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북한 인권...이대로 둘 것인가 탈북자 여성의 눈물

LEE MIN YOUNG 2009. 12. 4. 10:20


 

살아있다는 것이 지옥같고, 괴로웠던 시간이었다. 숨을 쉬는 것도 사치였던, 그래서 차라리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절망의 나날...그 시간들을 견디고 언론 앞에 선 탈북자들은 연신 눈물을 흘렸다. 신분 노출을 막기 위해 깊이 눌러쓴 모자 아래로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고, 코 끝은 빨개졌다. 이들은 반인도범죄조사위원회(ACIC)는 3일 개최한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북한 반인도범죄 조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인권유린 참상을 증언하기 위해 언론 앞에 섰다. 정치범 수용소와 그 안에서 당했던 고문 등을 상기할 땐 고통과 두려움이 생각하는지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고, 목이 메이는지 쇳소리가 섞였다. 반인도범죄조사위원회는 이날 고문, 납치, 정치범수용소, 공개처형 등 북한 정권이 자국민에 행하는 폭압적인 인권탄압을 당했던 150명의 탄원서를 발표하고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북한 실상에 대한 조사를 촉구했다. 이들은 "수감 중 체계적인 고문과 구타를 당한 심적 육체적 상처는 아직도 남아있다"며 "수감자들 중 많은 이들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다른 수감자들을 구타하도록 강제되었을 뿐 아니라, 정치적 불순분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의 씨를 말리고 맥을 끊어놓으려 북한정부는 지속적으로 (수용소에 감금된 사람들을) 탄압했다"고 호소했다. 탈북자들은 "강제 실종되거나 법적으로 정당한 거주지였던 곳에서 추방당했고, 법적 절차 없이 친구와 가족들 모르게 감옥에 구금된 적이 있다"며 "자의적인 이유로 수감되고, 동료수감자들이 노동할당량을 채우지 못해 구타당하고, 수용시설의 규칙을 위반해 법적 절차도 없이 사형에 처해지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특히 이들은 "여성 수용자들은 강제송환 후에 구류시설에 수감되어 성적 수치와 폭행을 겪어야 했다"면서 "일부는 외국에 있는 동안 인신매매를 당해 임신한 상태에서 강제 북송되자, 임신한 아이의 아버지가 북한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강제 낙태를 당해야 했다"고 폭로했다. 탈북자들은 "우리는 북한 당국에 의한 인권침해 희생자 및 생존자들"이라며 "이 극단적이고 체계적이며 광범위한 인권침해가 로마법 제7조에 정의된 반인도범죄인지 확인하기 위한 예비심사를 시행해 달라. 조사에 직접 증거를 제시하고 탈북자가 체험담을 증언할 용의도 있다"고 요구했다. 증언에 나선 탈북자들은 애써 담담한 듯 했으나, 증언이 진행될수록 서러움과 고통, 슬픔 등에 복받치는 듯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탈북자 나모(46) 씨는 "지난 2005년 7월 탈북하다 적발돼 강제북송을 당했다"며 "당시 보위부 구류장에서 철장에 손을 묶어 공중에 매달리는 고문을 당했다. 20여 분만 지나도 가슴으로 피가 몰려 볼록하게 튀어나왔다. 모습이 비둘기 같다고 해서 '비둘기 고문'이라고도 불린다"고 말했다. 그는 "구류장 규칙을 어길 때마다 뒷짐지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500번씩 시켰다"며 "이후 사회안전부로 옮겨가서 조사를 받으면서 끊임없이 '한국 사람을 만났나', '기독교를 접했나'고 물어봤고 끝까지 부인한 끝에 6개월형을 살고 나올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모(42ㆍ여)씨는 가혹한 고문과 폭행 등에 시달리다 아이마저 눈 앞에서 잃어야 했다. 지난 2005년 8월 3일, 임신 7개월 상태에서 탈북하다 걸려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잔혹한 폭력과 살인이었다. 이씨는 "출산일까지 계속 폭행을 당했고 어렵게 아이를 출산했지만 북한 군인이 강제로 숨을 막아 2시간 만에 죽었다"며 "지난 11월 29일이 세상을 떠난 아들의 4번째 생일이었다. 살아 있다면 올해 4살 생일잔치를 해줬을 텐데…"라고 울음을 터트렸다. 김모(33ㆍ여) 씨에게도 북송 이후의 시간은 지옥이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처절하게 버텨야 했었다. 그는 "중국으로 탈출해 한국남성과 만나 아들을 낳고 살다 지난 2003년 4월 북한으로 송환됐다"며 "당시 2살 된 아들과 함께 왔는데 보위원들이 '한국 종자를 낳았다'며 벌을 세웠다"고 말했다. 김씨는 "구류장에서 한 끼 식사로 죽을 줬는데 난 먹지 않고 아들이 울 때 조금씩 입에 넣어줬다. 오로지 아들을 살려야겠다는 각오로 버텼다"면서 "구류장 위생상태가 나빠 아기가 대장염에 걸려 밤마다 열이 날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안타까웠던 당시 심경을 털어놓았다. 또다른 탈북자 김모(30)씨는 중국에서 러시아 국경을 넘다 붙잡힌 후 북한에 돌아갔다 보위부에 붙잡힌 케이스다. "유엔에서 나온 사람들과 면담도 하고 사진도 찍어 '살았구나' 싶었지만, 며칠 뒤 중국 변방 조사과에서 사람들이 나왔고, 러시아 군인들이 우리를 중국으로 넘겼다"며 "결국 공안국으로 호송될 때 차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는 다 도망쳤지만, 나만 빼고 다 붙잡혔다"고 말했다. 그는 "도망친 지 3일이 지나도 밀산 변방대에서 나를 잡지 못하자 공안 30여명이 연길에서 나를 잡기 위한 수색이 벌어졌다. 더 이상 중국에 있기가 힘들다고 생각돼 북한으로 돌아갔지만, 고향집 보러 갔다가 숨어있는 안전원들에게 잡혀 무산군 보위부로 옮겨졌다"면서 "취조과정에서 팔다리 모두 사방으로 묶여 공중에 매달린 채로 맞기도 했고, 구류장에 있을 때도 가만두지 않고 경비원들이 때렸다. 결국 19살이던 2000년 요덕관리소로 보내졌다"고 말했다. 반인도범죄조사위원회는 탈북자들의 증언이 담긴 탄원서를 ICC와 유엔 사무총장, 유엔인권고등판무관에게 발송하는 한편, 오는 9일 탈북자 대표단이 ICC로 이동, 체험담을 증언할 예정이다. 범죄조사위 대표단도 오는 10일 ICC를 방문해 그동안 수집한 증거자료를 ICC에 제출키로 했다. 반인도범죄조사위원회 측은 "지난 11월 북한 인권 문제 관련, ICC로부터 조사를 정식으로 요구하면 조사 착수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말을 들었다"며 "ICC 조사가 이뤄지면 곧바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ICC에 공식 제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반인도범죄조사위원회는 이와 함께 ICC 예비 조사 요구가 기각될 경우에 대비, 유엔 차원의 '북한 반인도범죄 조사위원회' 구성을 위한 캠페인을 전개할 예정이다. 한편, 반인도범죄조사위원회는 지난 7월 24일 창립된 단체로, 북한민주화위원회, 피랍탈북인권연대, 북한인권정보센터, 자유북한방송, 탈북인단체총연합 등 북한 인권 및 탈북자 관련 단체와 6·25납북인사가족협의회, 국군포로 가족회, 귀환납북자가족협의회 등 50개 단체가 참여했다. '김정일을 국제형사재판소로,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를'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북한에서 자행되고 있는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감시, 조사하고 이를 국제사회에 고발함으로써 북한의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조직됐다. 특히 분야별로 활동하던 관련 시민단체들을 하나로 모아, 북한 안팎의 '반김정일' 세력을 키우는 한편, 올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 등 구체적인 활동을 펼치는 데 주력하고 있다. - Copyrights ⓒ (주)이비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