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바래봉 철쭉)
[강영권 검사, 그대 맑은 영혼을 보내며]
“꽃 피니 가지 가득 붉은 색이요(花開滿樹紅)
꽃 지니 가지마다 허공이로다(花落萬枝空)
꽃 한 송이 가지 끝에 남아 있지만(唯餘一朶在)
내일이면 바람 따라 어디론지 가리라(明日定隨風)“
사흘전만 하여도 내 블로그의 글에 “노친네가 망령이여, 돈이나 벌지”라고 댓글을 달면서 할 일 없으면 등산화 신고 산에나 가자던 그가
모든 것을 남겨두고 홀연히 떠났다....
그는 사법연수원 동기인 내가 군필자라 곧바로 부산지검 검사로 임관을 한 다음해인 1984년에 방위병 복무를 마치고 부산지검에 부임하였다.
그나 나나 초짜검사라 일은 많지 힘은 달리지 서로 도와가면서 거의 매일 사건기록을 보따리에 싸서 집에 가져갈 정도로 일에 매달렸지만, 그래도 가끔 서로 찾아가 구라도 풀고, 저녁에 함께 술을 마시기도 하면서 정을 쌓아갔다.
내가 1986년 부산지검을 떠나고, 그도 같은해에 군산지청으로 가면서 헤어져 다시는 같이 근무할 기회는 없었지만, 우리는 함께 교육을 받거나 이런 저런 회합에서 서로를 잊지 않고 지내왔었다.
내가 1999년 부산지검 부장검사를 끝으로 검찰을 떠날 때 그는 “성님, 동기들이 검사장이 되어도 잘 모시면서 평생 평검사를 하겠다더니 뭔 짓이여?”라면서도 격려와 편달을 약속하였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검찰을 떠났지만, 그는 군산지청을 거쳐, 의정부, 전주, 광주, 서울북부, 부산고검, 순천부장, 다시 광주, 인천, 다시광주, 서울동부, 서울고검, 다시 광주고검, 서울서부, 대구 전문부장을 거쳐 금년 2월 20년 만에 의정부 다시 돌아와 전문부장검사로 지하철로 통근하면서 근무하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그가 지난 2월 대구에서 의정부로 오면서 쓴 “마지막 팔공산통신”에서 인용한 서정주의 “행진곡”처럼 그는 그렇게 떠났다.....
“잔치는 끝났더라. 마지막 앉아서 국밥들을 마시고
빠알간 불 사르고...
재를 남기고...
포장을 걷으면 저무는 하늘
일어서서 주인에게 인사를 하자.....“
보통검사, 만년 부장검사, 지하철 검사, 막걸리 검사, 청계산 검사 강영권.....
검사생활 25년, 인사발령 19번에 서울 시내근무는 북부, 동부, 서부와 고검 등 4번, 차장검사, 검사장은 물론, 지방의 지청장도 한 번 해보지 못하였지만, 그는 언제나 웃었다.
그는 인사발령에 불만을 품고 변호사개업을 하려는 사람을 늘 토닥거리고, 같이 아파해주면서도 자신의 앞날에 대해서는 아무런 속내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가 지난 2월말 20년만에 다시 의정부지검에 발령을 받고 돌아와 젊은 시절 관사도 없이 살던 주공아파트 자리가 재개발로 상전벽해가 된 것을 바라보면서 머나먼 길을 돌아와 지쳐 절뚝거리며 울고 있는 늙은 당나귀에 자신을 비유한 소동파의 시를 인용하는 “그리운 옛집”에서 그 심정을 슬며시 보였다.
“인간의 한평생이 무엇과 같은지 아는가(人生到處知何似)
녹는 눈 위를 밟고 있는 기러기 발자국이로다(應似飛鴻踏雪泥)
눈 위에 우연히 몇 개의 발자국 남기고서(泥上偶然留指爪)
기러기 날아가면 동인지 서인지를 어찌 헤아리겠는가(鴻飛那復計東西)
노승은 이미 돌아가 새로운 탑이 섰고(老僧已死成新塔)
낡은 벽에는 예전에 지은 시가 보이지 않는구나(壞壁無由見舊題)
지난날의 험난함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가(往日崎嶇還記否)
머나먼 길에 사람은 지치고 늙은 당나귀는 절뚝거리며 울었음을
(路長人困蹇驢嘶)“
그는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늘 소동파가 과거시험 때 써서 구양수를 놀라게 하였다는
“인자함은 지나쳐도 군자에게는 문제가 없지만, 정의로움이 지나치면 그것이 발전하여 잔인한 사람을 만든다. 그러므로 인자함은 지나쳐도 되지만 정의로움이 지나치는 것은 금물이다”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은 듯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정의로움 못지않게 인자함을 권유하면서 살아왔다.
그가 네이버 블로그 “매봉독구리”에 쓴 글들에서 그의 맑은 영혼을 공유하면서 나는 늘 그의 해박한 지식과 넓은 도량,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사랑을 부러워하였다.
아버님과 장모님을 모시고, 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 큐슈를 여행중 배를 따라오는 갈매기를 바라보며 먼저 세상을 떠난 어머님과 장인어른을 기리는 마음
30년전 여수 한산사에서 고시공부하다가 만난 아내와 오순도순 살아온 이야기
아내, 아들과 폭우 속에 지리산, 덕유산을 종주하면서 정을 나누는 이야기
동료, 주변사람들과 등산이나 절집을 탐방하거나 돼지껍데기를 구워파는 청사주변의 허름한 주막에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나누면서 친교를 나누던 이야기....
재판장에게 석궁날린 교수사건 등 직장주변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 검사와 수사관, 검찰이 제도나 의식을 개선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
(그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에서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다는 사람들을 조심해라. 그들은 대체로 많은 사람들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만드는 법이다."라는 말을 인용하여 후학들을 경계한다)
법무연수원, 대학, 여검사연찬회, 서울시청 등에 강사로 초청되어 검사, 수사관, 사법경찰관 등에게 공무원으로서의 자세를 열변하는 이야기.....
동료나 선후배들이 검찰을 떠날 때의 헤어짐에 대한 아픔과 또다른 동경
섬뜩할 정도로 정곡을 찌르는 독후감이나 라디오스타, 피아노 등 영화감상기
자신의 운명도 모른채 세상을 먼저 떠난 존경하는 선배와 동기에 대한 추모의 안타까운 글
(그가 아내와 함께 서귀포시 위미리 벌러니코지 방파제로 찾아가 라만차의 그 위풍당당한 사나이 돈키호테의 모습을 하고, 한라산 중산간 능선을 지나고 있을 고 김원치 검사장님의 넋을 위로하는 글은 너무도 가슴아팠다....)
자신을 존경하는 사람들의 강권으로 세 번 주례를 하면서 행한 장문의 주례사
(그는 신혼부부에게 상대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상대를 배려하며, 상대를 경청하라고 주문한다)
그중에서도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거나 혼자 전라도, 경상도에 근무하면서 새벽이나 휴일에 홀로 주변에 있는 산에 올라 삶을 관조하는 글들이 언제나 가슴에 와 닿았다.
그는 그 자신을 소동파가 어렵게 살던 시절에 쓴 “내가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은 한 마리 개미가 큰 맷돌에 붙어서 사는 것. 악착같이 오른쪽으로 가려해도 풍륜이 왼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막지 못한다”와 같다고 생각하였을까?
그는 외로울 때 자신을 백석의 시 “멧새소리” 에 등장하는 “명태”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듯하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다
문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아니 그는 백석의 시 “흰바람벽이 있어”에서
“하늘이 이 세상을 만드실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라고 슬퍼한 만큼이나 삶에 대한 가슴앓이를 많이 하여온 듯하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가슴앓이를 강요하지 않았다.
2년 전 쯤 그가 썻던 글들을 모아 “웃어라, 인생아!”라는 책을 내면서 그는 이렇게 외친다.
"어떻게 매번 맑은 물줄기만 만나지겠는가.
그런게 인생 아닌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불모지를 향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죽어가는 게 인생인걸...
더 많이 가지려 그만 애쓰고
한 번쯤 맘편히 크게 웃어보자!"
그가 2006년 만들어 놓은 네이버의 블로그 “매봉 독구리”
http://blog.naver.com/everpower108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그의 진솔한 글을 읽고 정겨운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그는 그들에게 친절한 이웃, 다정한 친구처럼 일일이 정겨운 답글을 달아주었고, 어느덧 그는 네티즌들의 입소문을 타고 검사답지 않은 검사, 어려운 입장을 대변해주는 사람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친교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그가 아내와 함께 통도사 적멸보궁에서 참배하면서 송수권의 “산문에 기대어”라는 시를 떠올리며 목울대가 아파오고 눈시울이 시릴 정도로 자신을 완전히 열고 싶어 하는 그의 열망이 느껴진다.
“더러는 물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 한 가지 꺽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듯.....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 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처럼 우연이지만 우연이 아닌 것처럼 그는 진정으로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인연맺기를 갈구하고 있었다.
그가 떠난 지금 그와 일면식도 없으면서 블로그를 통하여 마음을 열고 지내던 이름모를 사람들이 그의 영면을 안타까워 하는 글을 도배하고 있지만
그는 이제 더 이상 답글을 쓸 수 없다.
그의 인터넷 이메일과 네이버와 신문사의 블로그에는
이제 더 이상 그의 정겹고 인간다운 글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대구고검에서 홀애비 생활을 하며 자주 올라간 용지봉에서 백거이의 “아내에게(贈內)”라는 시를 인용하였었다.
그는 아내에게 “살아서 한 집안에서 사랑하고, 죽어서 한 무덤에서 티끌 되리(生爲同室親, 死爲同穴塵)”라고 한 약속을 잊었단 말인가?
그가 지난 12월 청계산에 오르면서 쓴 글
“무겁다, 너무나 삶이
혼자가야 할 고단하고도 머나먼 길
함께 걸어줬으면 좋으련만
부질없는 희망 벗어던지고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
이라는 눈물 젖은 기도를 할 뿐“
이라는 시는 무엇을 암시하였던 것일까?
그가 나에게 도종환의 “무인도”에 있는 싯귀로 묻는다
“너도 망망한 바다 끝 외딴 섬에서
한 마장쯤 더 떨어진
그런 섬처럼 있어 본 적 있느냐?“고....
그가 서울을 떠나 고향의 선산으로 향하던 날 아침
강아지 짖는 소리에 창밖을 보니 에어컨 실외기 위에 이름 모를 새 한 마리
강아지가 계속 짖어대도 날아갈 생각이 없는지 눈을 껌벅이고 있다.
영호성님, 성님은 건강하게 열심히 사시유.....
눈을 껌벅이고 있다.
여보게, 잘 가게.....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어 당신을 따라갈 수 없다네......
당신이 여수의 어느 섬, 동백이 피는 산기슭에서 차거운 흙을 덮는 오늘....
나는 오늘 집에 일찍 갈라네.....
그의 블로그 안에 있는 포토로그
제주의 어느 노래방에서 후배가 아내와 함께 있는 그를 찍은 사진
그는 아직도 웃고 있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09. 3. 17. 최영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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