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덧상

기미민족대표 33인-정암이종훈 선고추모/이민영

LEE MIN YOUNG 2006. 3. 1. 12:04

추모 (追慕) 영전에 바치는 글 기미독립선언 민족대표 33人.독립애국지사 정암 이종훈님 추모追慕- 천년千年신라의 열정熱情 내사령公 휘광아래로 대동大東의 갑우가甲又家 화룡봉-광릉 삼익三益의 현절이여 생원공 인자仁慈를 닮은 현칙의 가르침 송악松嶽의 푸른 장송 그 절개 판서공公의 지절節志인데 아서라, 동방東邦의 빛나는 촉등 조선朝鮮 이름 드세일 때 빛나는 이여 오위장군五衛將軍 諱찬종公 家에 누대 천년 봉공奉恭 장휘畏琿에 백야청청으로 지핀 이름 기미 민족 대표 정암 공公 諱종훈 선고이시니 사모관대 옷고름 고치어 필운학당을 同門동문할 때 이 강 윤치소 오세창 권동진은 공公의 朋友붕우였고 말을 달려 南北을 휘돌 때 손병희.한용운.이승훈.서재필은 님 동지였으니 이천만 신민은 황제와 님의 동지 지성의 공경은 皇城황성 향한 맹세- 외길 生입니다 방방邦邦을 울리는 대한 독립 태화관으로부터 치는 오등의 물결 세상 밝히어 선두에 이름 높으니 세세歲世로 이어오는 절개라는 이름 천만리 머나먼 사랑도 고운 님 곁이라 솔솔 불어옵니다 나라도 돌아 서서 포효하고 싸워 온 무혼도 되돌아 님 도우며 뱃길 천리 파고波高 높던 하얼빈의 섧은 피떵이 님의 조선朝鮮이듯 걸음발마다 눈물로 뭉쳐친 용정의 누심漏心은 이역 하늘일진데 옷자락 아래로는 조국의 서러운 혈血의 누淚 눈물로 강토를 채우고 또 채웁니다 탑골에 혼을 깨우는 탑돌이 같은 반복의 회향回鄕 어제를 돌 보는 청춘의 그리움, 이 였으며 누 세월 흐른 동안 님은 대-韓의 동지 세월에 이름으로도 대-韓의 아들이였으며 내 조국 만만세세萬萬歲歲라 이야기합니다 섧게 이어진 세월은 그대의 하루 세월같은 광복의 여정은 선구의 햇불 이름으로도 대한 독립만세인것을 이천만 동포여 이루리라 장백 벌에, 토문에, 송화에, 압록에, 방방邦邦으로 내 달려온 사랑아 발굽 아래 헤진 저 백두산녘 석양의 혜란강, 눈가 이슬에 머문 두만의 江울음으로도 서러운 것을 그리워 산녘에 드리운 빛서린 만주 벌이여 살자던 용정 하늘은 조국산천 경景에 희부연 구름인 것을 항성은 이역 하늘가에서 저물고 햇살은 님 혼魂자리로 누워 가고 아직도 창가는 나라 애원 소리, 위함으로 즐겨먹던 입도 굶겨 가고 자던 집도 누여 보이고 입던 옷도 내드리고 나신裸身으로 마음은 그대를 담고 있었습니다. 스물 하고도 여린 날 구국求國과 척사斥邪와 광정匡正을 외치신 님이여 인내천의 빛은 사뇌라 인민人民과 인본주의人本主義를 외칩니다. 반도 독립은 모두의 소원 백성은 동포의 이름이라 사랑외치신 님이시여 삼천리 강산은 우리들 집이라 외칩니다 삶은 바쳐져서 우러러 보시고 우러러서 남겨진 님이십니다. 세상 오는 날, 날에도 숨죽이며 기도한 곳은 세월이 죽고 세상이 죽고 노래가 죽고 땅이 죽어도 혼으로 살아 생명 주는 사랑 독립만이 길이라 외치신 포효는 피의 노래입니다 오늘 삼월 일일 아침에 공을 따르는 조선의 아들들이 기도합니다 가신지 칠십삼성상 나라 이름으로 기립니다 흘리신 이름은 영명한 대-한국으로 영원히 님의 얼로 남깁니다. 강江물이 넘치고 차는 날에 영원히 귀貴하신 이름이여 대 한국으로 남으십니다 세월이 지피는 날에 가르치신 이름이여 산천의 곳 곳마다 이 땅, 나무로 자랍니다. 이 땅 햇살로 빛납니다. 이 땅 별빛으로 비추입니다. 햇 살되어 가득하신 이 언덕의 나라에서 인자하고 거룩한 님이시여 편히 잠드소서 사천삼백삼십칠년 삼월 일일 기미만세 독립운동 날에 님이 가신지 칠십삼주년에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추도식장에서 후손 이민영 봉정


(Sarabande)George Friederich Handel

추모(追慕)-호국 영령에 삼가 추모의 念을 드립니다 영전에 바치는 글 기미독립선언 민족대표 33人.독립애국지사 이종훈님 추모追慕 천년千年신라의 열정熱情 내사령公 휘광아래로 대동大東의 갑우가甲又家 화룡봉-광릉 삼익三益의 현절이여 생원공 인자仁慈를 닮은 현칙의 가르침 송악松嶽의 푸른 장송 그 절개 판서공公의 지절節志인데 아서라, 동방東邦의 빛나는 촉등 조선朝鮮 이름 드세일 때 빛나는 이여 오위장군五衛將軍 諱찬종公 家에 누대 천년 봉공奉恭 장휘畏琿에 백야청청으로 지핀 이름 기미 민족 대표 정암 공公 諱종훈 선고이시니 사모관대 옷고름 고치어 필운학당을 同門동문할 때 이 강 윤치소 오세창 권동진은 공公의 朋友붕우였고 말을 달려 南北을 휘돌 때 손병희.한용운.이승훈.서재필은 님 동지였으니 이천만 신민은 황제와 님의 동지 지성의 공경은 皇城황성 향한 맹세- 외길 生입니다 방방邦邦을 울리는 대한 독립 태화관으로부터 치는 오등의 물결 세상 밝히어 선두에 이름 높으니 세세歲世로 이어오는 절개라는 이름 천만리 머나먼 사랑도 고운 님 곁이라 솔솔 불어옵니다 나라도 돌아 서서 포효하고 싸워 온 무혼도 되돌아 님 도우며 뱃길 천리 파고波高 높던 하얼빈의 섧은 피떵이 님의 조선朝鮮이듯 걸음발마다 눈물로 뭉쳐친 용정의 누심漏心은 이역 하늘일진데 옷자락 아래로는 조국의 서러운 혈血의 누淚 눈물로 강토를 채우고 또 채웁니다 탑골에 혼을 깨우는 탑돌이 같은 반복의 회향回鄕 어제를 돌 보는 청춘의 그리움 이 였으며 누 세월 흐른 동안 님은 대-韓의 동지 세월에 이름으로도 대-韓의 아들이였으며 내 조국 만만세세萬萬歲歲라 이야기합니다 섧게 이어진 세월은 그대의 하루 세월같은 광복의 여정은 선구의 햇불 이름으로도 대한 독립만세인것을 이천만 동포여 이루리라 장백 벌에, 토문에, 송화에, 압록에, 방방邦邦으로 내 달려온 사랑아 발굽 아래 헤진 저 백두산녘 석양의 혜란강, 눈가 이슬에 머문 두만의 江울음으로도 서러운 것을 그리워 산녘에 드리운 빛서린 만주 벌이여 살자던 용정 하늘은 조국산천 경景에 희부연 구름인 것을 항성은 이역 하늘가에서 저물고 햇살은 님 혼魂자리로 누워 가고 아직도 창가는 나라 애원 소리 위함으로 즐겨먹던 입도 굶겨 가고 자던 집도 누여 보이고 입던 옷도 내드리고 나신裸身으로 마음은 그대를 담고 있었습니다. 스물 하고도 여린 날 구국求國과 척사斥邪와 광정匡正을 외치신 님이여 인내천의 빛은 사뇌라 인민人民과 인본주의人本主義를 외칩니다. 반도 독립은 모두의 소원 백성은 동포의 이름이라 사랑외치신 님이시여 삼천리 강산은 우리들 집이라 외칩니다 삶은 바쳐져서 우러러 보시고 우러러서 남겨진 님이십니다. 세상 오는 날, 날에도 숨죽이며 기도한 곳은 세월이 죽고 세상이 죽고 노래가 죽고 땅이 죽어도 혼으로 살아 생명 주는 사랑 독립만이 길이라 외치신 포효는 피의 노래입니다 오늘 삼월 일일 아침에 공을 따르는 조선의 아들들이 기도합니다 가신지 칠십삼성상 나라 이름으로 기립니다 흘리신 이름은 영명한 대-한국으로 영원히 님의 얼로 남깁니다. 강江물이 넘치고 차는 날에 영원히 귀貴하신 이름이여 대 한국으로 남으십니다 세월이 지피는 날에 가르치신 이름이여 산천의 곳 곳마다 이 땅, 나무로 자랍니다. 이 땅 햇살로 빛납니다. 이 땅 별빛으로 비추입니다. 햇 살되어 가득하신 이 언덕의 나라에서 인자하고 거룩한 님이시여 편히 잠드소서 사천삼백삼십칠년 삼월 일일 기미만세 독립운동 날에 님이 가신지 칠십삼주년에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추도식장에서 후 방손 이민영 봉정 애국지사 이종훈님 약기 호 정암(正菴) 1858년 2월 9일.경기도 광주 출생 (아버지 尙載와 어머니 해주鄭사이 2남) 의친왕 이 강.윤치소등과 필운학당 동문 수학 동학교(천도교) 입교.최시형에게서 사사.손병희.손화중과 함께 천도교를 이끌었으며. 민족 계몽운동 및 독립운동 전개 1894년 동학농민운동과 남접군-전봉준의 농민봉기 전쟁시에는 손병희와 함께 북접군대장으로 활약하는등 동학 운동(傳記 손병희와 東學史料에 자세히나오다) 1898 박영효 김옥균 서재필등 개화세력과 권동진,오세창,손병희등과 [갑오][임인 개혁운동 주도하고 일본 망명 1902년 귀국.아들인 이관영의 이완용 암살기도사건및 이완용家 방화사건으로 연루 체포구금 됨,이후 천도교 인사들이 중심이되어 손병희(孫秉熙)·권동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 최린(崔麟) 등 천도교측 중진들과 독립운동의 실천방법으로 독립선언서와 독립청원서· 국권반환요구서 등을 작성하기로 하고, 거족적 운동으로 확대하기 위해 기독교·불교·유림(儒林) 등 각 종교단체를 망라하는 동시에 저명인사들을 민족대표로 내세워야 한다는 데 합의하였다. 한때는 김윤식(金允植)·박영효(朴泳孝) 등의 저명인사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하여 이 운동을 포기하려고 하였으나, 고종의 붕어(崩御) 소식으로 배일감정이 절정에 오르자 이들은 다시 종교 단체와 교섭, 이승훈(李昇薰) 등 기독교측과 한용운(韓龍雪) 등 불교측과의 제휴도 이루어졌다. 초기 독립 선언서는 이승훈등의 소위 독립건의서로 주장이 약하고,의지가 박약함에 이의 하여,손병희.최린등 강력한 자주의지.비폭력.평화.민족자결 자강원칙을 담는 내용으로 전면 수정하였다. 최린은 독립선언서의 작성자로 최남선(崔南善)을 추천하였는데, 지금 전하는 독립선언서 끝에 있는 공약3장(公約三章)은 뒤에 한용운이 추가한 것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하여 작성된 독립선언서는 천도교측 15명, 기독교측 16명, 불교측 2명 등 33명이 민족대표로서 2.25 비밀 회합시에 서명하였다. 이 선언서는 2월 28일부터 전국에 전달, 배포되었으며 거족적 3·1운동의 전개에 결정적 구실을 하였다. 1762자로 된 이 독립선언서는 인도주의에 입각한 비폭력적·평화적 방법으로 민족자결에 의한 자주독립의 전개방법을 제시하였다. 1919.3 체포 되어 2년형을 선고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고,이어 이종일 등과 함께천도교 단독으로

제2의 3·1운동을 일으킬 것을 계획했으나 발각되어 실패했다. 1922년 7월에는 천도교도들이 중심이 되어 지하독립운동단체. 고려 혁명 위원회(高麗革命委員會)창설 고문과 임시의장으로 지하 항일 운동하다가 조직원 이끌고 만주 용정으로 망명 무장독립 운동을 돕고, 조선 청년의 민족 교육에 헌신하였다. 1931년 미상 간도 용정에서 전투 후유증으로 사망. 형제로는 李錫周와 李錫河가 있으며 동학교로 들어가 독립협회.문화개혁등. 양평 일대에서 동학간부로서 항일 운동및 갑오 임인년 개혁운동에 참여하고 3.1 만세운동에 참가하고 타계함. 婦人은 파평 尹致道(파평 전대통령 윤보선의 아버지 윤치소의 형)의 여식이다. 손병희선생과 함께 1962년 건국훈장 추서 아들 이관영(일명 東洙) 1883년 서울 원서동 출생 19세에 일본에 유학,같은 유학생인 권동진 오세창등과 교유하였으며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귀국하여 을사敵臣매국노 이완용을 암살 (기도)하다가 실패하고 이완용 家를 방화하였다. 이에 관헌의 추적을 피하여 경기 양평일대로 도피중 1908년 형제인 李永洙, 이漢洙들과 의병을 모집하고 의병대장이 되어 활동타가 1908년 10월 19일부터 10월 21일까지 경기 용문산 전투[일명 피의 전투]에서 왜군 헌병대와 교전 중 鄭모.梁모씨라 불리우는 여러부하들과 함께 산화 (부인은 의암 손병희 선생의 딸.손관화여사) 손자 이태운李泰運(이관영의 아들) 보성전문학교 재학 중(현 고려대의 전신) 급우이자 이모부인 소파 방정환등과.이錫周 이錫河 할아버지 형제의 손자 뻘형제 들과 함께 [민족계몽 운동,농촌계몽 운동]을 전개하였고 2.28에는 민족대표들의 손병희 자택 비밀회합시에는 경비.선언서 등사 조부께서 국내 독립지사들과 거사를 준비시에는 비밀 연락책,회합장소의 경비 경호,선언문인쇄.배포 담당하였다. 대부분 이종훈.이석주 이석하가의 3대 유족들은 왜경의 탄압과 추적으로 만주.강원도등으로 전전하는 삶을 살다. 정암 선생의 3代는 이나라 조선의 독립운동에 전부 바친 "항일 애국의家"

기미년 대한독립만세
Sarabande' Harpsicord Suite No.4>n D minor, HWV437 George Frideric Handel 1685∼1759