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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문태준等 미당 시문학상 후보의 대표작을 통한 시인들의 시향보기

LEE MIN YOUNG 2005. 10. 2. 07:39

禪의 함성과 묵언의 繪畵로 말을 하려는 시인의 침묵/이민영

(고재종.고형렬.김명인.김신용.나희덕.문인수.문태준.송재학.이재무.최하림의 詩)

아래 글은 당선작 3000만원을 주는 제 5회 미당시문학상 후보작에 대한 작품 선정 절차와
후보작으로 올라온 작품의 면면이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오늘 한국 문단의 입장이랄 수 있는 시와 작품에 대한
시적인 감각을 지닌 독자와 평론가, 문인들이 보는 우수한 詩와 우수한 단편에 대한 작품성과
선호의 취향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자료는 습작을 하는 詩를 사랑하는 여러분 들에게
매우 유익한 모음이라 할 것이다.
후보작에 선정된 분들은 이미 미당문학상과 황순원상에 선정 되지 아니한 분과
그리고 禪적인 색감과 이미지의 정태학적인 시를 곧잘 쓰는 분들을 대상으로하고
문학상을 주관한 문예중앙과의 등 고려 친소의 내에서 후보를 대상으로 한 것 같아서
이 후보 작가들이 문단 문학의 모두를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으나
우리는 이들 후보작의 詩的話者의 作風과 시적화자의 詩 香을 보면서
오늘 문단의 주 관심사조의 추향
(詩가 익어가기 위해서는 가을은 아직 멀었는가 봄이 있어야 하는 까닭이 지금처럼 고뇌하는가을의 우수와 청량을 닮아가는 명암과 회암의 빛 이것인가, 익는 만큼 그늘과 햇빛의 마당까지 차고 오르려는 문학의 향수, 그 詩가 되어진 江에 숙고만큼 오는 향기를 맡을 때, 우리는 秋香, 가을 향이라고 하지...)과 詩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적 언어의 구사,호기심, 연의 정도,
文學思潮를 보는 詩眼의 깊이,개개 시인의 언어 구조, 수사에 사용되는 어법의 진행등등
작문에 대한 문학적 성격과 진술의 방향과
대중성을 기조로 대중에게 접근 하려는 작자 개인의 의도와
평가자들의 평가 방향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이미 간행된 국내 문예지에 올라 온 詩 2000편 ,
소설 400편을 대상으로 하였다는데
문예지란 일류 시전문 시/문학지를 말 함은 물론이다.
(일류 문학지는 전번 이 게시판에 공고한 적이 있음)
후보로 선정된 시인은
고재종.고형렬.김명인.김신용.나희덕.문인수.문태준.송재학.이재무.최하림 시인이다.
전에도 이야기한 바, 이 분 들의 언어 구사나 진술의 특징은
禪과 묵언의 繪畵로 말을 하려는
시인의 침묵이라는데 있다.
즉 우당김지향 시인님, 신경림, 김수영, 이성복 시인님등 현대시를 개척한 분들의 주조인
시언과 사유의 결합이라는 자의식과 시의 회화를 결합시킨 연술의 특징이라는데 있다.
이 분들의 심상을 파고 드는 내면은
시적 화자의 내면에서 진행시켜 온 제재의 상상력을
정경=그림에 두었고, 제재에 있어 사용 되어진 시구와 연술마다 시적 화자의 사유(독어.홀로 부르는 이름의 말.살아 부르는 말)를
부여 했다는 점이고, 사유와 철학이라는 시인의 혼재와 외피를 씌워가는 수사라는 문장론을
결합시킨, 전부, 생각하게 하는 詩들이라는 것이다 .
선정 과정에서 주목받은 시인으로 문태준과 김신용 시인인데,
두 사람 다, 시풍이, 작년부터 문단에서 주목 받은
그 나름의 독특한 기법에 있었고, 이 또한 현란하도록(아주 무겁고 가벼운)
찰학적인 시안으로 다가가서 나름의 문장학적인 연술의 기법를 개척한 점이다.
그리고 일관된 흐름으로 독자가 다가가 독자 몫의 상상의 여지를 지닌 점이다.
즉 외양이나 내면이나 일단은
대체적으로 여린의 음성처럼 부드럽다라는 것이다
개척은 무엇인가, 새로움의 창조가 아니다,
이 또한 수사의(문학) 대중성을 떠나지 아니한 대중적인 친밀도로 다가간 시인의 안목이다
(시문학의 대중성이란, 前에도 언급한 바 통속적이고 들뜬 外面의 대중성, 영합이 아닌
내면의 대중성(선구적인 영합)을 말한다)

문태준 시의 이해는 곧잘 박주택 시의 이해와 일치된 면면과 같다.
-이민영 李旻影 記[이민영 명시탐방 2005.09.25]



제 5회 미당 문학상-수상작 하나 누가 울고간다



누가 울고간다 /문 태 준

밤새 잘그랑거리다
눈이 그쳤다

나는 외따롭고 생각은 머츰하다

넝쿨에
작은새
가슴이 붉은새
와서 운다
와서 울고 간다

이름도 못불러 본 사이
울고
갈 것은 무엇인가

울음은
빛처럼

문풍지로 들어온
겨울빛처럼
여리고 여려

누가
내 귀에서
그 소릴 꺼내펴나


저렇게
울고
떠난 사람이 있었다

가슴속으로
붉게
번지고 스며
이제는
누구도 끄집어낼 수 없는.
.............................................

[아래출처 전향님제공/미당문학상 최종후보작지상중계-손민호기자글과 기타자료]

제 5회 미당시문학상 심사평

젊은 시인 문태준의 출현은, 시가 시인에 의해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는 말의 향연임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주어 즐거웠다. 그러나 심사 과정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수상작은 결국 일종의 상대평가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독자적인 절대의 세계로 자신의 개성을 확고하게 구축해온 적잖은 시인들이 양보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진급의 최하림.김명인 그리고 중견급의 문인수.김신용 등의 작품도 결코 만만찮은 경지에 이르고 있었다. 모든 욕심을 비워 이윽고 그 몸 자체가 가볍게 자연과 하나의 지경을 이룬 듯한 최하림의 시는 인생의 서늘한 시간들을 조용히 보여 준다. 그러나 풍경으로서의 자연을 뛰어넘지 않음으로써, 혹은 그 속으로 깊이 침잠하지 않음으로써 시인만의 시적 자아에 비교적 무심한, 표표한 시편들은 어딘가 달관의 수상(隨想)을 즐기는 듯 한 인상이다. 시인에대한 기대가 큰 탓일까, 아쉬움이 남았다.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진정성이 돋보이는 시 세계를 경구적 통찰을 통해 꾸준히 선보인 김명인에 대한 안타까움도 절실하였다. 시적 대상들과 시의 정신사이에 통일감이 더 분명하였으면 이해의 감동이 높았을 것이다.
문인수의 시도 갈수록 진경에 이르고 있다는 점에 모두 같은 의견이었다. 특히 사물 하나하나에 쏟는 애정과 그 묘사의 깊이는 탁월하다. 한편 노동자 시인 김신용의 등장은 작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진다. 그가 충격일 수 있는 것은 한때 지게를 졌고, 지금도 비슷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그의 현실에 있지 않다. 놀라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가 상당한 상상력과 상징의 교환을 자유롭게 행하고 있는 우수한 시인이라는 사실의 재발견이다. 좀 더 집중이 이루어진다면, 우리 시는 그로 말미암아 매우 넓은 진폭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수상시인 문태준에 대해서는 오직 상찬과 격려만이 필요한 단계이다. 이 젊은 시인의 앞날이 어떤 변모를 보일런지 아무도 알 수 없으나 '누가 울고 간다''가재미' 연작 등이 보여주고 있는 말의 탱탱한, 유장한, 서늘한, 그러면서도 유머러스한 행진은, 그 맞은 편에 놓여 있는 답답한 일상에 홀연히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특히 동사를 크게 활용하는, 흐르는 상상력이 자기갱신의 힘을 발휘한다. 문태준이라는 서정 시인의 탄생은 우리 시를 위무의 성소(聖所)로 이끄는 언어의 축복이다.




-심사위원=정현종.홍기삼.김주연.김현자.김기택(대표집필:김주연)


[바람이 센 듯해서-최하림]

바람이 조금 센 듯해서 커튼을 치려고
유리창 앞으로 가자 나물들이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희끄무레한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어디서 본 듯
했습니다 그래 말했지요
나는 아침마다 설거지하고
아내를 하나로마트에 데려다 주고
중미산을 넘어 설악동을 달린다고
요즘에는 거의 매일 설거지하고
마트에 가고 설악동으로 달리는데
공기가 심하게 부풀면서 굵은 비가
쏟아지는 날은 조심조심 브레이크를 밟고
차를 길가에 세운다고 삶이
위태롭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나무들이 흔들리고 흙탕물이 쏟아지고
차를 세우려면 왠지 슬퍼진다고
시 또한 슬퍼진다고


(2004년 문학과 사회 가을호 발표)

화려한 수사 다 털어내고 편안하고 따사로운 눈길
여기 밤새 고쳐 쓴 연애편지 같기도 하고 남몰래 눌러 쓴 일기같은 시 한 편 있다.
센 바람 불어오기에 커튼이나 치려고 유리창으로 다가서자 얼굴 하나가 언뜻 비친 것 같다. 누굴까. 잊고 지냈던 첫 사랑일까. 아니면 그 옛날 목포에서 막걸리 함께 들이켰던 옛 친구일까. 아는 것 참 많았던 친구는 진작에 세상을 떴고, 만능 재주꾼이던 친구는 상한 몸 추스르며 여태 시를 쓴다. 첫 사랑이여, 아니 벗이여. 잘 지내시는가. 나는 아침마다 설거지하고 아내를 할인점 데려다 주며 잘 살고 있단다. 하루하루 같은 것 같지만 늘 같지만은 않단다. 다만 문득 슬퍼질 때만 있단다.

최하림 시인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건 1991년이다. 다행히도 지금은 많이 나았다. 경기도 양평에서 4년째, 아침마다 설거지하고 아내와 할인점 다녀오며 살고 있다. 뜸하긴 하지만 시도 발표한다.

옛날, 문우들과 '문학과 지성'을 일으키던 시절의 그는 난해했다. 프랑스 상징주의에 빠져 살던 시절의 그는 한국의 모더니즘을 대표했다. 모든 건 91년 이후 달라졌다. 오늘 그는 편안하고 따사로운 시를 생산한다. 화려한 수사도 없고 말을 부러 비틀지도 않는다.

그러나 쉬운 것은 가장 어려운 법이다. 초월한 뒤에야 여유로울 수 있다. '감정을 싣지 않고 세계와 자아 사이의 거리를 적당히 유지하는 시 세계를 추구한다. 삶을 바라보는 눈길이 깊다(김진수)'는 예심 평가도 그의 남다른 시 세계를 인정한 발언이다.

시인은 유리창에 나타난 얼굴이 자신이었다고 말했다. 사실 환영이 아닌 이상 창에는 자신 말고는 비칠 얼굴이 없다. 시인은 자신에게 말을 건 것이다. 그건 다짐이었다.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말자는 각오였다. "첫 사랑이나 벗이었어도 그리 말했을 것"이라고 시인은 말했다. 시인은 진작에 세상사 온갖 번민과 욕심을 내려놓은 뒤였다.

"아프고 난 뒤에 모든 욕심을 버렸습니다. 가장 먼저 시에 대한 욕심을 버렸습니다."

사족 하나. 앞서 말한 옛 친구는 순서대로 평론가 고(故) 김현과 시인 김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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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의 돌-이재무


동글동글한 돌 하나 꺼내 들여다본다
물속에서는 단색이더니 햇빛에 비추어보니
여러 빛 온몸에 두르고 있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동글납작한 것이 두루두루 원만한 인상이다
젊은 날 나는 이웃의 선의,
반짝이는 것들을 믿지 않았으며
모난 상(相)에 정이 더 가서 애착을 부리곤 했다
처음부터 둥근 상(像)이 어디 흔턴가
각진 성정 다스려오는 동안
그가 울었을 어둠 속 눈물 헤아려본다
돌 안에는 우리가 모르는 물의 깊이가 새겨져 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물이 그를 다녀갔을 것인가
단단한 돌은 물이 만든 것이다
돌을 만나 물이 소리를 내고
물을 만나 돌은 제 설움을 크게 울었을 것이다
단호하나 구족한 돌 물속에 도로 내려놓으며
신발 끈 고쳐 맨다

(문예중앙, 2004년 가을호 발표)


마음씨 좋은 옆집 아저씨였다가, 엄마 몰래 맛난 것 챙겨주는 막내 삼촌이었다가, 골목에서 얻어맞고 들어오면 대신 녀석들을 때려주는 큰 형이었다. 이재무 시인은 늘 그런 느낌이다.
그는 삶의 애환과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투박하고 무뚝뚝하게 노래하는 시인이다. 늘 진지한 표정에서 "나는 그렇게 살아와서 그렇게 시를 쓴다"는 푸른 색깔 고집이 또렷이 읽힌다.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해 약삭빠른 계산 따위에는 영 숙맥이고 모양 꾸며 얼굴 내미는 일도 딴 사람 얘기다. 시인과 가장 닮은 시를 생산하는 시인을 꼽으라면 반드시 몇 손가락 안에 들리라. 심사위원도 비슷한 평을 내놨다.

'상당히 진지하고 믿음직스러운 시 세계를 보여준다. 조탁형의 시인은 아니지만 작품 하나하나에 완결성이 있는 시인이다. 추상적인 담론 보다는 사물의 안쪽을 묵묵히 투시한다(이혜원).'

시 '물속의 돌'을 보자. 본래 모진 상이었던 돌이 오랜 세월 어둠 속에서 몰래 울며 둥근 상을 지니게 됐다. 그래서 돌 안에는 우리가 모르는 물의 깊이가 새겨져 있다. 여기서 끝나면 이재무의 시가 아니다. 사람이 부딪히며 살다보면 피치 못하게 상대에게 상처를 남긴다는 이치를 그는 온몸으로 알고 있는 시인이다. '돌을 만나 물이 소리를 내고'. 시인은 말한다. 물도 소리를 내 울었다고. 돌에 상처를 남겼지만, 아니 남기고 말았기에 물은 울고 있다고.

작품 소개를 부탁하자 거센 충청도 억양으로 "몰라서 물어? 그냥 알아서 써~"라고 답한다. 늘 그런 식이다. 시단에 발 디딘 지 스무해가 넘었지만, 그 세월 동안 문단의 온갖 궂은 일을 맡아왔지만 그는 좀체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다. 언젠가 만취한 상태에서 "내가 소월시문학상 우수상만 네 번 받은 시인이야"고 중얼거린 일을 기억한다. 누구보다도 생의 상처를 보듬어온 시인이 정작 자신의 상처에는 애써 눈을 감는다. 이재무는 그런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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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기와 -송재학

피렌체의 지붕은 붉은 기와, 죄다 붉은색이니까 색감이 흐려져서 흰색의 얼룩이 생긴다 붉은색은 홍채의 북채색이다 석조 건물에 박혀 차츰 희미해지는, 햇빛이 쏘아올린 화살촉 일부는 아직 파르르 떨고 있다 그런 건물은 3층까지 어둡다 햇빛 때문에 길이 더 좁장해진 거와 다르지 않다 가령 바닥도 돌인 골목길을 몇 시간쯤 걸었다면 햇빛을 짓이긴 발바닥은 부르트는데, 그건 싸움의 흔적이다 햇빛과 싸우지 않으려면 햇빛처럼 강렬해야 한다면서도, 붉은 기와들은 종일 하품한다 게을러지기 위해 눈부신 햇빛 속에 가만히 있어본다 손톱에서부터 차츰 녹아가는 육체가 있고, 그건 내 마음이나 또 무언가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니까 붉은 기와란 건 햇빛에 바짝 구워진 물상이다

(작가세계 2004년 겨울호 발표)

덧칠 두꺼운 유화처럼 중층적인 감각의 미학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의 '파라솔을 든 여인'이란 작품이 있다. 햇볕 따가운 한낮 흰 드레스 입은 여인이 파라솔을 들고 서있다. 드레스 앞자락에 드리운 그늘로 미뤄 해는 여인의 뒤통수 위에 떠있다. 드레스 자락을 들여다본다. 주름으로 그늘진 곳은 다소 어둡고 햇빛에 노출된 곳은 환하다. 그러나 파란 하늘과 비교하면 똑같은 흰색일 뿐이다.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덧칠을 했냐로 털끝만한 차이가 생길 뿐이다.

프랑스 화가 얘기로 기사를 시작한 건 송재학이라는 시인의 생소한 미학을 말하기 위해서다. 숱한 평론가들은 말한다. 그의 시는 이해하려 들지 말 것. 한 폭의 그림을 보듯 감상할 것. 찬찬히 뜯어보기는 하되 해석하려 들지는 말 것. 혹여 한두 줄이 짐작된다고 안심하지 말 것. 그는 속내를 드러내면서도 속내를 감추는 시인이다.

"나에겐 사물이 이미지나 풍경으로 다가온다. 처음부터 정해진 의미는 없는 셈이다. 덧칠 두꺼운 유화로 말하자면 맨처음 칠한 색깔은 맨마지막 물감에 덮여 있다. 그러나 어떻게든 투영돼 있다. "

시인의 말마따나 그의 시는 중층적이다. 심사위원들이 "감각의 미학주의를 추구하면서 견고한 구조를 만들어낸다(박수연)"고 말하는 이유다. 하여 시는 난해하다. 쉽게 쓴 시가 아닌 만큼 쉽게 읽히지도 않는다. 작품 수가 많지 않은 것도, 깊고 오랜 사유를 거쳐야 시가 나오기 때문이다. '덧칠'이란 표현은 그를 이해하는 실마리다.

시 '붉은 기와'는 시인이 지난해 이탈리아 피렌체를 여행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도시의 건물 지붕이 온통 붉은색이었다. 햇빛이 붉은 지붕을 비추면서 도시 이미지는 한결 강렬해졌고. 그 순간을 포착했다. 인상주의 기법이지만 시에선 피렌체 사람이 살아온 모양이 설핏 보인다. '붉은 기와'를 얹기 위해 기와를 굽고 물감을 칠한 세월, 거기에 기와가 햇빛에 바짝 구워지는 세월까지 시는 말하고 있다.

시인은 "경주에 있었다면 '검은 기와'란 시를 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의 속내를 눈치챘다면 당신은 대단한 수준의 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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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묽다-문태준]

빼어난 어법에 묘한 리듬감 세밀한 것을 잡아내 형상화

새가 전선 위에 앉아 있다
한 마리 외롭고 움직임이 없다
어두워지고 있다 샘물이
들판에서 하늘로 검은 샘물이
흘러 들어가고 있다
논에 못물이 들어가듯 흘러 들어가
차고 어두운 물이
미지근하고 환한 물을 밀어내고 있다
물이 물을
섞이면서 아주 더디게 밀고 있다
더 어두워지고 있다
환하고 어두운 것
차고 미지근한 것
그 경계는 바깥보다 안에 있어
뒤섞이고 허물어지고
밀고 밀렸다는 것은
한참 후에나 알 수 있다 그러나
기다릴 수 없도록 너무
늦지는 않아 벌써
새가 묽다

(현대문학 2005년 2월 발표)

문태준은 최근 가장 주목받는 시인이다. 이제 갓 시집 두 권을 내놓은
1970년산 시인이지만 문단 안팎에서 그에게 거는 기대는 상당하다.
미당문학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예심에서 심사위원 전원의 지지를 받았고
대학에서도 시인.소설가 통틀어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작품 수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지난해 7월부터 올 6월까지 그는 무려 41편의 시를 발표했다.
그의 인기 비결은 뭘까.세밀한 것을 잡아 깊이 끌고 가는 사유의 깊이가 느껴진다.
갈수록 시가 섬세하고 깊어진다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형상화 능력이나 어법이 매우 뛰어나다. 묘한 언어 리듬이 실려 있다.
많은 양이 발표됐지만 반복이 아니라는 점에서 놀랍다(유성호)."
일상에서 만나는 시인은 순수하고 무던하다. 불교방송의 시사프로그램 PD로 일하고 있지만
언론인에게서 느껴지는 날카로움 따위는 없다. 낮고 느린 어조로 속삭이듯 전하는 말투도 그렇고,

표정 변화 심하지 않은 무덤덤한 얼굴도 그렇다. 자기 주장은 늘 뒷전으로 미루고 문단 선배에겐 깍듯하다.
"지난 한해 너무 많은 시를 쏟아냈다는 생각도 들고,
시가 밥 짓는 일도 아닌데 때마다 밥상 차리듯 시를 써왔나 싶네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시가 밥처럼,
밥 먹는 일처럼 늘 가까이서 서성거렸구나, 측은한 식구처럼 그렇게 가까이 있었구나,
그런 생각도 드네요."
너무 모범적인 답안을 내놓기에
"어디 선거 출마했느냐" 눙을 치니 허허허,
특유의 너털웃음을 짓는다. 그렇지 않아도 너무 일찍 조숙해진 것 아니냐는 우려를 듣는 참이다.
그러나 우려는 상찬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삶의 깊이마저 감지되는 성찰이 유독 돋보인다는 뜻이기에 그렇다.
여기에 옮긴 시' 묽다'가 좋은 예다.
해 질 녘 전선 위에 새 한 마리 앉아 있다.
사위가 어둑신해지면서, 세상이 어둠에 묻히면서,
새는 흐릿해진다. 새는 여전히 꼼짝하지 않지만 새는 세상과 뒤섞인다.
이 찰나의 광경을 시인은 묽어진다고 표현했다.

어둠이 사물의 경계를 지우자 뜻밖으로 세상은 하나가 되었다.
동안거 마친 노승이 던질 만한 화두를 30대 중반의 시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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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지-문인수]평범한 일상을 제 것으로 무겁지 않고 편안한 느낌


독거노인 저 할머니 동사무소 간다. 잔뜩 꼬부라져 달팽이 같다.
그렇게 고픈 배 접어 감추며
생(生)을 핥는지, 참 애터지게 느리게
골목길 걸어 올라간다. 골목길 꼬불꼬불한 끝에 달랑 쪼그리고 앉은 꼭지야,
걷다가 또 쉬는데
전봇대 아래 그늘에 웬 민들레꽃 한 송이
노랗다. 바닥에, 기억의 끝이

노랗다.

젖배 곯아 노랗다. 이 년의 꼭지야 그 언제 하늘 꼭대기도 넘어가랴
주전자 꼭다리처럼 떨어져 저, 어느 한 점 시간처럼 새 날아간다.
(현대문학 2004년 7월 발표)

미당문학상 후보작 ‘꼭지’ 외 26편
시를 보자. 독거노인 할머니가 꼬불꼬불 골목길 올라간다.
달팽이처럼 꼬부라진 꼬부랑 할머니, 힘에 겨워 걷다 쉬다,
참 애터지게 느리게 골목길 올라간다. 동사무소에 가야 한다.
거기 가야 밥 한 술 기대할 수 있다. 고픈 배 접어감추며 동사무소로
고개 오르는 길은 옛날 젖배 곯아 세상 노랗게 보이던 보릿고개 견디던 때와 다르지 않다.

시에서 '꼭지'는 할머니 이름이다. 아직도 우리네 할머니 중엔 '꼭지'란 이름이 흔하다. 딸을 내리 낳은 집안일수록 흔하다. 꼭지 따듯 그렇게 '딸년'을 끊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요즘 잣대로 너무 뭐라고는 하지 말자. 옛날 농경사회에서 자식은 대를 잇는 존재이기도 했지만 먹거리 생산해야 할 노동력의 의미가 더 절실했으니까.

올 환갑된 시인 문인수의 시다. 속내를 풀어냈을 때 시는 잔잔하고 아련하다. 하지만 소리내 읽으면 탱탱하고 생생한 맛이 살아난다. 시의 안쪽은 곰삭았어도 바깥은 젊다. 그건 시인이 '젊기'때문이다. 시인은 눙을 곧잘 치는데, 그 눙이라는 게 코미디보다는 개그에 가깝다. 질질 끌어 질척대지 않고 물방울처럼 톡톡 튄다. 시인과 대화하다 싱싱한 감각에 놀랐던 적 여러 번이다.

예심 위원들은 문 시인의 이러한 점을 높이 샀다. '평범한 일상에서 너무 깊은 무게를 주지도 않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 읽을 때 편안한 느낌이 들게 하는 시법을 터득한 시인이다(박수연).'

시인은 등단이 늦다. 마흔 턱을 넘긴 뒤에야 문단에 발을 들였다. 사연을 들어보니 이거 원, '소설 한 권'이다.

"어릴 때부터 문학이 전부였다. 그러나 군 제대 뒤 남에게 내 시를 보이는 게 부담스러웠다. 그때 나에게 시는 너무 아득하고 비현실적인 세계였다. 그 뒤로도 시를 썼지만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때 난 '골방문학'을 했다. 골방에서 혼자 쓰고 혼자 읽는 문학. 마흔을 넘기고서야 아무런 지향도 없고, 영혼을 소진할 만한 가치도 없는 삶에 회의가 들었다. 그때 비로소 용기를 얻고 세상에 나왔다."

오래 묵은 장(醬)일수록 달짝지근하고, 오래 삭힌 젓갈일수록 고소한 법이다. 시인 문인수를 읽고난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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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온에서 - 나희덕 ]

와온(臥溫)에서



산이 가랑이 사이로 해를 밀어넣을 때,
어두워진 바다가 잦아들면서
지는 해를 품을 때,
종일 달구어진 검은 뻘흙이
해를 깊이 안아 허방처럼 빛나는 순간을 가질 때,

해는 하나이면서 셋, 셋이면서 하나
(중략)


저녁마다 일몰을 보고 살아온
와온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떨기꽃을 꺾어 바치지 않아도
세 개의 해가 곧 사라진다는 것을 알기에
찬란한 해도 하루에 한 번은
짠물과 뻘흙에 몸을 담근다는 것을 알기에

(중략)

와온 사람들아,
저 해를 오늘은 내가 훔쳐간다
(부분, 문학사상 2005년 5월 발표)

미당문학상 후보작 '와온에서' 외 6편
일렁이는 일몰 풍경 더욱 치열해진 시어
나희덕 시인은 연배에 비해 수상 경력이 화려하다. 미당문학상을 제외하고 유력한 상은 거의 다 받았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올해도 상을 두 개나 받았다. 시집 5권에 6번 수상은 흔치 않은 이력이다.
그러나 시인은 최근 시를 쓰지 않았다. 아니 "못 썼다"고 했다. 마지막 시집이 나온 게 지난해 이맘 때 쯤. 지난해 7월부터 올 6월까지 발표한 시는 다 합쳐야 7편이다. 그것도 올 3월 이후 발표한 것들이다.
"변화에 대한 갈망이 컸다. 하지만 구체적인 출구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최근에야 시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시인은 지금 강원도 원주 토지문화관에 있다. 방학을 맞아 머물고 있는 것이다. 다음 주면 광주로 돌아갈 생각이다(현재 조선대 국문과 교수다). 원주에서 방학을 보내는 동안 그는 "시만 썼다"고 말했다.
변화의 흔적은, 그 꿈틀거림은 후보작에서도 감지됐다. '혼란스러운 내면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언어에 대한 관심도 보이기 시작한다. 더욱 치열해졌다고 할 수 있다(유성호).'
시인의 생각도 심사위원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와온에서'도 그런 변화가 읽혀지면 좋겠다"며 "하늘의 해와 바닷물 속의 해와 뻘흙 속의 해가 셋이면서 하나인 것처럼, 원융의 정신을 향해 좀 더 열려지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시 '와온에서'는 갈대밭 유명한 전남 순천 와온마을의 일몰 풍경을 그린 시다.

"시적 기율이나 의미의 선명도에 얽매이지 않고 좀 더 자유롭고 싶다. 시적 자아의 의지를 앞세우기 보다는 무의식적인 흐름에 몸을 실어보려고 한다."

시인 나희덕은 단정하면서 따뜻했다. 어렵지 않으면서 삶의 비의를 포근히 감싸안는 시를 생산해왔다. 독자의 뜨거운 호응과 평단의 높은 평을 한꺼번에 받았던 이유다. 그러나 앞으로는 조금 어려워질 것 같다. 시인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또한 통과해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각오가 다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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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통-김신용]날품 팔고 노숙하며 30여년 진한 삶의 체험이 진짜 시로



새가 앉았다 떠난 자리, 가지가 가늘게 흔들리고 있다

나무도 환상통을 앓는 것일까?
몸의 수족들 중 어느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간 듯한, 그 상처에서
끊임없이 통증이 베어 나오는 그 환상통,
살을 꼬집으면 멍이 들 듯 아픈데도, 갑자기 없어져 버린 듯한 날

한때,
지게는, 내 등에 접골된
뼈였다
목질의 단단한 이질감으로, 내 몸의 일부가 된
등뼈.


언젠가
그 지게를 부수어버렸을 때, 다시는 지지 않겠다고 돌로 내리치고 뒤돌아섰을 때
내 등은,
텅 빈 공터처럼 변해 있었다
그 공터에서는 쉬임없이 바람이 불어왔다

(부분, 시작 2004년 겨울호 발표)


김신용. 그는 한국 시단에서 유일한 존재다. 여느 시인 지망생이 학교에서 시를 배울 때 그는 서울 남산도서관에서 쉼없이 책을 대출했고, 여느 시인이 서늘한 서재에서 사색에 빠질 때 그는 뙤약볕 아래서 보도블럭을 까는 틈틈이 종이를 꺼내들었다. 그는 부랑자 생활 30년을 온몸으로 노래해온 시인이다.

'나는 아직 그 누구에게도 경의를 표했거나/
경의를 표할 마음도 없지만/
이 짝눈의 늙은 시인에겐 귀싸대기 한 대쯤/
기꺼이 맡겨도 좋으련.

/…/

양동 지게꾼 출신인 그의 무거운 등짝에 실려/
여기까지 둥둥 떠 온 불안한 세상의 무게 앞에,

/…/

온몸으로, 온몸으로, 시를 밀어온 그의 전 생애 앞에, 겸손히 머리 숙여 처분을 기다려도 좋으련

(김영현,'김신용의 시'부분)

"내 얘기를 김영현이가 시로 썼다"며 자랑스레 시집을 꺼내보이는 환갑된 시인의 얼굴은 해맑았다. 지난 시절, 오로지 한끼 밥을 위해 어떤 일도 서슴지 않던 시절을 말할 때도 시인의 얼굴은 밝았다. 20년 넘게 지게를 짓고 산 탓에 요즘에도 통증에 시달린다는 시 속에서도 시인은 담담했다. 서울역 앞 양동에서 지게지고, 날품팔고, 노숙하며 30년을 살아온 그는 너무도 반듯했다. 너무 해맑고 반듯해 자꾸만 목이 메었다.

누구도 시를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그는 묵묵히 시를 썼다. 몇 편의 시가 최승호 시인에게 건네진 1988년 문단에 첫 발을 디뎠다. 당시 문단에선 일대 사건이었다. 새로운 신인이 등장했다고 법석을 떨었다. 그의 시가 체험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얼마 뒤, 문단은 차라리 경악에 빠졌다.

예심에서 그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굉장히 진하고 강한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시인이다. 체험을 드러내기에 그치기 쉬운 데 미적으로 끌고가는 힘이 굉장하다. '이 시는 진짜'라고 느껴진다(이혜원)." 올해 미당문학상 최종심에서 최고의 화제 인물은 단연 김신용 시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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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자-고재종]

깬 소주병을 긋고 싶은 밤들이었다 겁도 없이
돋는 별들의 벌판을 그는 혼자 걸었다 밤이 지나면
더 이상 살아 있을 것 같지 않은 날들이었다
풀잎 끝마다 맺히는 새벽이슬은 불면이 짜낸 진액
같았다 해도 해도 또다시 안달하는 성기능항진증
환자처럼 대책 없는 생의 과잉은 끝이 없었다
견딜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일 수 없었다 어쩌다 만난
수수모감처럼 그에겐 고개 숙이고 싶은 푸른 하늘이
없었다 아무도 몰래 끌려가서 아무도 몰래
들짐승들이 유린한 꽃의 비명을 들을 수도 없었다

(부분, 문학사상 2004년 10월호 발표)

미당문학상 후보작 '독학자'외 27편
생태시인 놀라운 변신 내면의 절망 파고들어

고재종 시인은 지난해 갑작스레 시 세계가 변했다. '독학자'란 시에서 알 수 있듯, 시적 자아는 고독하고 내면은 황량하다. 자살을 작심한 이의 심정이 떠오를 정도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농촌시, 생태시의 작가였던 그가 느닷없이 참담하고 절망스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까닭은 다소 의외의 곳에 있었다. 이라크 전쟁이었다.
"작년 김선일씨가 죽은 소식은 충격이었다. 인류의 이성과 문명에 깊은 회의가 들었다. '이것밖에 안 되나'라는 생각뿐이었다. 외부의 절망은 자연스레 내 안의 절망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다. 내 안에서 절망과 죽음을 수용해낼 때 내 생태시도 비로소 의미가 있을 것이다."
심사위원도 시인의 변화를 감지하고 주목했다. 하여 "시 세계가 정점에 올랐다는 느낌을 주었다"(유성호)고 평할 만큼 현재 그의 작품성을 높이 샀다. 대신 이런 지적도 있었다.
"자연을 가장 중요한 시적 소재로 삼던 시인이 지난해부터 의미가 충만한 작품을 생산하고 있다. 시적 비약이란 의미에서 한자어나 관용어를 인용하는데 툭툭 걸리는 느낌도 있다."
그러나 시인은 "의도적인 시도였다"며 "평론가가 의중을 못 읽었다"고 답했다.
"예전에 시를 쓸 때는 완성도를 지나치게 따졌다. 하여 너무 매끄럽다는 소리도 들었다. 생태시를 쓸 때는 적절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내면의 죽음을 말하려 한다. 시를 읽으면서 사유를 하게끔 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때로는 툭툭 걸려야 맛이라고 생각했다."
시인은 지금 광주에 산다. 고향인 전남 담양에서 최근 옮겨왔다. 이제 농사는 짓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여기저기에 강의를 나간단다. 수화기 너머 울리는 남도 사투리가 정겹다. 농부의 갈라 터진 손등 같은 시를 생산하던 남도 시인이 절망을 말하는 시절이다. 내몰리듯 절망을 말해야 하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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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형렬-문명에 대한 신랄한 태도,일상을 무게감 있게 표현

[시 - 고형렬-음악을 죽인 거리]

오래된 순간이었다,
음악 상자가 길바닥에 떨어진 것은
치아교정이 부서지고 옷이 찢어졌다 하체가 해체됐다
보청기 모양의 아기, 고무 타이어에 으깨지고
모든 기능은 멈추었다
그녀의 귓구멍만한 레시버, 생의 거짓이 도로에 누웠다
바리케이트 너머 사이렌을 울어도
환한 열 손가락은 하늘을 향해 모두 폈다 마디에 그녀의
힘이 빠져나가는 도심
흩어진 머릿결 속에서 빨간 피가 천천히 흘러나왔고,
한 마리, 피의 줄기 같은 우스꽝스럼
음악이 죽은 거리는 갑자기 어느 생의 아침이 딱 멈춘
텅빈, 비현실 도로
나는 매일 그녀가 죽은 그 자리를 피해 건넌다
마치 펭귄이 남극에서 달로 건너듯
왼쪽 뺨과 오른쪽 귀에 음악이 파닥이는 오전 8시
한 여자가 아스팔트에 작은 코를 박고
쓰러져, 울고 있다.

(불교문예 2005년 봄호 발표)

미당문학상 후보작 '음악을 죽인 거리'외 15편

고형렬 시인은 소위 '창비시선'의 다른 표현이었다. 창작과비평사 시집 편찬에 관여한 1985년부터 20년 동안 200권 넘게 출간했다. 이 세월 동안 창비의 시 세계는 시인 고형렬의 그것이었다. 그 일을 올초 그만뒀다.
"벌써 쉰살이 넘었거든요. 내가 낡아가는 건 아닌가, 자신에 대해 너무 친숙해진 건 아닌가 고민한 끝에 내린 결단입니다. 이제는 자유롭습니다."
창비 경향의 시가 대체로 묵직한 것처럼 그의 작품도 무게감이 있다. 쉬이 읽히는 편도 아니다. 하나 읽을수록 느낌이 다르다. 거대 사상을 말하는 듯 싶지만 시는 의외로 일상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심사위원도 비슷한 평이다. 김진수 위원은 "사물들의 세미한 움직임을 묘사하면서도 자유로움에 대한 욕망과 운명의 표정을 놓치지 않고 있다"며 "서사적 골격을 가지면서도 서정적 집중을 이루어내는 성공적인 시편이 많이 눈에 띈다"고 설명했다.
앞서 인용한 시 '음악을 죽인 거리'로 돌아가자. 처음엔 느낌이 섬뜩하다. 그러나 이내 문명에 대한 신랄한 태도가 읽힌다. 시인의 해설을 옮긴다.
'아침 출근길 도심 횡단보도. 이어폰(레시버)으로 음악을 듣고 있던 여자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여자는 심하게 다쳤고, 그녀의 음악 상자는 박살났다. 아마도 그녀 주위엔 행인이 많을 것이다. 아침 출근길 경악스러운 장면을 그들은 둘러서서 지켜볼 것이다. 순간 모든 것이 정지한 듯 조용할 것이고, 그녀가 듣던 음악도 멈출 것이다. 그때 음악은 스스로 죽은 게 아니다. 살해된 것이다.'
보름 전 시인은 몽골에 있었다.
지난해엔 러시아 사할린에도 갔다왔다. 북태평양 베링해에서 연어가 찾아오는 10월이면 강원도 삼척의 오십천도 찾을 생각이다. 최근 그의 행적은 '동아시아적인 것'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했다. 그러나 동아시아적인 것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삼갔다. "요즘 주목하는 화두"라고만 했다. 시인 고형렬의 변화를 조심스레 점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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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심해물고기]



구름에 걸터앉아 심해 낚시꾼들이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를 끌어올리고 있다
눈높이까지 꼬리를 치렁대면서
흥건하게 퍼덕거림을 쏟아놓는 저 물고기
찢긴 아가미 사이로 피도 조금 내비치고 있다
심해는 어떤 빛조차 스며들지 않는다는데
어떻게 잡혔을까 발광의 몸 둥글게 말아
천 길 캄캄한 무덤 사이로
고요히 헤엄쳐 다녔을 저 물고기
수압을 견딘 무거운 납의(衲衣)를 벗고
한 번도 들어올려보지 못한 듯 천근 공기를 밀치고 있다
심해는 크고 작은 운석의 산실이어서
두터운 고무옷 껴입고
머리에 철뢰를 두른 잠수부들도 다녀올 수 없는 천심(千尋)
물고기 한 마리가 하늘 길이로 끌고 간다
서슬 푸른 비늘 한 잎 꽂아두려고
저 물고기 천애(天涯) 위로 솟구쳐 오르는 것일까

(문예중앙 2004년 겨울호 발표)

일출을 고기 낚기에 비유 허 찌르는 상상력의 바다

김명인 시인은 예심에서 심사위원 전원의 추천을 받았다.
올해로 시력(詩歷) 32년째. 소월.이산.현대문학상 등 시 부문 주요 문학상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심사위원들이 시인의 화려한 이력에 손을 든 건 아닐까. 물론 아니다.

"한 구절 한 구절 빛나는 시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 구절 빼 보라고 하면 누구도 못 빼는 시인이다(김진수)."

"사물을 상식에서 다루지 않는다. 산문적인 불편함이 있지만 시인은 사물의 원형을 응시한다. 미당문학상이라는 시적 상징과 가장 어울리는 시인일 것이다(유성호)."

그의 시엔 유달리 바다가 자주 등장한다. 심사위원 추천작 '심해 물고기'도 시인이 지난해 고향집에 머물 때 수평선 너머 치솟는 해를 보고 시로 옮긴 것이다. 한데 그 비유가 허를 찌른다.

그가 묘사한 일출은 '천길 캄캄한 어둠 속 심해에서 고요히 헤엄치던 물고기를 구름 위에 걸터앉은 낚시꾼이 끌어올리는 순간'이다. 동해 일출을 이처럼 묘사한 시는 일찍이 없었다. 사물을 상식에서 다루지 않는 시인의 미학이 발휘된 대목이다. 그에게 바다란 무엇일까.
"청년이 되기까지 난 바다를 바라보며 살았다. 바다는 지금도 일종의 원형적인 상상력으로 남아있다. 바다는 트인 공간이면서 닫힌 공간이다.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만 벗어날 수 없다. 바닷가엔 물과 뭍이, 소금과 모래가 공존한다. 경계인으로서 갖는 나의 상상력은 온전히 바다에서 연유한다."

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인 시인은 올해 연구년을 받아 수업이 없다. 통화가 된 16일 그는 경남 사천 앞바다 섬에 있었다. "연구는 안 하고 여행만 다니시느냐"고 농삼아 물었더니 "시 가르치는 교수가 사람 사는 모양 열심히 보고 경치 많이 구경하는 게 연구지요"라고 바로 되받아쳤다. 사물을 바라보는 깊이있는 시선은 부지런한 관찰에서 비롯하는 모양이다.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행복한사랑(旻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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