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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만해시와 동양미학

LEE MIN YOUNG 2008. 1. 24. 08:29
만해시와 동양미학



고명수 동원대 교수






1. 동양미학적 접근의 당위성



만해는 전통적 선비(지식인)이자 지사(志士)다. 『논어』에 “지사와 인인(仁人)은 자신의 삶을 구하고자 남을 해치는 일이 없으며, 자신의 몸을 죽여 인을 이룬다”(子曰, 志士仁人 無求生而害人, 有殺身而成仁)는 구절이 나온다. 만해의 삶이 그러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는 ‘믿음과 글과 삶이 합일에 이른’ 사람이었다. 기본적으로 만해의 문학에는 지사로서의 민족(민중)계몽이라는 의도가 상당 부분 개입된다. 사실 만해에게 있어 문학이란 민족독립운동의 실천의 일환이거나, 나아가서 중생제도의 보살행의 한 과정이라고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그가 『님의 침묵』을 쓴 것이나 수많은 논설을 쓴 것은 동일한 선상에서 논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의 시와 소설 창작행위는 글을 통한 민족 계몽 내지는 민중 계도의 수단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은 한 신문의 소설 연재 예고에서 피력하고 있는 만해의 말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나는 소설을 쓸 소질이 있는 사람도 아니요, 또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 애쓰는 사람도 아니올시다. 왜 그러면 소설을 쓰느냐 반박하실지도 모르나 지금 이 자리에서 그 동기까지를 설명하려고는 않습니다. 하여튼 나의 이 소설에는 문장이 유창한 것도 아니오, 묘사가 훌륭한 것도 아니오, 또는 그 이외라도 다른 무슨 특장이 있을 것도 아닙니다. 오직 나로서 평소부터 여러분께 대하여 한번 알리었으면 하던 그것을 알리게 된 데 지나지 않습니다. (중략) 많은 결점과 단처를 모두 다 눌러 보시고 글 속에 숨은 나의 마음까지를 읽어 주신다면 그 이상의 다행이 없겠습니다.

― 『조선일보』 1935.4.8


적어도 소설가라면 한 사람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의식이 있어야 할 텐데 만해의 경우 그러한 의식은 미약하다. 다만 평소에 만해가 한국 민중들에게 한번 알리고 싶었던 것들을 알리고자 하는 목적의식에서 소설에 손을 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해에게 있어 문학이란 결국 육당·춘원 등의 경우와 유사한 계몽주의적 의도를 상당 부분 지니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는 곧 만해의 문필행위가 암울한 시대에 처한 우리 민족에게 신념과 희망을 갖게 하려는 의도에서 촉발된 것으로 시가의 계발(啓發) 효능을 말하는 공자의 이른바 ‘흥(興)’이라든지, 시가의 교육적 역할을 드러내는 ‘군(群)’과 같은 문필의 공리적 효용성을 중시하는 동양적 문학관에 입각해 있음을 증명한다.
만해에게 서구사상의 안내자가 되었던 양계초(梁啓超)는 『음빙실문집(飮氷室文集)』에서 중국철학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피력한 바 있다



중국철학은 인간을 연구하는 것으로 그 출발점을 삼고 있으며 가장 주요하게는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도리를 연구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비로소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서로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는 문제를 연구하는 것이 중국철학이다


양계초가 파악한 중국철학의 특징은 인생철학으로 삶과 실천의 문제에 중점이 두어졌으며, 이는 종파와 시대의 차이를 넘어서 공통된 경향으로 나타나 있다고 본다. 왕국유(王國維) 역시 중국철학의 특징이 ‘수신제가 치국 평천하’라는 『대학』의 장구에서 보듯 우주와 인생의 문제에 관한 도덕과 실천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본다. 만해에게 있어서도 언제나 문제가 되었던 것은 참된 인간의 길은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된 선비의 길인가, 그리고 삶의 제반 모순을 어떻게 극복해 갈 것인가 하는 실천의 문제가 중요했다.



만해는 어릴 적부터 유교의 경서들을 배웠으며 서당의 훈장 노릇을 하다가 어떤 계기로 입산하게 되면서 불경을 광범위하게 접했다. 이러한 동양의 고전적 교양의 바탕 위에서 만해의 문필행위는 시작된다. 그에게는 한시가 오히려 친숙한 하나의 생활문학이었으며 인위적인 제작의식이 상당 부분 개입되는 타 장르에 비해 한시에 그의 솔직한 심경이 자주 토로되는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다. 그러므로 만해의 문학에는 근원적으로 유불선으로 통칭되는 인간주의적 문학관과 동양미학적 훈습이 잠재되어 있게 마련이고, 그것은 하나의 무의식으로 작용하여 그의 창작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동양의 예술에는 동양의 미학적 전통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만해의 글을 논함에 있어서도 동양의 전통미학적 접근의 당위성이 있게 된다. 이 글은 그러한 당위성을 검증하려는 하나의 시론으로 씌어진다. 중국에서의 전통미학연구는 이미 상당한 성과가 축적돼 있으며, 한국에서의 중국미학 연구도 진일보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 아래 이 글에서는 공자의 문예관과 만해의 문예관을 비교해 보고 만해의 시 「알 수 없어요」를 동양미학적 관점에서, 특히 유가미학의 기원을 이루는 공자의 미학적 관점에서 읽어보려 한다.







2. 공자의 문예관과 만해의 문예관



공자의 미학은 그의 사상의 핵심인 인학(仁學)으로부터 심미와 문예의 문제를 관찰, 해결해 나간다. 공자는 그가 그토록 신봉해마지 않았던 주례(周禮)와 예악(禮樂)이 붕괴되어 가던 상황 속에서 독창적으로 인학을 창안하였다. 그는 예가 인간의 본성과 직결되는 것이며 모든 사람이 반드시 지켜야 할 당위로서의 예를 다시 세우려 했다. 따라서 공자의 인학은 잔혹한 투쟁이 난무하던 춘추전국시대에는 보수적이며 비현실적인 것으로 당대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샀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인도주의와 박애정신의 숭고한 아름다움은 빛을 더해갔다.



공자는 심미와 예술이라는 사회현상에 대해 처음으로 깊이 있고도 보편적인 의의와 역사적인 가치를 지니는 견해를 피력했으며 충분한 자각을 가지고 명확하게 인간의 내재적인 요구로부터 출발하여 심미와 예술을 고찰하고 있다. 공자의 미학은 그의 인학의 자연스러운 연장으로 하나의 윤리학적 미학 혹은 심미적 심리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개인의 심리 욕구와 사회의 윤리 규범, 이 두 가지의 융합 일치를 중요하게 생각했다(「공자의 미학사상」, 이택후, 『중국미학사』). 공자에게 있어 인심을 감화시키는 예술은, 사람들로 하여금 즐거이 인을 행하게 하는 수단이었다. 이는 ‘성어락 유어례(成於樂, 游於禮)’라는 말에 집약되어 나타난다.



공자미학의 특성은 대개 다음 몇 가지로 요약이 된다. 흥·관·군·원의 공리적 효용설과 중용의 미학, 그리고 회사후소(繪事後素)의 미학과 자연심미의 비덕(比德)설이 그것이다. 공자는 시의 효능을 일러 ‘일으킬 수 있고(興) 살필 수 있으며(觀) 무리를 지을 수 있고(群) 원망할 수 있으며(怨), 가까이는 어버이를 섬길 수 있고 멀리는 임금을 섬길 수 있으며, 새와 짐승·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흥’은 뜻을 감발(感發)하는 시가의 계발(啓發) 효능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고, ‘관’은 풍속의 성쇠를 살피는 시가의 인식작용을, ‘군’은 무리지어 학문과 덕행에 힘쓰게 하는 시가의 교육적 역할을, ‘원’은 윗사람의 정치를 원망하고 풍자하는 시가의 비판적 역할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유위림, 『중국문예심리학사』 참조).



만해가 시집 『님의 침묵』의 서문격인 「군말」에서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고 한 데서 보듯 만해의 시작 행위 역시 당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서 비롯된 계몽주의적 교화의 의도에서 출발하고 있다. 『논어』에 군자는 ‘도에 뜻을 두고 덕에 거하고 인에 의지하고 예에 노닌다’라는 말이 나온다. 참된 선비는 결코 예술을 멀리 해서는 안 되고 그것을 향유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면 만해는 예술행위 혹은 예술의 존재의의를 어떻게 보았을까?



예술이란 인생의 한 사치품이지요. 오락이라고밖에 안 보지요. 요사이에 와서는 예술을 이지(理智) 방면으로 끌어가며 그렇게 해석하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감정을 토대로 한 예술이 이지에 사로잡히는 날이면 그것은 벌써 예술성을 잃었다고 하겠지요. 그리고 또 근자에 이르러 너무나 감정이 극단으로 흐르는 예술은 오히려 우리 인간 전체에 비겁과 유약을 가져오는 것이나 아닌가 하고 우려까지 하지요. 예를 들면, 우리의 생활에 있어서 기름이나 고추나 깨는 없어도 생활할 수 있어도 쌀과 불과 나무가 없으면 도저히 생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술이 없어도 최저한의 인간생활은 이룰 수가 있겠지요. 그러나 좀더 맛있게 먹자면 고추와 깨와 기름이 필요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어떤 사람은 항의하리다마는 나는 이렇게 예술을 보니까요.


위의 인용에서 우리는 만해가 예술을 효용론적 관점에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그에게 있어 예술이란 곧 ‘고추와 기름과 깨’처럼 인생을 보다 윤택하게 해 주는 효용성을 지닌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이로 보아 만해에게 전문적인 문학의식은 다소 미미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지나치게 이지 쪽으로 치우치는 모더니즘 문학은 물론 너무나 감정이 극단으로 흐르는 낭만주의 예술을 모두 경계하는 발언으로 보아 당시에 풍미했던 서구 문예사조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전통적인 문사의 통념 위에 만해의 문학이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공자의 심미표준인 중용 혹은 중화의 미학과도 접맥되는 부분이다.



공자는 『논어』 「팔일(八佾)」편에서 ‘즐거우면서 지나치지 않고, 슬프되 지나쳐 조화를 잃지 않았다’(樂而不淫 哀而不傷)고 하고, 「위령공(衛靈公)」편에서는 예술적 정감이 지나치게 강렬한 정(鄭)나라 음악은 음란하므로 추방해야 한다고 했다. 즉 모든 것에 절제와 제한을 둠으로써 정리(情理)의 조화를 꾀해 인과 예의 요구에 부합되는 중화(中和)의 미를 강조했던 것이다. 이러한 공자의 중용과 절제의 미학관이 만해에게도 무의식적으로 잠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한 공자는 정치관이나 도덕윤리관을 서로 연계시켜 자연현상을 관찰함으로써, 자연현상을 인간이 지닌 정신상태의 표현이나 상징으로 비유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지혜로운 이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하며, 지혜로운 이는 동적이고 어진 이는 정적이며, 지혜로운 이는 낙천적이고 어진 이는 장수한다’는 『논어』 「옹야(雍也)」편의 경우나, ‘정사를 덕으로 행하는 것은 비유컨대 북극성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뭇별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는 것과 같다’는 「위정(爲政)」편,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나중에 시듦을 알 수 있다’는 「자한(子罕)」편의 예에서 보듯이 공자는 자연물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비유하는 경우가 많았다. 즉 자연물로서 군자의 덕을 비유(比德)한다.



만해 역시 동일한 경향을 보인다. 그는 문학을 자연현상과 연결시켜 파악하는 예가 많다. 이러한 만해 문학의 자연표상은 물론 선시나 불교적 게송과도 관련이 있다. 불교에서는 자연 현상 및 우주 전체를 비로자나불의 법신(法身)으로 인식하여 자연에서 진여(眞如)를 보는 것을 가장 높은 경지로 간주한다. 만해 문학의 이러한 특징적 경향은 그의 시집 『님의 침묵』과 소설의 등장인물의 말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먼저 『님의 침묵』의 시들에서 만해는 단순한 배경으로서 자연현상을 제시하거나 자연의 이치를 통해 진실을 드러내는 경우, 자연의 정경이나 분위기를 묘사함으로써 함축적 의미를 표현하는 경우, 자연현상을 왜곡시킴으로써 논리의 비약을 통해 숨겨진 이치를 드러내는 경우 등으로 자연을 표상하고 있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숭원, 「한용운 시의 자연표상」 참조) 예술을 자연현상과 결부시켜 파악하는 이러한 그의 문학관은 물론 동양 최고(最古)의 문학이론서인 앙(梁)나라 때 유협의 『문심조룡(文心雕龍)』과 같은 동양의 전통적인 문학관과도 상통하는 것이다. 그의 소설 「후회」에서 여주인공 한경이 하는 말에서도 이러한 문학관은 확인된다.



(전략) 큰 예술은 자연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만일 선생이 가르치는 대로만 배우고 만다면 누구라도 제자가 선생보다 나을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처음에는 선생에게서 규칙적으로 배운다 할지라도 예술의 묘경(妙境)에 이르러서는 스스로 얻어야 하는 것인데, 스스로 얻는다는 것은 곧 자연에서 배워서 마음으로 얻는 것이겠지요.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道法自然)’라는 말이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지만, 체르니셰프스키의 말처럼 ‘자연계를 구성하고 있는 미는 우리들로 하여금 인간(혹은 인격)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러한 공자의 ‘비덕’의 심미이론은 봉건사회의 공리적 색채가 짙게 배어 있고, 고대 중국인들의 자연에 대한 사랑과 좋은 품덕을 추구하는 심미이상과 심미심리 정취를 반영한다. 만해의 문학관이나 창작방법론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특성은 그가 성장기에 읽은 한학에 바탕을 둔 풍요로운 동양적 정서와 사상의 뿌리이다. 이는 그가 독서경험과 시대상황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문학관을 아우르는 전통적 지식인임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3. 만해시의 ‘회사후소’와 중용의 미학



『논어』 제3장 「팔일」편에 ‘회사후소’란 말이 나온다. 공자의 말년 제자인 자하와의 대화에 나오는 말이다. 그것은 그림을 그리는데 먼저 색색의 물감으로 모든 형체를 구현하고 제일 나중에 흰 물감으로 형체를 명료하게 드러내어 광채나게 만드는 파이날 터치(final touch) 하는 것과도 같이, 인간의 예(禮)라는 것은 온갖 갖가지 삶의 경험이 이루어지고 난 후에 최종적으로 그 인격의 완성을 파이널 터치하는 것과도 같다는 말이다. 그래서 자하는 말하였다. ‘그림에서 흰 물감이 제일 뒤에 오듯이, 인간의 인격형성과정에 있어서는 예가 제일 뒤에 온다는 뜻이겠군요?’(김용옥, 『도올논어(2)』)



만해의 시 「알 수 없어요」는 회사후소의 미학을 보여준다. 겉으로 표현된 기표들을 전경(前景)이라 한다면, 그 속에 구현되고 있는 정신적 동태는 후경(後景)이라 할 수 있다. 이 전경과 후경 사이에 ‘관조’라고 하는 주관의 심미작용이 개입한다. 우리는 시에 표현된 전경을 통해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 후경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현상과 본체의 관계를 중심으로 아름다운 시적 화음을 빚어내며 한국의 시에 결핍되어 있는 사상성을 보완하고 형이상시(形而上詩)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린 명시가 「알 수 없어요」이다.



①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②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③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④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적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⑤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⑥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이 시는 님의 발자취와 님의 얼굴, 님의 입김, 님의 노래, 님의 시, 님의 밤에 대한 현상적 기술을 통하여 본체인 님을 묘사하고 있는 시라 할 수 있다. 화자는 구체적인 사물현상을 전경으로 기술함으로써 뒤에 숨어있는 본체인 ‘님’의 모습을 후경으로 드러나게 하고 있다.



1연에서 신비로운 자연현상을 통해 어떤 존재의 도래를 제시하고 있다. ‘떨어지는 오동잎’의 하강을 통해 어떤 존재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고 있다는 암시를 준다. 현상을 통해 본체인 ‘님’의 존재를 직관하고 있다. 2연에서 하늘로 비유된 ‘님’의 현존과 은폐의 양상을 보여준다. 절대적 의미를 지닌 존재인 ‘하늘’을 가리고 있는 ‘검은 구름’의 앞에 붙은 ‘무서운’이라는 형용사는 ‘님’을 부정하고 감추는 공포의 힘, 혹은 무명(無明)의 가공할 파괴력을 가리킨다.



즉 ‘검은 구름’으로 비유된 세속적 번뇌와 고통과 무명(無明)을 벗어나 ‘푸른 하늘’과 같은 오묘한 진리와 청정한 임의 실체에 접하기를 기대하던 시적 화자가 어느 순간에 언뜻언뜻 모습을 보이는 님의 모습을 보게 된다. 깨달음의 순간에 본체인 님의 신비한 모습을 인지한다. 3연에서 촉각을 통해 오묘한 임의 향기를 느낀다. 임의 입김은 너무나 향기로워 시공을 초월한다. 신동욱은 ‘깊은 나무’를 역사적 뿌리가 있는 생명현상의 은유로, ‘옛탑’은 문화창조의 역사적 흐름의 암시로 보고 그곳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를 민족의 역사적 문화적 생명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4연에서 역사와 생명의 원천으로서의 ‘적은 시내’가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님의 노래임을 암시함으로써 만해의 역사관과 진리관을 암시한다. 즉 진리의 모습은 인간의 감각으로는 미치기 어려우나 그 현현은 찬란하며, 역사와 생명의 전개조차도 님의 현현 과정임을 밝힘으로써 화엄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5연에서는 아름다운 님의 모습이 온 천지에 충만하다. ‘연꽃 같은 발꿈치’와 ‘옥 같은 손’을 지닌 어떤 존재가 무한대의 바다와 무한대의 하늘을 무대로 동작하고 있는 모습이 장엄하게 표출되고 있는데, 송욱은 이것을 ‘법신(法身)’의 현현으로 본다. ‘떨어지는 날’ 즉 지는 해는 역사의 어두운 밤이 오리라는 예감과 지는 해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제시한다.



저녁놀은 곧 님의 시이며, 절대적인 아름다움과 평화, 정화된 종교적 예술적 경지를 암시한다. 그런데 그것은 머지않아 어둠에 휩싸일 것이므로 한정적이며 비극적인 아름다움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는 기울어지는 태양의 이미지를 통해서 우리 민족의 삶 전체가 위기에 처하게 되었음을 인식하고 있는 만해의 위기의식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화자는 돌연 ‘타고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라는 돌발적인 시행을 앞세워 어둠의 현실에 대결하는 자신의 결의와 내면적 의지를 고백하며 마무리하고 있다. 타고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의지적으로는 가능한 역설이며 님의 현존은 유지될 수밖에 없다는 단호하면서도 확고한 시인의 신념의 소산이다.



따라서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라는 진술은 결국 화자가 ‘님이라는 대주체가 바야흐로 어둠에 가리워지려는 때에 스스로 기름이 되어 대주체의 밝음이 계속될 수 있게’ 하겠다는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봉사와 기여를 결단하게 되었음을 ‘약한 등불‘이라는 겸손한 태도로 술회하고 있다. 어둠과 밝음은 만해 시에서 이데아의 상승과 하강이라는 중요한 종교적 감수성의 표현이자 성·속의 변증법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는 실제로 만해의 생애가 그러한 변증법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어떠한 현실적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았던 강인한 의지로써 실천되었음을 우리는 안다.



동양화론의 선구자인 스타오(石濤)도 그의 「苦瓜和尙畵語錄』에서 유무를 초월한 세계의 여여(如如)한 실상을 직관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태고무법론(太古無法論)을 펼친 바 있다. 사물의 형체와 모양을 핍진하게 그려내는 형사(形似)를 통하여 사물이 지니고 있는 정신까지를 드러내려는 형신(形神)에 이르려한 것이 동양시학사의 전개 과정이라면, 만해의 시야말로 개별적인 사물의 표상만을 묘사하는 단계를 뛰어넘어서 그 속에 내재한 정신의 깊은 본질까지를 투시함으로써 암울한 시절을 빛낸 찬란한 한 자루의 촛불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외에도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다고 노래하는 「님의 침묵」의 ‘애이불상(哀而不傷)’하는 중용의 미학이라든가, 여러 시에 나타나는 ‘흥·관·군·원’의 미학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논하기로 한다.




고명수

1992 월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마스터 키』, 『금시조를 찾아서』, 『내 생의 이파리는 브리스틀 콘 소나무 가지 끝에 걸려 있다』. 저서 『시란 무엇인가』, 『나의 꽃밭에 님의 꽃이 피었습니다-민족의 청년 한용운』 외 다수. 현재 동원대 교수.

출처 :목련꽃이 질때 원문보기 글쓴이 : 어린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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