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덧상

이순간의 다림질 2 (옛집에 들러) / 이민영

LEE MIN YOUNG 2011. 9. 12. 22:40

 

옛집에 들러

 

이민영


삼짓날에 뵙지 못하여

구월에야 맹강 덩굴로 뒤덮은 

아부지 묏둥을 벌초하였습니다

동네 핸팬짝 집에 들러 잘게 썬 짚풀에 쌀겨를 버물러  

아부지처럼 쇠죽을 쑤니 장작이 파닥거리고

섶문새로 한데바람이 몰려와 잠을 청합니다

 

피식피식 웃어대는 솔낭구소리에 발바닥이 간지럽고 

타다닥 콩소리로 궁댕이는 메주처럼 익어갑니다

빠침, 도롱테, 구슬, 이시거리가 춤을 추고

쇠비름,자운영,때까우,독새끼,맹생이가 한꾼에 

살곶이와 들녁의 이름을 채워 넣어도

해질녁 쓰르라미 노래는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파삭파삭한 때깔을 입힌 상수리 이파리의,

다우다 몸빼입은 엄니가 뜬금없이 살사춤을 추는,

새악시처럼 여럽게 웃고있는 거 겠지요.

 

저 초록이 붉어지도록 

아가는 방구를 뀌어대고,

밤은  노랗게 밝아 옵니다.

 

*출처 이민영시목록 2000-2003(문예지, 신문시창기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