서 비롯되었으리라.

하지만 이 아이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세계가 이뤄지고 있다. 아무에게도 거짓말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는 그들은, 나름의 몸짓과 언어로 어머니 또는 세상과 교감한다. 그것을 발견해 키워나가는 어미의 힘은, 이 세상 가장 낮고 어두운 곳을 품어 빛을 발하게 하는 가장 위대한 힘이라 할 만하다.


자폐아와 그 어머니들의 삶을 실감나게 담아내어 그들의 운명적 삶과 생성(生成)의 모성, 자폐라는 특수한 소재를 사회적 리얼리티 안에서 탁월한 구성력으로 그려낸 이 소설을 통해, 독자들은 세상의 각박함과 메마름에 지친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특별한 감동을 맛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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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란
1967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났다. 서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1996년 중편 '할머니의 평화'로 제3회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는 『모두 다 사라지지 않는 달』이 있다.

 

1996년 중편 「할머니의 평화」로 제3회 실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뒤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쳐 온 서성란의 첫 소설집.

『방에 관한 기억』에서도 작가는 기본적인 인간관계조차 영위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삶을 작위적이지 않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려 내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 훼손된 몸과 마음 때문에 사회적으로 고립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묘사함으로써, 극도로 삭막한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소통’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세상의 각박함과 메마름에 지친 사람들의 모습을 사회적 리얼리티 안에서 탁월한 구성력과 담백한 필치로 풀어낸 여덟 편의 소설들을 통해 우리는 특별한 감동을 맛보게 될 것이다.

 

1. 비어 있는 방 : 아버지는 세 들어 살고 있는 노라 언니가 미군들과 놀아난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집을 비우라고 엄포를 놓지만 할머니의 도움으로 해산날까지 살 수 있게 된다. 아이를 낳으면 남자를 따라 미국으로 갈 거라고 들떠 있던 노라 언니는 놀랍게도 자신이 제일 싫어한다는 흑인 병사의 아이를 낳는다.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진 뒤 회사를 나와 여호와의 증인이 된 아버지는 특별한 직업 없이, 미국에 있는 고모가 송금해 주는 돈으로 살아가지만 막상 고모가 한국에 나올 때는 노라 언니를 대할 때처럼 싸늘하다.

2. 열리지 않는 방 : 아버지가 상의 없이 고모가 사준 집을 팔자 할머니는 짐을 챙겨 작은아버지 집으로 떠난다. 입대를 하지 말고 교도소에 가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하고 군복무를 마친 후 고시 준비를 했던 오빠가 돌아온다. 아버지는 집을 판 돈과 친척들에게 빌린 돈으로 한식집을 차리고, 식당일을 도왔던 오빠는 한 처녀와 결혼 날짜를 잡는다. 결혼을 반대하는 아버지는 결혼식장에도 가지 않고 인사를 온 며느리의 절도 받지 않는다.

3. 숨어 있는 방 : 집을 줄여 다시 이사를 한 뒤 작은아버지 집에 머물던 할머니가 돌아온다. 여기저기서 돈을 빌렸던 아버지는 늘어만 가는 빚 독촉에 시달리다가 식당 문을 닫았고, 생활비를 빌리기 위해 오빠 집으로 인주와 동생 인호를 보내지만 형편이 여의치 못한 오빠는 돈 대신 삼겹살을 사준다.

4. 떠도는 방 : 거듭된 이사로 결국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아버지는 산동네에 방 하나를 얻어 어머니와 함께 떠나면서 인주에게 조금만 참고 기다리라고 부탁한다. 아버지는 고모에게서 초청장이 오자 인주와 인호에게 함께 떠나자고 하지만 통장의 잔금 때문에 인터뷰에서 떨어진다. 아버지에게 고모가 돈을 보내고 비자가 나오지만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숨을 거둔다.


최재봉기자 (bong@hani.co.kr) ㅣ 2004-05-08 ㅣ [한겨레신문]
<방에 관한 기억>(문이당)은 1996년에 등단한 서성란(37)씨의 첫번째 중단편집이다. 연작 성격의
두 중편 <방에 관한 기억>과 <할머니의 평화>, 그리고 여섯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방에 관한 기억>과 <할머니의 평화>는 두 가지 점에서 특징적이다. 할머니라는 강렬한 캐릭터, 그
리고 아버지의 종교인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가 그것이다. 우선, 할머니는
탐욕과 고집으로 똘똘 뭉친 데다 자식과 손주들을 제압하고도 남을 만큼 기가 센 인물이다.
“할머니는 얼음처럼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었으며 둘째아들에게서는 “난 어머니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벌떡벌떡 뛴다”는 토로를 끌어낼 정도로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할머니
를 알고 있는 누구라도 할머니의 죽음을 슬퍼하거나 서운해하지는 않을 것”(<할머니의 평화>)
이라는 화자의 추측은 거기서 기인한다.

“왕국회관의 장로이자 파이오니아(전 시간 봉사자)인 아버지”(<방에 관한 기억>)에 관한 형상화
역시 서성란 소설의 특장이라 할 만하다. 독실한 여호와의 증인 신자인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파수대>와 <깨어라!> 같은 책자를 공부하도록 강요하는가 하면 명절에는 자식들의 세배도 받
지 않고, 장남이 군에 입대했다고 해서 의절을 선언할 정도로 교리에 충실하다. 극성스러운 어
머니와 와병 중인 아내, 그리고 엇나갈 틈만 엿보는 자식들에 둘러싸인 그는 야금야금 집안의
재산을 거덜내고는 식구들을 가난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는다.

그악스러운 할머니와 무능하고 고집스러운 아버지를 묘사한 두 연작만이 아니라, 서성란씨의 다른
소설들 역시 부모-자식 관계에 관한 상식적 기대를 깨뜨린다는 점에서는 같은 맥락에 놓여 있
다. ‘더러 자식과 부모가 서로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는, 단편 <산초>에 등장하는
한 인물의 설명은 그런 불행한 정황에 대한 나름의 요약인 셈이다. 일종의 운명론에 육박하는
그런 상황에 대해 서씨의 소설들은 다만 미약한 희망의 기미만을 제시하고는 마무리를 짓고는 한다.


*서평 조각칼로 파헤친 세상 소리없이 가슴을 베고 가버려…

이현수기자 (소설가) ㅣ 2004-05-03 ㅣ [조선일보]

대저, 소설이란 무엇이고 소설가란 누구인가? 요즘 들어 부쩍 이 질문을 내게 자주 한다.
답은 작가마다 다를 것이다. 나 역시도 내게 맞는 내 답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질문의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잊을까 봐 수시로 던지곤 한다.
이제 소설은 잊혀진 장르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손아귀에 힘이 불끈 쥐어진다.
기초예술분야가 천대받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고, 소설은 아직 숨겨진 광맥이 무궁하게
많다고 누군가는 그것을 캐내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불 나간 집에 전깃불이 들어오듯 일시에
환하게 밝아질 그런 날도 있을 거라고 중얼거리는 작가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물음에 대한 도저한 답을 가지고, 남들 배추씨 뿌리러 우르르 몰려갈 때 혼자 무씨 뿌리러
묵묵히 가는 작가가 있다. 그가 바로 서성란이다. 서성란<사진>은 ‘혹시?’ 하고 뒤를 돌아
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뚜벅뚜벅 앞으로만 걸어갈 뿐이다. 그가 즐겨 신는 단화가 남긴
발자국은 그래서 더욱 선명하다.

서성란은 1996년 중편 ‘할머니의 평화’로 실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작년에
‘모두 다 사라지지 않는 달’이라는 장편을 상재했고 일 년 만에 그의 첫 소설집이자 두 번째
책인 ‘방에 관한 기억’을 가지고 다시 독자 앞에 돌아와 섰다.

“아이는 아라비아 숫자가 적힌 종이 카드를 손에 쥐고 잠이 들었다. 여간해서는 낮잠을 자지
않는 아이다. 방 안 여기저기에는 아이가 가지고 놀던 숫자 카드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잠든 아이
를 안아 요 위에 눕히고 손에 쥐어져 있던 카드를 빼내려 하자 잠결에도 아이는 손을 꼭 쥔
채 모로 돌아누워 버린다. 잠든 아이의 얼굴에는 상처가 깊이 패어 있다. 관자놀이와 양 볼은
찢어져 아물지 않은 상처와 보랏빛 멍자국들로 어지럽다.”(‘모델하우스’ 233쪽)

▲ 소설가 서성란
세모꼴의 조각칼로 예리하게 파헤친 듯한 이 간결한 문장은 독자의 어떤 참견도 거절한다.
표제작인 ‘방에 관한 기억’을 포함해 여덟 편의 중단편이 실린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딱 손에
쥐기 좋을 만큼 한 움큼씩 나뉘어져 붉은 리본에 감긴 고급 소면이 떠오른다. 작가는 잘 삶긴
쫄깃한 면발을 따뜻한 육수에 풀어 내놓았다. 국수를 한입 머금고 있다가 입 속으로 ‘쪽’
하고 빨아들일 때 국숫발이 입 천장에 찰싹 달라붙는 명랑한 소리를, 그 유쾌한 즐거움을
독자들은 책의 곳곳에서 보고 듣고 느낄 것이다.

이 책에는 그가 첫 책에서부터 집요하게 그리고 있는 발달 장애아와 그 어머니들의 모습,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혜롭게 살아갈 능력을 지니지 못한 아버지, 불어난 몸 때문에 사회와 남편에게
버림받는 여성, 사랑의 상처를 광기에 가까운 동성애의 집착으로 표현하는 여성, 가난과 줄기
찬 투쟁을 하고 있는 가족들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그의 글에는 페미니즘적 저항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심리적 굴절이나 종교적
초월도 보이지 않는다.”(문학평론가 황광수) 그저 담담히 응시할 뿐이다. 지독할 정도로 담담해서
오히려 섬뜩하게 만든다. 가령 이런 말들.

“하긴 우리 부모는 이제까지 나한테 아무 것도 준 것이 없으니까요.”(‘산초’ 42쪽)
슬프지도 않는데 슬픔을 요구하거나, 안개를 뿌려 문장을 달달하게 만들거나, 읽고 난 뒤 ‘그래서
뭐가 어쨌단 말이야?’ 하는 허전함이 남게 하지도 않는다. 단지 조각칼로 날카롭게 파헤칠
뿐이다. 잘못하다간 그의 조각칼에 가슴을 베이기 십상이다. 도둑처럼 스며들어와 소리도 없이
긋고 가니까. 내출혈이 걱정되면 마음을 굳게 먹고 이 책을 펼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