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송화
이민영李旻影
...
노랑 빨강 초록 분홍
핑크빛이
땅에 앉아서
넘치지도 좁지도
뽐내지도 흘리지도 아니합니다
혼자서는
채송화라 하지않고
꽃이라 않고
피지 않고
어깨동무로
오시는 길목마다 님이 됩니다.
[출처 무등일보 2005.07.01]
겨울, 채송화씨
-김용택-
아내는 나를 시골 집에다 내려놓고 차를 가지고 돌아갔다.
갑자기, 가야 할 길과
걸어야 할 내 두 발이
흙 위에 가지런히
남는다.
어머니 혼자 사시는 우리집 마당에 발길 닿지 않는 땅이
이렇게 많이 있다니? 가만가만 돌아다니며 마당 가득 발자국을
꼭꼭 찍어본다. 이 마당에서 벌거벗고 뛰어 놀던
내 형제들과 이웃 아이들의 벌거벗은 웃음 웃음소리 대신
어머니는 해마다 발 디딜 곳 없이 마당 가득 화려한
채송화꽃을 피워놓는다.
정말 환하다. 달빛은 환해서 세상의 모든 욕망을 죽이고
나무만을 따로따로 달빛 아래 세운다.
달빛은 모든 것들을 떼어놓고 너희들의 말이 거짓이었음을
그렇게 보여준다. 물만 흐를 줄 안다. 발밑에서 참지 못하고
깔깔대는 까만 채송화씨들이 세상을 걷느라 두꺼워진 내 발바닥
깊은 속살을 찌른다.
씨만이 세상의 정곡을 찌른다.
나는 이 세상 모든 길들을 거둔다.
세상의 소식이 닿지 않는 이 간단명료한 사랑을 나는 알고 있다.
거짓 없는 사랑은 현실이다.
이 세상 모든 살구멍이 열리고 뼈마디가 허물어져내리는 사랑을
나는 안다.
시를 써야지. 자고 일어나고 밥 먹고 일하는 사람들이 꽃이 된다.
고된 노동으로 이룬 따뜻한 어머니의 잠 속으로 들어가 자고 싶다.
어머니의 깊은 잠만이 나를 깨울 꽃이다.
수백 수천 대의 자동차 바퀴
구르는 소리에 깔려 잠을 자던 내가 창호지 문지방에서
꼬물거리는 겨울 벌레 소리에도
눈을 뜬다.
낡은 내 몸
어디에
새로
뚫릴
귀와
눈이 있었는가. 나는 깨끗하게 죽을 것이다.
내 죽었다가,
수백 번도 더 죽었다가 살아났던
내 청춘의 오래된 이 방에서
나는 오랜만에 달빛으로 죽는다.
저 황량한 거리, 재활용이 불가능한,
쓰레기 같은 모든 거짓 사랑과 예술 속에서 미련 없이 걸어나와
누구도 닿지 않는 먼 잠을 자리.
저 물소리 끝까지 따라가 잠자는 겨울 채송화씨,
그 끝에서 나는 자고 깨어
그리운 우리집 마당에 채송화꽃으로 오리.
오, 죽지 않고 사는 것은 거짓뿐이니. 너를 따라온 모든
낡은 길들을 거두어라.
[출처.계간 문학동네-1999년 봄]
채송화
조 윤
불볕이 호도독 호독
내려쬐는 담머리에
한올기 菜松花
발도둠 하고 서서
드높은 하늘을 우러러
빨가장히 피었다.
(66세.장성출생.원로시조시인.다수의 시조문학상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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