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MIN YOUNG,추천시와 추천 문학

[스크랩] 송진권시집 `자라는 돌`(창비2011) 에서 그 저녁에 대하여, 못골19 / 송진권

LEE MIN YOUNG 2011. 7. 17. 22:15

그 저녁에 대하여

-못골 19

 

송진권

 

 

뭐라 말해야 하나

그 저녁에 대하여

그 저녁 우리 마당에 그득히 마실 오던 별과 달에 대하여

포실하니 분이 나던 감자 양푼을

달무리처럼 둘러앉은 일가들이며

일가들을 따라온 놓아먹이는 개들과

헝겊 덧대 기운 고무신들에 대하여

김치 얹어 감자를 먹으며

앞섶을 열어 젖을 물리던

목소리 우렁우렁하던 수양고모에 대하여

그 고모를 따라온 꼬리 끝에 흰 점이 배긴 개에 대하여

그걸 다 어떻게 말해야 하나

겨운 졸음 속으로 지그시 눈 감은 소와

구유 속이며 쇠지랑물 속까지 파고들던 별과 달

슬레이트 지붕 너머

묵은 가죽나무가 흩뿌리던 그 저녁빛의

그윽함에 대하여

뭐라 말할 수 없는 그 저녁의

퍼붓는 졸음 속으로 내리던

감자분 같은 보얀 달빛에 대하여

 

 

 

 

복숭아 먹고

 

송진권

 

 

웃녘 새는 울로 가고

아랫녘 새는 알로 가고

무거운 건 바닥에 가라앉고

가벼운 건 다 공중에 떠오르고

염소눈 우리 안에서

달구새낀 헛간에서 자장자장 잠이 들고

검은 새는 흰 새 되고

흰 새는 검은 새 되어

낮으로 밤으로 다 뿔뿔이 나눠지고

마지막 한 생각까지 다 제 갈 데로 가서

모든 것 다 제각기 제 갈 길 찾아간 뒤

못다 먹고 못 간 새는

어디로 가야 하나

어드메로 가야 하나

아나, 까투리 복숭아 하나 먹고

어여 너도 가거라

너 갈 데로 가거라

                 

 

-시집『자라는 돌』( 창비, 2011)

송진권 시집 - 『자라는 돌』(창비, 2011)

 

 

 

송진권 시집 - 『자라는 돌』(창비, 2011

 

 

2004년 제4회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송진권 시인의 첫시집이다. 등단 당시 “구성지면서도 입에 착착 달라붙는 말랑말랑한 언어의 묘미로 빼어나게 살린 충청도 사투리, 거기에 걸맞은 어휘 선택, 설화와 가난의 현실마저 경쾌하게 그려낸 우리 전통의 익살스러운 가락이 일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시인은 그 평에 값하는 시편들을 선보인다. 등단 후 7년이라는 세월의 깊이만큼이나 농익은 서정적인 문법과 서정시의 전통을 아우르는 참신한 감각으로 “슬픔으로 만연한 허무의 세계를 고유한 질서를 지닌 리듬의 세계로 변환시키려는 의지”(조강석 「해설」)가 돋보인다.  
  제1부
딸레
대숲
가죽나무가 있던 집
하염없이
저 샘
꽃을 따서 놀던 것이
내진(內診)
보리밭의 잠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철쭉제
죽은 듯이
월식

제2부
정을 떼다
산골 엽서
각인
너머
Moldova
먼 꽃밭
추석 만월
노루목이라는 곳

태(胎)
맨드라미꽃밭

제3부
달 속의 할머니—못골 1
늦봄—못골 2
조맹선이 소 몰 듯이—못골 3
걸음마—못골 4
절골—못골 5
무수—못골 6
맹꽁이 울음소리—못골 7
배부른 봄밤—못골 8
곡우 지나고—못골 9
김옥심전(傳) —못골 10
지탄(池灘) —못골 11
불귀—못골 12
곰보네 대장간 맨드라미꽃 빛깔—못골 13
개나리 처녀—못골 14
정자옥—못골 15
석류꽃—못골 16
자라는 돌—못골 17
비지장 먹는 저녁—못골 18
그 저녁에 대하여—못골 19
고향에 돌아와도—못골 20
켄터키 옛집에—못골 21

제4부
이윽고
브레멘으로
접목
거꾸로 서서 걸어가
빗방울은 구두를 신었을까
복숭아 먹고
아무 날 아무 때 아무 시
종달새를 쫓는 붉은 원판
이으으으응
나비
니나노 난실로

해설 | 조강석
시인의 말

원초적 기억과 슬픔을 어루만지는 시의 손길

2004년 제4회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송진권 시인의 첫시집이 출간되었다. 등단 당시 “구성지면서도 입에 착착 달라붙는 말랑말랑한 언어의 묘미로 빼어나게 살린 충청도 사투리, 거기에 걸맞은 어휘 선택, 설화와 가난의 현실마저 경쾌하게 그려낸 우리 전통의 익살스러운 가락이 일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시인은 그 평에 값하는 시편들을 선보이고 있다. 등단 후 7년이라는 세월의 깊이만큼이나 농익은 서정적인 문법과 서정시의 전통을 아우르는 참신한 감각으로 “슬픔으로 만연한 허무의 세계를 고유한 질서를 지닌 리듬의 세계로 변환시키려는 의지”(조강석 「해설」)가 돋보인다.

송진권은 사연 많은 이야기를 품고 가슴 절절한 노래를 들려준다. 그는 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 부분으로 즐기면서 한 가락 한 가락 자아낸다. “물기 많았던/그래서 더 깊이 패었던 시절”(「각인」)을 ‘고향의 말’에 스민 구성진 가락으로 풀어내는 그의 시에는 지난 시절의 애환과 “그냥 그늘에/두어도 좋은”(「산골 엽서」) 소중한 추억들이 녹아들어 있다.

기억하니/물기 많았던 시절/그래서 더 깊이 패었던 시절//아직도 생각나니/달구지 타고 맨발 들까부르며/우리 거기에 갈 때/지네뿔에 발굽이 크던 소/양쪽 뿔에 치렁치렁 늘인 칡꽃/질컥한 길에 빗살무늬로 새겨지던 바큇자국/뒤따르던 질경이꽃/햇볕 사려감던 바큇살/어룽대며 곱던 햇발이며/연한 화장품 냄새//다시 돌아올 사람들과/다시 오지 못할 사람들이/나란히 앉아 발을 들까부르며/쇠꼬리에 붙는 파리나 보며 시시덕대던 시절//물기 많았던/그래서 더 깊이 패었던 시절을(「각인」 전문)

슬픔이 차고 넘치던 그 시절을 시인은 “다 고맙고 그리운 일”(「김옥심전」)로 감싸안는다. 그리하여 “슬레이트지붕 너머/묵은 가죽나무가 흩뿌리던 그 저녁빛의/그윽함”과 “감자분 같은 보얀 달빛”(「그 저녁에 대하여」)이 깃들던 마을 ‘못골’이 자연스레 기억의 수면 위로 고스란히 떠오른다. 그 추억 속에는 “나를 낳아놓고/한정없이 붉은 곳으로 가”(「먼 꽃밭」)버린 어머니와 “죽어도 곱게 못 죽고/몇해를 벽에다 똥을 처바르”던(「곡우 지나고」)던 할머니를 그리는 애틋한 마음이 있는가 하면, 「조맹선이 소 몰듯이」 「절골」 「무수」 등의 시편에서 엿보이는 해학이 반짝 드러나기도 한다.

가마솥 속 같은 밤인데요/늙은 산수유 몸 밖으로/어찌 저리 많은 꽃들을 밀어냈는지/정수리에서 발꿈치까지/온몸에 차조밥 같은 꽃들을 피웠는데요/배고프면 와서 한 숟갈 뜨고 가라고/숟가락 같은 상현달도 걸어놓았구요/건건이 하라고 그 아래/봄동 배추도 무더기 무더기 자랐는데요/생전에 손이 커서 인정 많고/뭘 해도 푸지던 할머니가/일구시던 텃밭 귀퉁이/저승에서 이승으로/막 한상 차려낸 듯한데요/쳐다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데요/이 푸진 밥상/혼자 받기가 뭣해서/꽃그늘 아래 서성이는데/훅 끼치는 할머니 살냄새/우리 강아지/우리 강아지/엉덩이를 툭툭 치는 할머니가/소복이 차려내신 밥상/그 누런 밥상에 스멀스멀/코흘리개 어린 내가/숟가락을 막 디미는데요/가마솥 속 같은 봄밤/뚜껑을 열자 김이 보얗게 오르는/배부른 봄밤인데요(「배부른 봄밤」 전문)

애잔한 추억 속에 머물던 시인은 현실로 돌아와 유독 그리운 어머니를 불러낸다.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와/아버지 어머니와/다 브레멘에서 만나”러 “북 치고 소고 들고 상모 돌리며”(「브레멘으로」) 길을 떠날 채비를 한다.

엄마 엄마 이 돌멩일 심어놓고/다독다독 북돋아주고 뜨물을 주면/우리가 안 보는 새 돌멩이가 자란대요//이 돌멩일 길러서 칠성바위만치 크면/단을 쌓고 치성을 드리고/엄마를 모셔올게요/엄마는 붉은 옷 푸른 옷 차려입고/너울너울 그 앞에서 잘 노세요//(…)엄마 엄마 그 돌멩이 더 자라서/만학천봉 심산유곡 거느리고/산지니 수지니 해동청 보라매도 쉬어 넘는/높으나 높은 고개도 몇개 두고/삼천대천 세상까지 봉우리 솟으면/볕 잘 드는 골짝에 띠집을 지어놓을게요/엄마는 거기서 쉬세요(「자라는 돌」 부분)

지난날의 아픔과 슬픔을 접어두고, “웃녘 새는 울로 가고/아랫녘 새는 알로 가고/무거운 건 바닥에 가라앉고/가벼운 건 다 공중에 떠오르”(「복숭아 먹고」)는 세계로 “하염없이” “갈 때까지”(「하염없이」) 가는 시인의 발걸음은 자못 경쾌하다.

간다/소쩍새 울음 그 컴컴한 구렁 속으로/물 가둔 논에 뜬 개구리알 건져 먹고/조팝꽃 더미 속으로/거멓게 웅크린 상여막 어둠 속으로//갈 때까지 간다/꽃 핀 나무 지나 죽은 나무에게로/죽은 나무 지나 조금 더 간다/지옥까지/개를 만나면 개를 타고 간다/깨벌레를 만나면 깨벌레에 업혀 간다//눈깔사탕 같은 달을 물고/열 손가락 기름 먹여 횃불 해 들고/머리카락 뽑아 신을 삼아/십년을 살며 아이 일곱을 낳아주고/더 더 간다/털실뭉치를 굴리며 간다/요강뚜껑을 굴리며 간다//우우 봄밤/우우 하염없는 봄밤(「하염없이」 전문)

이정록 시인이 추천사에서 밝히듯 송진권의 시는 “도대체 백석이나 이용악 쯤에서 끝장난 이야기들”을 천연히 호출한다. 설화와 전통을 품고 가되 “입말의 사람살이와 우여곡절”(이정록 「추천사」)로 현실을 마저 꿰는 솜씨는 과연 도저하다. 송진권의 시는 일견 오늘날 관념적인 언어의 유희가 주류인 듯한 ‘젊은 시단’의 중심에서는 비켜선 듯하다. 하지만 제자리에서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오롯이 제 나름대로의 빛과 소리를 뿜어내는 미덕이 있기에 “울지 않고 울리는 비결”(조강석 「해설」)을 지닌 채 “거꾸로 서서 걸어가”는 그의 모습 또한 그렇게 위태롭게 보이지 않는다.

실리 샐리가 걸어가/거꾸로 서서 걸어가/사람 손이 타지 않은 것을 찾아가/새들이 거꾸로 날아 따라가/짐승들도 거꾸로 서서 따라가/(중략)/실리 샐리가 걸어가/거꾸로 서서 걸어가/손이 발이 되고/발이 손이 될 때까지/노래 부르고 춤추며/실리 샐리가 걸어가(「거꾸로 서서 걸어가」 부분)
 

 

추천사

 

이야기가 펼쳐지는 자리엔 어린 귀가 꽃봉오리를 연다. 이야기의 장딴지가 징검돌을 건너뛸 때마다 귓바퀴의 여린 솜털이 오소소 떨린다. 콧등에 침을 바르며 저린 오금을 당겨앉을 때 눈망울은 머루알처럼 빛난다. 송진권은 그 머루 눈빛에 붓을 적신다. 쪼글쪼글한 입에서 나오는 오래된 이야기는 귓바퀴에 매달린 풍경을 흔들고는 폐사지 주춧돌 아래로 고인다. 거미가 허공에 다랑논을 치듯 원고지 칸칸에 눈물농사를 짓는다. 도대체 백석이나 이용악 쯤에서 끝장난 이야기들이 어떻게 두꺼비 송진권의 울음주머니에 태반을 들였단 말인가. 그의 시를 읽다보면 ‘날비지 같은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소 돼지의 내장처럼 맨드라미꽃이 만발키도 해서, 무릉도원이란 곳이 필시 생간 냄새가 나는 할머니의 속곳 어디쯤이 아닌가? 자꾸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말을 다루는 품새는 옛 서책의 기품이나, 가슴을 흔드는 감동의 깊이는 고서에서는 찾기 어려운 입말의 사람살이와 우여곡절이 그득하다. 그의 시를 ‘조맹선이 소 몰듯이’ 몇번 더 읽는다. 짐짓 ‘이으으으응’ 질투가 똬리를 튼다. 아, 망종 단오가 한 두릅이니 한 사흘 막걸리나 퍼마시자. 그리운 것은 모락모락! 방금 꺼낸 생간처럼 사람을 부르는 힘이 세나니, 송진권이 마당 가득 어린 귀를 불러모으는구나. 설화라는 등나무는 현실을 칡넝쿨 삼고자 한다. 송진권의 몸체가 그 갈등의 넝쿨에서 실눈을 뜨고 내다본다. 귓바퀴의 솜털이 억세어지기 전에 그의 목울대가 또 한번 요동칠 것이다. 두꺼비 등짝 같은 늙은 칡이여! 등나무 새순을 고삐 잡아 당대 속으로 거칠게 달려가자.

 

이정록 시인

 

 

시인의 말

 

 

왜 이제야 왔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해야 하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 딴청이나 피워야 하나
아니면 짐짓 들어서면서 도꼬마리나 떼어내야 하나
한없이 거꾸로 서서 걸어가면서 무엇을 만났던가
민화 속 우스꽝스런 호랑이와 까치, 해, 달, 별, 물고기
어딘가 좀 모자란 듯 삐뚤며 원근법이 무시된 그 그림의 화려한 색채는
무엇을 바라서 그리 처연하니 슬픈 빛을 띠었던가
아직도 내 속에 여전히 꿈틀대며 살고 있는 것들
옹애, 따부, 호야, 꾸구리, 지네뿔에 발굽 크던 소
네미, 고욤, 깨금, 찬물구덩이, 가린여울, 노루목, 딸레
산을 몇개나 넘어 높은벌로 시집간 선례 누나
그 뼛골에 박힌 선연함을 어떻게 다 풀어낼 수 있을 것인가
내 시들이 소를 몰고 어둑발 내리는 길을 걸어
느지감치 집에 돌아와 저녁상에 앉은 아이의 얼굴 같기를

시집이 나오기까지 고마운 분들이 너무 많다.
살면서 두고두고 갚아야 하리라.

첫 시집을 눈물 많았던 어머니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2011년 뻐꾸기 울음 분분한 초여름


옥천에서

 


송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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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시사랑 사람들
글쓴이 : 논시밭에 망옷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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