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MIN YOUNG,추천시와 추천 문학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 한운사

LEE MIN YOUNG 2009. 9. 26.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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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 한운사

 

1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얌전한 몸매에 빛나는 눈

고운 마음씨는 달덩이 같이

이 세상 끝까지 가겠노라고

나하고 강가에서 맹세를 하던

이 여인을

누가 모르시나요

 

2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넘치는 정열에 붉은 입술

한 번 작정하면 변함이 없고

꿈 따라 님 따라 가겠노라고

내 품에 안기어서 맹세를 하던

이 여인을

누가 모르시나요

 

 

 

 

 

 

 

 

 

 

 

 

누구든 말 할 수 없는 슬픔 한 두개를

보석처럼 담고 산다.

보석처럼 빛나는 가슴의 눈물

누군들 눈물아니 흘려 보았으랴

 돈 때문이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그 흔한 사랑 때문도 아니다

사는 일에서 가슴 아픈 일이란

같이 살아야하는 사람과 헤어져 사는 일이다

만나야하고 살을 비벼대는 것이 삶일텐데

헤어져야 한다는 것들이 사는 일이라니

이 더한 슬픔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가슴에 담고 혼자 삼킨다.

 

사는 일로, 뜽금없는 일로 헤어져 소식을 모르고 사는 이들

행복이란 만나는 일인데

사는 것들 때문에 이별하여 헤어진 분들에게

추석은 소식이 되었으면 한다.

 

사랑이 기다려지는 시월의 가을,

헤어져 있는 그이가

아무쪼록 있어만주기를 소망하리라는

어느 아픔을 들으며

 

 

 

 

여자가수 곽순옥이 부른 대중가요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4분의 4박자, 슬로우)는

매년 6월이면 자주 듣게 된다. 영화 ‘남과 북’의 주제가인 이 노래는 6·25한국전쟁 때의 이산가족을 소재로 한 것이어서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영화 속에서 흐르는 주제가는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저음가수 곽순옥의 정열적이면서도 서글픈 이 노래는 KBS라디오 연속극 주제가로도 불리며 청취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애절한 분위기의 가수 목소리가 전쟁으로 피붙이를 찾아 헤매는 이산가족들의 애간장을 타게 한다.

 43년 전에 나온 노래지만 이산가족들의 애절함은 세월의 흐름과 상관없이 그대로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일수록 아픈 마음은 더 하다.

 

 박춘석 작곡, 한운사 작사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는 패티김(본명 김혜자)이 다시 취입,

1983년 6월 30일 시작된 KBS의 남북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을 계기로 본격 알려지게 됐다.

그해 전국을 눈물바다로 만든 ‘이산가족 찾기’ 메인음악으로 방송되면서 더욱 유명해진 것이다.

상봉장면을 보지 않고 흘러나오는 멜로디만 듣고도 눈물짓는 사람들이 수두룩했을 정도였다. 전쟁의 아픔, 고스란히 담겨 있어 KBS는 그 때 6.25특집프로그램 몇 시간만 방영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산가족들 소식이 알려지고 사람 찾는 행렬이 줄을 잇자 정규방송까지 멈추고 석 달간 쉬지 않고 생중계한 기록을 남겼다. 우리나라만이 가질 수 있는 방송사상 기네스북에까지 올랐다.

 

전쟁의 비극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욱신거리는 이산의 상처로 남아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다.

곽순옥이 처음 부른 주제가는 크게 히트해 영화와 함께 떴다.

이에 힘입어 리메이크해 부른 패키김을 비롯하여, 여러 가수들이 이 노래를 취입했다.

 영화와 노래가 성공하자 1992년 6월초에는 같은 제목의 소설(행림출판사 발간)까지 나왔다.

 소설은 260쪽 분량으로 6.25전쟁이 빚어낸 우리 민족의 분단현실을 그렸다.

역시 한운사 선생이 썼다. 노래와 같은 제목의 악극으로도 소개돼 관중들 사랑을 받았다.

 2006년 7월 14일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두 차례 열린 공연은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란 주제가를 포함,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20여곡의 노래가 곁들여졌다. 중·장년에겐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아이들에겐 새로움을 안겨줬다.

 노래를 탄생시킨 영화 ‘남과 북’은 1965년에 개봉된 김기덕 감독의 대표작이다.

 한운사 선생의 뛰어난 각본을 바탕으로 작곡가 박춘석이 음악을 맡아 영화의 완성도를 더 높였다.

 

 영화내용은 6·25전쟁으로 남과 북에 두 남편을 두게 된 한 여인의 고뇌와 두 남편이 한 공간에서 만나 벌이는 숨 막히는 상황을 다뤘다. 김 감독은 카메라초점을 전쟁보다는 인간에 맞춰 분단의 비극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반공이데올로기와 액션을 강조한 다른 전쟁영화와는 격이 달랐다. 6·25전쟁 직후 북한인민군 소좌인 주인공(신영균)은 6·25 때 남한으로 내려온 아내(엄앵란)를 만나기 위해 휴전선을 넘어 남으로 귀순한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공교롭게도 그를 맡은 중대장(최무룡)의 아내가 돼있었다. 게다가 그의 아들까지도 자신을 키워준 사람이 친아버지인줄 알고 잘 자라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세 사람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든다. 한 여자와 두 남자란 기본설정을 뼈대로 하고 있으나 영화는 그 때 우리나라에서 많이 다뤘던 삼각관계의 영화가 아니었다. 세 남녀를 통해 ‘전쟁이 얼마나 사람의 운명을 바꾸고 뒤틀리게 했는가?’ 하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영화는 흥행에 성공, 각종 영화상들을 휩쓸었다. 아시아영화제에서 비극상을 받았고 제27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와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에도 출품, 대호평이었다. 제3회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과 각본상을 받기도 했다. KBS ‘이산가족 찾기’ 반향으로 ‘남과 북’ 새롭게 만들어져 영화가 나오고부터

 

19년 뒤인 1984년 김기덕 감독이 한운사 씨가 손질한 각본으로 <남과 북>을 다시 만들었다. KBS ‘이산가족 찾기’가 엄청난 반향을 몰고 온 게 배경이다. 새로 만든 <남과 북>은 110분짜리로 원미경이 주연을 맡았다. 윤양하, 김만, 장정국, 유영국, 박암 등이 열연했다.

 

 드라마장르로 1984년 10월 26일 첫 개봉됐다. 반면 영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없지 않다. 1952년 소강상태에 접어든 초겨울 최전선을 배경으로 <남과 북>은 진행된다. 북한군 장일구 소좌가 아내 고은아와 아들을 찾아 월남한다. 그가 투항한 5693부대의 이해로 대위가 고은아의 극중 남편이다. 1965년 작 <남과 북>엔 술과 낭만, 사랑이 질펀하다. 5693부대 정보참모는 양주를 병째로 마시고, 수통에도 술을 채워 다니는 인물이다. “자유와 사랑을 위해 총질 한다”고 말하는 그는 전쟁의 낭만적 성격을 부각한다. “사랑을 위해 건배!”를 외치는 정보참모에게서 전쟁의 긴장과 동족살해의 참상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상과 자신의 비극이 모두 38선에 있다”고 말하면서 어린 아들 지원에게 주먹으로 38선을 없애라고 말하는 장일구도 역사인식 부재를 드러낸다. 전쟁이 가져오는 동족상잔의 비극보다 개인적 불행과 비극성을 강조하는 장일구의 38선에 대한 시선은 감상주의에 다름 아니다. 이와 달리 1984년 작 <남과 북>은 훨씬 정교한 짜임새를 갖고 있다. 장일구의 개인사를 자세하게 드러내고 고은아-장일구, 고은아-이해로 관계도 꼼꼼하게 손봤다. 그러나 한운사는 6·25전쟁 때 만주폭격을 주장한 맥아더장군이 해임된 것을 안타까워하는 정보참모를 긍정적인 인물로 그려내 훨씬 강화된 냉전이데올로기를 보여준다. 미국이 만주를 폭격하고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면 남북통일이 됐을 것이란 판단에 깔려 있는 승리지상주의가 두드러진다.

 

한편 노랫말을 쓴 한 선생은 충북 괴산군 청안면 출신으로 ‘빨간 마후라’ ‘현해탄은 알고 있다’ 등 라디오방송 시나리오작가로 유명하다. 서울대 불문과를 중퇴하고 아르바이트 삼아 방송국에서 일한 인연으로 작가생활을 시작했다. 1948년 봄 입사한 지 사흘 만에 사표를 내려했으나 그 때 편성과장 송영호 씨의 만류로 주저앉아 방송작가가 됐다. 입사초기엔 매주 정기적으로 나가는 <어찌하오리까?>, <우리 살림> 등 인생 상담 프로그램을 집필, 청취자들 호응을 받았다. 6·25전쟁 중엔 방송국을 쉬고 다른 사업에 일하다 환도 후 <한국일보> 문화부장을 지냈다.

 

왕선생님이 쓴글--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