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麗 최원도 詩 (對 遁村)
慷慨僞時淚滿襟
-의분과 슬픔으로 눈물이 옷깃을 적시고
流離孝懇達幽陰
-집을 떠나 헤매면서도 효성은 저승까지 다달았네
漢山迢遞雲煙阻
-한산은 멀고 멀어 운현에 막혀 있고
羅峴盤回草樹深
-나현은 回 돌아서 초수(草樹)가 깊구나
天占後先雙馬鬛
-하늘이 선후로 두 무덤을 점하였으니
誰知君我兩人心
-누가 그대와 나 두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으리
願焉世世長如此
-원컨데 세세로 길이 길이 이 같이 하여
湏使交情利斷金
-모름지기 교정으로 하여금 쇠라도 끊게 하세나
.
作者는
崔元道이다 (영천인.고려말 學者)
字는 백상(伯常) 호는 천곡(泉谷)이며 이색의 문하 고려 충목왕대에 遁村 李 集과
同傍 進士(진사시라는 과거 동기라는 말)하였다. 이어 공민왕 대에 문과에 올라 판서 대사간등을 지낸 고려 수절신이다.
이성계의 조선 개국후 태종이 다시 대사간의 벼슬을 내리고 불렀으나
고향 경상도 영천 나현에 은거, 不仕(불사.벼슬하지 아니함)하였다.
廣州의 李 集(충목왕대 학자, 최원도와 동방,문과. 판전교시사)과는
막역한 친구 사이로 공민왕 시절, 친구 이 집이 왕의 면전에서
신돈의 전횡을 탄핵한 일로, 신돈이 집권한 이후에 이집이 화를 입게 되자
아버지(唐)를 업고 경상도 영천 崔사간 元道의 집으로 피난을 갔는데
이때 친구 崔元道는 이집과 친구의 아버지를 숨겨주고 관가의
감시를 피하며 친구 아버지에 대하여는 공손하고 극진을 다해 친부처럼
효우하였으며 李 唐이 죽자 자기 모친의 묘하에 장사 지내주었다
둘의 우정과 교우는 후에 사림의 의표가 되었으며
각각 사림의 천거로 서원에 배향되었다
이 詩는 신돈이 죽고 나서 친구 李 集이 수배에서 풀려
서울, 개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集을 위해서
나현(지금 영천의 지명)에서 지은 전형적인 칠언 漢詩이다
최원도는 유고집 <천곡집>을 남겨 현세에 전한다. 이후 양가는 내리 육백년동안
서로 혼인 통서하기도 하고, 우애스럽게 지냈다.
시의 내용은
朋友之交.離別의 서정,詩壇에는 잘 알려지지아니한 詩이다.
한산은 멀고 멀어 운현에 막혀 있고.
나현은 回 돌아서 草樹가 깊구나....麗末 나현에 한아름의 함박 꽃이
動하는 명작(鳴芍)이다
영천시 북안면에 위치한 추원재와 나현재
광주이씨의 이 당과 영천최씨(영양최씨) 최원도 3형제의 재사가 있다
양가는 매년 같은날 제사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