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MIN YOUNG,추천시와 추천 문학

(좋은시) 가을시 모음-조병화 외

LEE MIN YOUNG 2006. 11. 6. 01:36
가을-조병화(趙炳華)




가을은 하늘에 우물을 판다
파란 물로
그리운 사람의 눈을 적시기 위하여 

깊고 깊은 하늘의 우물
그 곳에
어린 시절의 고향이 돈다 

그립다는 거, 그건 차라리
절실한 생존 같은거
가을은 구름밭에 파란 우물을 판다 

그리운 얼굴을 비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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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오은희



맑고 푸름이 명확한 여름엔
아무 것도 투정할 수가 없어

비릿한 장마 비에
곤혹스러웠을 한여름 태양조차도
말이 없는 걸

혼돈의 계절
고통스럽도록 아름다운 계절

늘 푸르다는 것은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

겸허해지고자 하는 것은 또
얼마나
아파야 하는 일인가


*오은희시인(46, 옥천출생.교사 / 시인)
*출처-2003.2004년연속 시사랑사람들선정 명시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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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간다는 것이 무엇이여야 하는 것인가,
삶의 지극함이 주는 이 세상의 자연과 이 삶의 위치가 무엇이며
무슨 빛이여야하는
것을 알으켜 주는 이지의 詩다.
행간에 나는 생각한다, 행간에 나는, 나의 위치가 무엇인지도 숙고해보는 것이며,
행간에 나는, 나의 의미가 무슨 의미인지도 알아보는 것이며,
저토록 푸르고 파란 것들에 對하여
난 내가 숨쉬는 것들의 벗으로
내 위치를 의문도 하는 것이며,
내가 걸어가는 세상의 길목에서
내 존재의 가륵함이 과연 그 무엇인가를
닮아 보려는 것이며,

명경지수처럼 흐르고 밝아져서 이 시 줄에서
이 환한 대답을 듣고가는 것이다,
머리 조아리고 고개 숙이며

그 대답을 듣고가는 것이다.
李旻影(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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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저녁의 詩-김춘수


누가 죽어 가나 보다
차마 다 감을 수 없는 눈
반만 뜬 채
이 저녁
누가 죽어 가나 보다.

살을 저미는 이 세상 외롬 속에서
물같이 흘러간 그 나날 속에서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애터지게 부르면서 살아온
그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풀과 나무 그리고 산과 언덕
오 누리 위에 스며 번진
가을의 저 슬픈 눈을 보아라.

정녕코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정한 목숨이 하나
어디로 물같이 흘러가 버리는가 보다.

..........추경의 다함을 그는 곧 하강의 시선에서 가을 본다
이 세상에는 이룬 것과 허문 것이 상존한다
이루고 나면 이루어진 것을 지속하려는
생각하는 것들의 진행이 가슴과 머리를 오간다
가득하면 가득하여 그 넘침과 비움의 間差에서
나의 위치를 점검한다
죽어가는 것들에게는 항상 뉘우침이라고도 하고
깨달음이라고도 하는 이치가 존재한다
이 존재하는 상념의 그늘이 곧 우리가 자아라하기도 하고
철학이라고도 한다
가을은 죽음을 위한 대 장송곡이다
가을은 성취에 대한 나를 버린 위대한 곡의 소리다
저토록 죽기 위해서 통곡 하다니
저토록 죽어간 것들의 소리에서 나를 찾아보려 하다니
인간은 그래서 현상을 볼때 스스로
왜 미미하다는 것과 왜 작다는, 왜소한 것에 對하여
가끔은 생각하는 것이다.
가을은 죽어가기 위하여 소락대기 지르는 만물의 주기적인 현상인데
이를 미래를 위하여라고 외치는 것이다.
李旻影(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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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노래--이민영


내 마음이 둥둥 떠다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찰삭 가라앉았던 여름의 회포가 뜨거워진다
맥질하며 일렁인다
가슴 구석 저미며 밀려올리는 듯
울대 울먹이듯
소리친 것은 무엇일까
길을 거닐다가 눈앞 낙엽 한 잎에 소스라쳐 놀란다,
맑고 둥근 눈으로
높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들은
눈동자 안에 비추어지는 것들이 눈 내린 겨울 어느 바닷가인 것은
무엇 때문일까
부신 것은 가슴 눈을 감아버리고 벅찬 것은 지나치라는 것일까
여린 것은 다져가란 것일까


출처-李旻影散文詩 20060901.시와사랑 09월호
編輯資料 사이會 서봉옥博士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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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가을--이재무




움켜진 손 안의 모래알처럼 시간이 새고있다
집착이란 이처럼 허망한 것이다
그렇게 네가 가고 나면 내게 남겨진 가을은
김장 끝난 텃밭에 싸락눈을 불러올 것이다
문장이 되지 못한 말(語)들이
반쯤 걷다가 바람의 뒷발에 채인다
추억이란 아름답지만 때로는 치사한 것
먼 훗날 내 가슴의 터엔 회한의 먼지만이 붐빌 것이다
젖은 얼굴의 달빛으로, 흔들리는 풀잎으로, 서늘한 바람으로,
사선의 빗방울로, 박 속 같은 눈 꽃으로
너는 그렇게 찾아와 마음의 그릇 채우고 흔들겠지
아 이렇게 숨이 차 사소한 바람에도 몸이 아픈데
구멍난 조롱박으로 퍼올리는 물처럼 시간이 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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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오세영


너와 나
가까이 있는 까닭에
우리는 봄이라 한다.
서로 마주하며 바라보는 눈빛
꽃과 꽃이 그러하듯...


너와 나
함께 있는 까닭에
우리는 여름이라 한다.
부벼대는 살과 살 그리고 입술
무성한 잎들이 그러하듯...


아, 그러나 시방 우리는
각각 홀로 있다.
홀로 있다는 것은
멀리서 혼자 바라만 본다는 것
허공을 지키는 빈 가지처럼...


가을은
멀리 있는 것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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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편지--이성선


잎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원고지처럼 하늘이 한 칸씩

비어가고 있습니다.

그 빈 곳에 맑은 영혼의 잉크물로
편지를 써서

당신에게 보냅니다.

사랑함으로 오히려
아무런 말 못하고 돌려보낸 어제
다시 이르려 해도
그르칠까 차마 또 말 못한 오늘

가슴에 고인 말을
이 깊은 시간
한 칸씩 비어가는 하늘 백지에 적어
당신에게 전해달라
나무에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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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편지--김시천



사랑한다고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쓰고
끝내 쓰지 못하고
가슴에 고여 출렁이는
그 여러 날 동안

내 마음 속 숲에도
단풍이 들어
우수수 우수수
떨어집니다

그렇게
당신의 뜰 안에
나뭇잎 가을 편지 하나
띄워 보냅니다

밤마다 밤마다
울먹이는 숲길을 건너
나뭇잎 가을 편지 하나
띄워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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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편지--김사랑


사랑한다고
편지를 부치고 돌아오면
단풍잎처럼 내 맘만 붉었습니다

보고싶다고
고백하고 돌아오면
노을처럼 내 사랑만 붉었습니다

좋아한다고
밤 별같은 그대 눈빛이
반짝이는 불꽃이 되어
내 가슴에 타 올랐습니다

우리의 사랑에 가을이 오면
기다리던 답장이 오지 않아도
절 사랑하고 있음을 압니다

하지만 가을편지 한장
바람에 부치고 오면 날이면
속절없이 그대만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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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편지.21--이해인



이 가을엔 안팎으로 많은 것을 떠나보냈습니다.

원해서 가진 가난한 마음 후회롭지 않도록
나는 산새처럼 기도합니다.
시도 못 쓰고 나뭇잎만 주워도
풍요로운 가을날,
초승달에서 차오르던
내 사랑의 보름달도
어느새 다시
그믐달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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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편지--최하림



그대가 한길에 서 있는 것은 그곳으로 가을이 한꺼번에 떠들썩하게 빠져 나가고 있다고 나에게 말해 주고 있는 셈이겠습니다. 그대가 역두(驛頭)에 서 있다든지 빌딩 아래로 간다든지 우체국으로 가는 것도 수사가 다르긴 하되 유사한 뜻이 되겠습니다

날마다 세상에는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고
바람과 햇빛이 반복해서 지나가고
보이지 않게 시간들이 무량으로 흘러갑니다
그대는 시간 위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대에게 나는 지금 결정의 편지를 써야 합니다
결정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시간 위에 떠 있는 우리는 도무지 시간의 내용을
알 수 없으니 결정의 내용 또한 알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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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편지---이수인




헤어지자고 말하지 못한 말
편지에 씁니다
차마 사랑했다고 하지 못한 말
편지에 씁니다

곱게 물든 단풍잎 하나 따서
우표 대신 붙여 봅니다
주소를 써야 하는데 당신은 언제든
내 마음에 계시기에 이 편지는
내 마음 깊은 곳으로 가서 내가 다시 받게 됩니다

답장은 언제나
하얀 백지위에 그려진 당신의 미소

수없이 쓰고 보낸 편지는
내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서
이제는 더 이상 받아 둘 곳이 없습니다

세월이 무수히 흘러
우리 이마에 서리 내릴 때
아마도 당신과 나 서로 다른 나무 아래 누워서
먼 하늘을 바라보겠지요

가을 햇살 눈이 부시고
바람이 불어와 단풍나무 가지 흔들면
당신과 내 머리맡에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들

그러나 우리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겨울 눈보라 폭풍 속에서도
운명처럼 몸을 맡기고 고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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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숲에 들다--김완하


숲은 그 입구부터 가파르다
골짜기는 과감하게 길을 내어준다
나무들 재빠르게 옮겨 앉은 모습 포착된다
서로의 전열을 가다듬어
한 발짝 한 발짝 숲으로
치고 들어가 산을 통째로 쓰러뜨린다
지고 왔던 산을 바지개째 벗어놓고
오리나무 숲은 산 하나를 새로이 짠다
그들이 치는 망치 소리가 텅텅텅 저 밑에서
계곡 위로 밀어 올린다
한동안 고요가 딛고 간 후
대지는 팽팽하게 조여지고,
나무들 하늘로 쏘아올린다
내 느슨한 허리와 어깨도 함께 조여진다
가을 산을 오르며
숨이 감퍼오는 것은,
나무들이 산을 힘껏 조이기 때문이다
졸참나무와 싸리나무 사이
떠났던 바람도 되돌아와
내 늘어진 어깨 바리바리
나무 등걸 가을 산에 부려놓는다

[2007 소월시문학상] 우수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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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노래---보들레르

잘 가라, 이제 곧 우리는 차가운 어둠 속에 잠기리.
너무 짧은 우리 여름의 찬란한 빛이여!
벌써 돌 바닥에 정작 부리는
불길한 소리 들리네.

겨울은 온통 내 존재를 파고들어 오리.
분노,증오,떨림,두려움,고된 노역,
북극 지옥의 태양처럼 내 심장은
붉은 얼음 덩어리일 뿐이니.

장작 소리마다 몸을 떨며 귀기울이니,
교수대 세우는 소리보다 더 음산한 울림이여.
내 정신은 지칠 줄 모르고 쳐대는 육중한 망치질에
무너지고 마는 탑과 같아.

이 단조로운 충격에 맞추어
어디선가 서둘러 관에 못질하는 듯.
누구의 관을?... 어제는 여름, 이제 가을이네!
지 알 수 없는 소리는 출발인 양 울리네.

난 그대의 커다란 눈의 청록빛이 좋아,
사랑스런 미인이여, 오늘 난 모든게 씁쓸해,
당신 사랑도, 침실도, 난롯불도, 그 어느 것도
바다의 빛나는 태양만 못해.

그래도 나를 사랑해주오. 사랑하는 이여!
인정 없는 심술궂은 사람이라도 어머니가 되어주오.
애인이든 누이든, 찬란한 저무는 가을 태양
그 한순간의 달콤함이 되어주오.

잠깐의 수고여! 이내 무덤이 기다리니, 굶주린 무덤이!
아! 내 이마 그대 무릎 위에 묻고,
하얀 열대의 여름을 아쉬워하며,
노란 따사로운 빛을 맛보게 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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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가을-- 이민영

속살 풍성하여 봉우리진 들 두덩
이제 산도 마을도 가쁜 웃음에 열진
땀흘린 날의 행복 들
불어오른 듯 사모하며
안기는 알곡의 사래짓, 힘이 나
삽자루마다 당기던 힘줄이 어적어적 오르내리면
쟁기질 보습아래 담아가는 누렁소 핑경이질
휘어이 휘어이 풍경 햇살
두껍게 두른 들마당
하늘이 새롭다

그대가 오늘은 무단시 연인이 되어보는구나
그대가 무단시 곁에 다가오는구나
아름드리 나무 길목에서 안개 숲,
사랑이 촘촘히 서 있구나
사랑이 방울방울 열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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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김용택


가을입니다
해질녘 먼 들 어스름이
내 눈 안에 들어섰습니다

윗녘 아랫녘 온 들녘이 모두
샛노랗게 눈물겹습니다

말로 글로 다할 수 없는
내 가슴속의 눈물겨운 인정과
사랑의 정감들을 당신은 아시는지요

해 지는 풀섶에서 우는
풀벌레들 울음소리 따라
길이 살아나고 먼 들 끝에서 살아나는
불빛을 찾았습니다

내가 가고 해가 가고
꽃이 피는 작은 흙길에서
저녁 이슬들이 내 발등을 적시는
이 아름다운 가을 서정을
당신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