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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국악실내악단 다스름의 12월 9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 송년음악회 <즐거운 음악> 커튼 콜 |
ⓒ 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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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 대중음악계를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아마도 '아이돌'이란 말이 될 것이다. 이미 9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아이돌 그룹의 폭풍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대중음악계를 휩쓸고 있다. 그러나 전국민을 매혹시키는 그 아이돌 그룹들의 평균 수명이 아쉽게도 5년 안팎이라고 한다. 솔로가 아닌 그룹으로서 음악활동을 지속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단명한 그룹의 수명은 비단 아이돌 그룹만의 문제는 아니다. 얕은 시장성으로 인해 순수음악계에는 많은 음악그룹이 생겨났다가는 이내 모습을 감추게 된다. 게다가 프로젝트 그룹 성격도 많아 하나의 음악 그룹이 장수하기는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다.
그런데 5년도 아니고 무려 20년을 오직 한국 국악의 미래를 바라보며 달려온 사람들이 있다. 여성국악실내악단 다스름은 지난 20년간 국악계를 주도해왔다. 국악계 분위기가 창작음악에 매진하는 가운데 많은 그룹이 명멸해가는 와중에도 흔들림 없이 20년을 꾸준히 달려오고 있다. 다스름이 이처럼 20년을 이어온 저력은 무엇보다 활발한 연주활동에 있다. 올해만 봐도 해외 순회공연 포함 63회의 연주를 기록하고 있다.
국공립단체라 할지라도 쉽지 않은 연주 횟수가 놀라울 따름이다. 다스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왕성한 연주활동을 통해 국악계 아니 전체 순수음악 연주단체들의 염원인 단원 월급제에 한 발 다가설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스름의 이런 연주활동이 가능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우선 무엇보다 20년이라는 오랜 연주활동이 음악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주었다는 점이다. 올해 봤다가 다음 해에 연락해보면 이미 해체된 경우도 많다. 그러나 20년의 경력은 언제라도 이들을 부르면 된다는 안정감을 주고 있다. 둘째로는 다스름 초기부터 지금까지 지속해오고 있는 국악 소외지역 방문 공연에 있다. 초등학교 교실까지 찾아가서 연주하는 단체는 다스름이 처음이고 아직도 그런 연주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연약한 여성들이 한 손에 악기 들고, 다른 한 손에 연주 장비를 들고 뛰는 한편 안쓰럽기도 한 악착같은 노력 끝에 다스름의 방문지는 초등학교를 비롯해 군부대, 교도소, 노인 요양원 등 범위를 넓혀갔다. 더불어 해외 각지에 우리음악사절로 파견되는 믿음직스런 연주단체로 우뚝 서게 되었다.
셋째로는 음악적 자립자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20년 전 창단멤버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다스름의 대표 유은선씨는 국악계 및 방송계에 널리 알려진 작곡가이다. 때문에 연주할 곡을 직접 작곡하거나 편곡해서 다스름의 색깔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작·편곡이 가능한 두 명의 단원을 더 영입해서 다스름의 음악을 좀 더 탄탄하게 완성할 수 있는 토대를 보강하기도 했다.
마지막 다스름의 장수 비결은 소통에 있다. 다스름은 지난 세월 동안 많은 협연자들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발휘해 왔다. 작곡가 유은선의 오늘을 가능케 한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비나리'는 정가 명인으로 우뚝 선 강권순의 목소리를 빌어서 가능했고, 지금까지도 그들의 음악을 위한 소통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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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은선 작곡, 여인별곡,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비나리를 부른 강권순 |
ⓒ 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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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어린이 합창단 <예쁜아이들>도 10여년간 다스름과의 협연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더 바싹 다가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런 다스름에 힘을 보태준 커다란 응원도 이어졌다. 국창 안숙선, 민요 명창 김영임 등 예술적으로나 대중적으로 입지를 완성한 명인들의 도움으로 다스름의 무대는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모든 것들의 정화처럼, 어쩌면 지난 20년의 인고를 꽃피우게 한 사건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올해 다스름이 마포구청의 제안으로 마포아트센터에 상주단체로 입주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국악연주단체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추후에 예술계 전반으로 확산되어 여러 장르의 민간단체들이 국공립 극장(아트센터)에 상주단체로 입주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것으로 다스름은 좀 더 안정적이고 진취적으로 단체를 끌어갈 수 있게 되었다. 다스름이 국악계에서는 최초로 국악 브런치 음악회를 정기적으로 열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마포아트센터에 입주함으로써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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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롤과 동요를 예쁘게 불러준 <예쁜아이들> |
ⓒ 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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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의 분위기가 무르익는 9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 다스름의 송년음악회 <즐거운 음악>이 열렸다. 20주년을 불과 일주일 남짓 남겨둔 연주회라 그런지 사회를 보는 유은선 대표는 평소보다 사뭇 들뜨고 긴장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년을 맞는다는 사실도 크나큰 감회를 주겠지만, 이 날은 특별히 SBS 문화가중계에서 오는 29일 방송을 위해 전 과정을 녹화를 하고 있었던 것도 가슴을 떨리게 했을 것이다.
송년을 맞아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이 전국에 메아리치는 때에 한 곳에서라도 국악으로 그것이 자신이 연주하는 음악으로 당당하게 나선다는 것이 대단히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무려 2시간이 넘도록 진행된 다스름 송년음악회에는 지난 20년을 짧게 압축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 앞서 말한 강권순, 예쁜아이들이 아름답고 또한 행복해지는 노래를 들려주었고, 또한 무용가로서 오랫동안 다스름의 연주에 기꺼이 동참해주었던 김삼진 무용단도 출연해 음악에 맞춰 이쁜 춤사위로 무대를 수놓았다.
신종플루 영향으로 공연장들이 된서리를 맞았으나 이날 다스름 연주에는 많은 관객이 찾아 다스름의 연주에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연주가 끝난 뒤 SBS 중계진 한 명은 "이렇게 잘하는지 몰랐다"며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로비에는 오랜 연주에도 많은 청중들이 남아 음악의 여운을 서로 나누며 흥겨워 보였다.
그러나 정작 다스름 단원들은 연주를 마치고는 다음날 아침 지방 연주를 위해 악기를 챙겨 총총히 차를 타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기쁨과 흥분은 청중의 몫으로 다 내놓고 자신들은 바쁜 일정에 떠밀려 종종 걸음치는 다스름 단원들을 보며 누군가 "소녀시대가 따로 없네"해서 한바탕 웃음을 주기도 했다. 국악계 내 인기와 정신 못차릴 바쁜 일정으로는 소녀시대 버금갈 다스름인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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